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폭력 피해자 ‘2차 가해’에 경종 울린 대법원

동료 배우를 성추행해 유죄가 확정됐음에도 ‘2차 가해’를 계속한 배우 조덕제씨에 대해 대법원이 명예훼손 혐의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1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모욕, 성폭력처벌법 위반(비밀준수) 등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1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횡행하는 가운데 법원이 이에 경종을 울린 판결로 평가한다.

조씨는 2015년 영화 촬영장에서 합의 없이 상대 배우 A씨의 신체를 접촉한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조씨는 유죄 확정 판결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 영상물을 올리고 ‘강제추행은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조씨는 집행유예 기간 A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는 이례적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심에선 징역 11개월로 형이 감경됐으나 유죄는 유지됐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한 것이다.

조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2차 가해 행위를 “많은 국민에게 사실관계를 알리려는 공익적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와 그를 옹호하는 이들이 비슷한 대응을 보인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가 유죄를 선언해도 이를 수용하는 대신, 피해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려 든다. 다른 유형의 범죄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행태이다. 최근에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김씨는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희정이 불쌍하다. 나랑 우리 아저씨(윤 후보)는 안희정 편이다. 무슨 강간한 것도 아니고…”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이중의 해악을 미친다. 우선 피해 사실을 밝힌 당사자를 고립시키며 고통에 빠뜨린다. 다음으로, 또 다른 피해자들로 하여금 입을 열지 못하도록 위축시킨다. 가해자 본인은 물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의 2차 가해까지 무관용 원칙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과 법원은 성폭력 피해자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공동체 차원에선 2차 가해 역시 폭력이고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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