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법기관장 정치적 중립 무색하게 한 최재형 감사원장 사퇴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고 문 대통령은 이를 수리했다. 최 감사원장은 이날 오전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저의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최 감사원장은 조만간 정치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언제 정치에 입문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 감사원장은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감사원장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 사례로는 이회창·김황식 전 원장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국무총리직을 거쳤다. 최 감사원장이 정치에 뛰어든다면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정치로 직행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을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징검다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

최 감사원장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한 과정을 감사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감사기관 수장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최 감사원장이 내세운 명분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었다. 감사원법에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은 감사원장의 4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정작 감사원장 본인이 임기를 채우는 일을 포기하고 정치 입문을 시사하면서 그동안 지켜왔던 명분은 사라졌다. 최 감사원장은 감사원의 중립성·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무너진 공직윤리를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할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어 최재형 감사원장까지 사정기관장들이 잇따라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여권이 검찰과 감사원의 업무 수행을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고 과도한 반응을 보인 탓도 작용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사정기관장의 정치 직행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최 감사원장은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예고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대선 출마 선택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어코 출마를 하겠다면 임기 내 감사원장직을 그만두고 대선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숙고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이 수장으로 있었던 감사원의 독립적인 위상을 위해서나, 자신이 늘 내세운 중립성이라는 소신을 위해서나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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