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판부별로 ‘해군 성폭력’ 가해자 유무죄 엇갈린 대법원

대법원이 부하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해군 간부들에게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31일 군인 등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A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반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B소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대법원이, 같은 날, 같은 피해자가 고소한 사건에서 상반된 판단을 한 것이다. 대법원은 “인접한 시기에 같은 피해자를 상대로 저질러진 동종 범죄에 대해서도 범죄 성립 여부를 달리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이 이 설명을 납득할지 의문이 든다.

B소령은 2010년 직속부하이던 여성 장교를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휘관(함장)이던 A대령은 여성 장교가 피해 사실을 알리자 상담을 빌미로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검찰은 2017년 피해자 고소로 수사에 착수해 두 사람을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대령에게 징역 8년, B소령에게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모두 무죄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소부(小部)별로 판단이 나뉘었다. A대령 사건을 심리한 1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며, 피해자(초급장교)와 피고인(지휘관)의 지위를 감안할 때 저항이 불가능했다고 봤다. 반면 B소령 사건을 맡은 3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고, 군검찰의 혐의 입증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B소령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뒤 이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A대령의 성폭행 범죄가 발생했다. 그런데 뒤의 범죄는 인정되고, 앞선 범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대법원 3부의 성인지감수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B소령은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는 성소수자이며 B소령에게도 이를 밝혔다고 한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피해자의 성 정체성을 숙고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대법원이 왜 두 사건을 한 재판부에 맡기지 않았는지 궁금해한다. 대법원 측에선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유무죄 판단 절차로, 피해자가 동일인이라는 점은 병합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원칙에 따라 재판한 결과, 1심에서 더 낮은 형량을 받았던 A대령은 다시 재판받게 되고 더 높은 형량을 받았던 B소령은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정의와 인권의 보루라는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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