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 악마화’ 윤 대통령, 노사 불균형 너무 심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아직도 건설현장에서는 기득권 강성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엄정 조치를 지시했다. 검경은 곧바로 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켰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TV로 생중계됐다. 노조 공격에 앞장선 대통령이 국정 전면에 선명하게 부각된 날이었다.

윤 대통령은 “노동개혁의 출발점은 노조 회계의 투명성 강화”라며 이 문제도 입법에 속도를 내달라고 했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산별·대형 노조들이 정부의 회계장부 제출 요구에 반발한 데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날 윤 대통령에게 자료 미제출 노조들에 과태료 부과, 정부 보조금 제외, 조합비 세액공제 원점 재검토 조치를 취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틀 연속 대통령과 노동·국토교통부 장관이 노조를 다각도로 압박한 셈이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과 건설현장의 일부 불법행위는 바로잡아야 한다. 노조 스스로도 자정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노조 압박을 진두지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 단죄하면 될 관행적 치부나 불법행위를 앞세워 노조 전체를 악마화하고, 노동개혁과 지지율 반등의 전기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성·기득권 노조 사례만 부각시켜 청년과 갈라치는 것도 독단적이다. 노·정 간에는 지난해 말 정부가 초강경 진압한 화물연대 파업 후 불신이 커져 있다. 그런 속에서 노조 불법 엄단만 외치는 대통령의 ‘노사법치주의’는 균형을 잃었다.

헌법 21조는 물론, 한국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에도 결사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노동관계법엔 구체적으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적시돼 있다. 노조의 자율성·자치주의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측과 밀고 당기는 협상은 몇몇 대기업·산별 노조에 국한되고, 대다수 노조는 여전히 약자 위치에 있다. 노조에 일부 위법행위가 있다 해도 이를 압박하는 것은 노동부 장관·검찰총장 몫이지, 노사 관계의 중심을 잡을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손배소 폭탄’을 제한하고, 하청·특수고용직 노동자도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법사위 대치가 시작됐지만, 여권에선 벌써부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거론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없애겠다는 윤 대통령도, 부자감세·친기업 국정기조를 짜온 당정도 이 문제는 보다 균형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정 대화는 끊겨 있다. 노동정책이 전문가 TF를 통해 추진되고, 국회 입법보다 시행령으로 밀어붙이는 편법이 늘고 있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는 눈감고, 노조 불법행위만 문제 삼는 것은 공정할 수 없다. 노사정의 긴장이 차오르면 사회적 비용만 커질 뿐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대로 헌법이 정한 노동3권을 존중하고, 노사정의 균형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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