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SPC 회장 사과, 불매운동 모면하려는 꼼수 안 된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계열사 에스피엘(SPL) 평택 공장에서 발생한 23세 청년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허 회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엄중한 질책을 받아들인다”며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안전 경영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고 후 회사 측의 비상식적인 대처에 불매운동이 확산하자 서둘러 수습에 나선 것이다. 허 회장의 사과와 별도로, SPC 경영진도 사고 재발 방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SPC의 대책을 보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안전시설 확충과 설비 자동화에 거액을 들인다는 것 말고는 추상적인 계획뿐이다. 회사는 이날 향후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3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전 사업장 산업안전보건진단 시행, 안전경영위원회 구성, 안전관리 인력 강화, 직원 근무환경 개선 등도 내걸었다. 노동자의 안전을 뒷전으로 놓고 이익을 앞세운 게 근본 원인인데, 이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돈 들여 설비를 고쳐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식의 처방으로는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없다. 노동자 안전을 위해 시급한 조치가 무엇인지 먼저 듣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야 옳다.

SPC는 이번 사고 일주일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도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망사고가 있었던 다음날에도 동료 노동자들을 투입해 작업을 시켰다. 심지어는 고인의 빈소에 경조사 지원품이라며 자사의 빵 두 상자를 보내는 지독한 무신경을 드러냈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작태이다. SPC에 대한 불매운동은 회사가 자초한 것이다.

허 회장의 이날 사과는 지난 17일에 이은 두번째다. 허 회장은 사과 말미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SPC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애꿎은 파리바게뜨 등 계열 가맹점들만 불매운동의 피해를 보고 있다. SPC는 그동안 반노동 행태 외에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가맹점주들에게 갑질을 했다. SPC가 진정 반성하고 있다면, 더욱 정밀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을 만들어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윤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작업 환경을 만들어야 시민들이 다시 SPC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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