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 권리 인정한 첫 판결 환영한다

동성 커플의 공동체성과 사회보장 권리를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은 21일 소성욱씨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소씨 손을 들어줬다. ‘성적 지향’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부인하고, 소수자 인권의 지평을 확장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이번 재판은 소씨가 같은 남성인 김용민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 등록했으나, 건보공단 측에서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이를 취소하며 시작됐다. 1심에선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생활을 하는 동성 커플은 사실혼 관계로 인정되는 이성 커플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며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또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기존 가족 개념과 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2심도 두 사람을 민법상 권리가 인정되는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지는 않고 ‘동성결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날 판결문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의 현주소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행법상 동성 간 사실혼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짚었다. 실제 대만을 비롯해 전 세계 34개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이며, 일본에선 지방정부가 조례로 동성 파트너를 배우자에 준해 인정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차별행위처럼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선언했다. 동성결혼이 당장 인정되지는 않더라도 ‘생활공동체’를 꾸린 동성 커플에 대한 자의적 차별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누구나 어떤 면에선 소수자일 수 있다”며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판결문을 맺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이 승인될 경우 발생하는 권리가 1000여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동성 커플들이 그만큼 많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소외돼 있다는 의미다. 오랜 기간 삶을 함께해온 동반자들도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복지혜택에서 배제되는 게 현실이다. ‘자녀를 둔 이성 부부’ 중심의 기존 가족제도로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시민의 행복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보장체계가 개선되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앞당겨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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