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출규제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보복성 인정한 아베

지난해 7월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9년 7월 한국을 상대로 취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였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8일 일본에서 출간된 회고록에서 “징용공(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배상 판결이 확정된 뒤 아무런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은 문재인 정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수출규제 강화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 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역관리는 당연하다”면서 “굳이 두 문제가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한국이 징용공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반도체 수출규제가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무관하다고 밝혀 온 일본 정부 입장이 거짓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아베 내각의 무역보복 조치는 한·일 간 무역질서를 근본부터 무너뜨린 도발 행위였다. 정치·외교 갈등이 기업활동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정경분리’ 원칙은 민주주의 국가들 간 기본 룰이다. 일본이 이를 어기고 역사 갈등을 수출규제로 대응해 양국관계를 악화시킨 것을 생각하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자백한 아베의 회고록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답답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양국 간 갈등 현안을 조속하게 푼다며 강제동원 배상 최종안을 마련 중이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주는 방안이다.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와 일본 정부·기업의 사죄 등에 대한 호응을 촉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거기에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해제를 강제동원 배상의 상응 조치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안이 무관하다면서 수출규제를 협상카드로 동원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이 세계무역기구에 일본을 제소한 것부터 먼저 취하하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데도 서둘러 강제동원 문제를 타결할 경우 그 후유증은 작지 않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진정 한·일관계 복원을 바란다면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피고 기업들이 배상에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우선 부당한 수출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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