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남 스쿨존 사고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교통안전 의식

안타까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사망사고가 또 발생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후문 앞 스쿨존 이면도로에서 하교하던 3학년 초등학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30대 남성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으로 만취 상태였다. 특히 이번 스쿨존 현장은 교통사고 우려가 높은 곳으로 익히 알려졌는데도 수년간 대책 없이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의 안일한 대비와 안전 불감증이 참사를 부른 것이다.

사고 경위를 보면 이번 사고는 인재에 가깝다. 사고가 난 도로는 폭이 4~5m로 좁고 가파른 데다 보도가 따로 없어 차도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 사고 위험이 컸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은 스쿨존 교통안전을 점검한 결과, 이곳이 사고 우려가 높다며 보도 확보를 위한 일방통행 운영 등 사고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지적은 무용지물이었다. 시교육청의 통보를 받은 강남경찰서는 강남구청에 일방통행 적용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을 요청했으나, 구청 측이 주민 50명 중 48명이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하자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국의 무신경은 이뿐이 아니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스쿨존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 도로를 관리대책 대상에 포함시켜 포장 보행로를 조성한다고 했지만 지금껏 보도는 생기지 않았다. 당국이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막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강남구청은 사고 뒤에야 “일방통행으로 지정해 보도를 만들고, 등하교 시간 차량 통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책임 회피성 뒷북 행정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사고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3년간 손을 놓은 교육청과 경찰의 책임도 작지 않다.

2020년 3월부터 스쿨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 시행되고 사고 재발 때마다 처벌·단속 규정이 강화되고 있지만 사고는 되풀이되고 있다. 처벌 수위를 높이고 안전시설을 보강하는 것만으로는 스쿨존 사고를 근절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교육 당국이 모두 안전 의식을 높이고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도심 차량 제한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완화하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식이법·윤창호법으로 교통 안전을 우선시하던 흐름이 역행할까 걱정된다. 자동차 속도를 올리는 것보다 안전이 먼저라는 점을 다시 새길 때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