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로사회’ 조장할 주 69시간 근무제, 재검토해야

정부가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주 52시간인 연장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안의 핵심은 1주일 단위로 돼 있는 연장노동시간의 칸막이를 터서 일이 몰릴 때는 1주일에 최대 64~69시간까지 일한 뒤 나중에 많이 쉬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11시간 휴식을 보장하면 주 69시간, 휴식시간 없이는 주 64시간까지 일하게 된다. 대신 연장노동시간을 적립해 휴가로 보상받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연차휴가를 더해 휴가를 장기간 쓰게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방안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과로사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노동시간이 ‘발병 전 4주 연속 주 64시간’인데 이번 개편으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분기로 늘릴 경우 과로사 수준까지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주 52시간이 법제화된 지금도 초과노동과 공짜야근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허다한 현실은 외면하는 것인가.

연장근로를 하면 나중에 긴 휴가를 보장한다는 것도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한 사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노동자들이 연차휴가를 다 쓰는 기업이 40.9%(2021년 기준)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연차휴가도 다 못 쓰는 마당에 언제 저축휴가를 쓴다는 말인가.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 많이 했으니 장기 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고용주들이 선뜻 들어줄 것 같은가.

2021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길었다. 2019년부터 3년간 근로복지공단에서 ‘자살 산재’ 판정을 받은 사례 중 과로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된 경우가 3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주 52시간 제도가 현장의 실정에 맞지 않는 사업장이 있는 만큼 제도를 개선할 필요는 인정하지만, 전체 노동시간을 줄이는 흐름에 맞게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어떤 개편도 노동시간을 줄이는 큰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노동계와 대화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발표한 것도 유감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발상은 재검토돼야 한다. 법 개정 사안인 만큼 국회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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