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조직법 부결, 대법원이 깊이 새겨야 할 것

법관 임용 시 필요한 최소 경력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여야가 상임위원회에서 합의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이례적이다. 법원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법조일원화 취지가 퇴색할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법로비’ 의혹을 제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부결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법조일원화에 따라 추진돼온 경력법관 임용 자격을 ‘최소 5년’으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법상 경력 기준은 올해까지 5년이며 내년부터 7년 이상, 2026년부터 10년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판사 수급이 어렵다는 법원 요구에 따라 기준을 완화하는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고, 법사위까지 통과한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법조일원화 취지에 역행한다며 개정안에 반대해왔다. 특히 ‘양승태 사법농단’을 세상에 알린 이탄희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개정안이 3개월 만에 본회의장에 올라오는 특혜를 누린 건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입법로비 덕”이라며 “현직 대법관 등이 인맥과 영향력을 활용해 양당 의원들에게 접근한다면 양승태 행정처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경력 기준을 높일 경우 로펌·검찰 등에서 자리잡은 우수 인력이 판사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 걱정한다. 심각한 법관 부족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거대 로펌 등에서 장기간 재직하다 법원으로 올 경우, 과거 근무처와 유착하는 ‘후관예우’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후관예우 방지를 위해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사건) 배당 제한’ 규정이 생겼지만, 로펌 출신 법관이 급증할 경우 완벽하게 차단하긴 어려울 수 있다. 실제 경향신문이 최근 분석한 결과, 올해 신임 법관 임용예정자 157명 중 20명이 김·장법률사무소(김앤장) 변호사로 나타났다. 검사 출신 임용예정자(11명)보다도 많은 수치다.

대법원의 우려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법관 부족 문제와 임용 조건 완화를 연계한 건 잘못이다. 재판 지연으로 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보다 나은 사법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고 정공법으로 주권자를 설득하라. 이 의원 발언처럼 ‘입법로비’를 한 게 사실이라면 깊이 자성해야 한다. 사법농단 사태에서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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