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민사회 위축시킬 민간단체 ‘보조금 구조조정’ 계획

대통령실이 내년도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올해보다 30% 줄이고, 부정비리가 적발된 민간단체의 보조금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4일 밝혔다. 최근 3년간 지급된 1만2000여개 사업 6조8000억원에서 1865건, 314억원의 보조금 부정 사용이 적발됐다는 감사 결과와 내놓은 ‘보조금 구조조정’ 계획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조치가 “민간단체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 단체의 부정행위를 빌미로 보조금 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시민단체 활동을 움츠러들게 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 위축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대통령실이 내놓은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및 개선방안’을 보면 한 기념사업회는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전시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비로 5300만원을 업체에 지급한 뒤 500만원을 돌려받는 등 거래처 4곳에서 3300만원을 편취했다. 한 통일운동단체는 민족의 영웅을 발굴하겠다며 받은 보조금 6260만원 중 일부를 윤석열 정부 비판 강연에 썼고, 보조금 상당액을 임원 소유 기업의 중국 사무실 임차비 등으로 사용한 이산가족 교류 단체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후속 조치로 내년도 민간단체 보조금을 올해 대비 5000억원 이상 감축하고, 정부 임기 내내 구조조정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보조금 정산보고 대상을 현재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낮추고, 부정비리 신고 포상금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재정기반이 열악한 민간단체라고 해도 세금을 엉뚱하게 쓴 것은 분명 잘못된 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번을 계기로 시민단체들의 보조금 집행 관행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부금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의 재원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민관 협치를 통한 공공성 강화와 민주주의 발전에도 역행한다. 이번 감사에서 부정비리 사례로 적발된 시민단체 상당수가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개진한 곳이어서 정치적 목적을 띤 ‘표적감사’ 아니냐는 의심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이 지난달 29일 ‘시민단체 선진화특위’를 만들어 시민단체 운영을 점검하겠다고 한 데 이어 대통령실이 시민단체 국고보조금을 줄이겠다고 하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 길들이기에 정부·여당이 합동으로 나선 모양새다.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시대착오적 통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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