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혐오와 차별 이겨낸 안산 선수, 고맙고 미안합니다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30일 도쿄 올림픽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보태며 혼성단체·여자단체에 이어 3관왕에 올랐다. 그는 한국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시작한 1948년 이래 하계올림픽에서 3관왕이 된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안 선수의 성취는 저열한 여성혐오를 뚫고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눈부시다. 안 선수는 개인전에서 우승한 후 대한양궁협회를 통해 “(여성혐오 관련) 이슈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면서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안 선수가 2관왕에 오른 이후 온라인의 남초(男超) 커뮤니티 일부에서 “쇼트커트이고 여대에 다니니까 페미(니스트)”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비롯됐다. 일부에서 안 선수의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져 ‘남혐(남성혐오)’ 의혹을 제기하고, 사과와 메달 박탈까지 요구하며 사태가 확산됐다. 반발한 여성들이 안 선수를 지키자는 이미지를 SNS에 공유하고 대한양궁협회 게시판에도 안 선수를 보호해달라는 글을 잇따라 올렸다. 미국의 CNN, 영국 BBC와 로이터통신 등 해외 언론은 “안산 선수가 온라인 학대(abuse)를 당하고 있다”며 한국의 안티페미니즘을 집중 조명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렀나. 혐오의 싹을 애초에 잘라버리지 못하고 방치한 사회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특히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이대남’(20대 남성)의 투표 행태에 주목하며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했고, 상당수 언론도 ‘중계’하며 극단적 주장에 힘을 실었다. 몇 달 전엔 일부 커뮤니티에서 특정 손가락 모양을 남혐의 상징이라 주장하자 이런 이미지를 사용한 민간기업은 물론 국방부·경찰청 같은 국가기관마저 사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혐오임을 선언하고 명백히 차단하지 못한 채 ‘집단적 효능감’을 키워주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온라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청년남성이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의 고통을 해소할 정책과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청년남성의 고통이 또래 여성이라는 엉뚱한 과녁으로 향하는 일을 방치할 순 없다. 혐오와 차별의 고리를 끊기는커녕 편승·조장해 온 정치권과 이를 거르지 않고 마이크를 내준 일부 언론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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