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폐핵연료봉)을 최소 20년간 원전 부지 안에 임시 보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구처분시설은 부지 선정절차 착수 후 37년 안에 확보하기로 했다. 정부는 27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의결했다. 중간 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이 마련되기 전까지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전국 24기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상당 기간 부지 내 저장시설에 보관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폐핵연료봉은 해마다 900t씩 발생해 원전 부지에 50만4809다발이 임시저장 중이다. 저장용량의 97.7%를 차지한다. 1986년부터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물색해온 정부는 임시저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원전 때문에 수십년째 불안에 시달려온 인근 주민들은 앞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에 따른 고통까지 떠안게 됐다.
원자력발전은 우라늄(U-235와 U-238)으로 만든 핵연료봉을 원자로 안에서 태워 발생한 열로 전력을 생산한 뒤 핵연료봉을 교체한다. 교체된 폐핵연료봉이 사용후핵연료인데 폐기된 뒤에도 높은 열과 방사선을 방출해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폐핵연료봉은 90% 이상이 우라늄이고, 플루토늄 등 인체에 치명적인 고독성 원소가 포함돼 있다. 독성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는 플루토늄이 2만4000년이고, 우라늄은 수억년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비교적 선도적이라는 핀란드와 스웨덴은 폐핵연료봉을 땅속 500m에 1만~10만년 묻어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기본계획에서 영구처분시설 로드맵을 제시한 것은 진전된 것이지만 그 시설의 선정을 절차 착수 후 37년으로 규정한 것은 모호하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부지 내 저장시설이 영구처분시설이 될 우려가 높아졌다고 반발하고 있다. 저장시설 추가를 명문화함으로써 영구 시설 선정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본계획 수립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듯한 인상도 있다. 원전 내 저장시설은 지역 주민이 반대해왔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서도 권고하지 않은 사안이다. 원전은 갈수록 경제성이 떨어지고, 위험성은 커지는 발전원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지역의 희생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해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