기고

디지털세, 글로벌 법인세, 그리고 데이터세

남형두 | 연세대 법전원 원장

디지털세 도입에 관한 국제적 논의가 뜨겁다. 외국 기업에 대한 과세는 고정사업장을 중심으로 그 수익에 과세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구글과 같이 수익이 발생하는 국가에 서버를 두지 않는 경우 공평과세 문제가 있었다. 단적인 예로 구글의 2020년 한국 매출은 5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신고 매출액은 2200억원, 법인세 신고액은 고작 97억원에 불과했다.

남형두 | 연세대 법전원 원장

남형두 | 연세대 법전원 원장

그간 디지털세 도입을 놓고 EU와 미국은 심한 대립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디지털세 법안을 채택하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프랑스 와인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2019년 7월 미국의 입장 선회로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디지털세 부과 원칙에 합의했고 최근 그 구체적 내용이 발표됐다. 기본원칙에 해당하는 두 개의 기둥(필라 1·2)은 다국적 기업 법인세와 글로벌 최저한세이다.

미국 정부의 수정 제안은 한마디로 물타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인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에 집중된 화살을 피하기 위해 과세 대상 기업을 일정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디지털세는 ‘글로벌 법인세’로 탈바꿈한 셈인데, 현재 안대로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애초 구글세로 시작했던 디지털세는 데이터를 원료로 영업을 하는 빅테크 기업을 전제로 설계됐다. 삼성전자 등 제조사는 원재료를 구입해 쓰는 데 반해,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들의 대부분은 데이터 수집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무료 앱을 다운로드하면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신대륙 탐험가와 원주민 사이에 황금과 값싼 크리스털 장신구를 주고받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기업 모두가 미국 나스닥시장 시총 5위 안에 들게 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을 통해 각종 정보를 얻는데, 그 정보(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타인의 창작물(저작물)이나 개인정보다. 구글은 대체로 이런 데이터를 사용할 때 창작자나 개인정보 주체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는다. 폰트 하나 갖다 써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고 실수로 타인의 개인정보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구글은 어떻게 무사할까?

지난 4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선고된 오러클(Oracle) 판결은 그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구글은 모바일폰용 OS인 안드로이드에 오러클사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자바(Java)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받고자 했으나 협상에 실패하자 무단 복제해 사용했다. 이에 오러클이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구글에 대해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는 면죄부를 주었다. 공정이용은 원래 공익이나 주로 스몰유저(small users)를 위한 것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이용자(super big user)가 이 제도 덕을 본 것이다. 이제 저작권법은 쓸모없게 됐다는 토머스(Thomas)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개인정보는 어떤가.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벌써부터 이 조항의 모호함을 파고드는 빅테크 기업 앞에 그 예외의 틈은 공정이용에서처럼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은 잔챙이만 잡고 큰 고기는 놓치는 그야말로 성근 그물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휘하는 것이 데이터세다. 단지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글로벌 대기업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식의 논의는 곤란하다. 제값을 지불하지 않은 데이터 사용에 대해 데이터세를 징수하자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정 기업을 지목한 세금 이름은 부적절하다 치더라도, 디지털세라는 이름으로 초점을 흩트려 결국 글로벌 법인세가 되고만 작금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데이터세로 불러야 마땅하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데이터세 도입을 전제로, 빅테크가 이제 세금을 냈으니 저작물과 개인정보 등 데이터를 마음대로 쓰자고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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