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지사도 가세한 보수단체 ‘도서관 검열’ 중단하라

충남지역 공공도서관 서가에서 성교육·성평등 어린이책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보수성향 학부모단체들이 “다양성·성인지 등을 근거로 동성애, 성전환, 조기성애화, 낙태 등을 정당화하거나 이를 반대하지 못하는 도서는 마땅히 폐기처분돼야 한다”며 집요하게 민원을 제기하자,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25일 “7종 도서에 대해 도내 36개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문화 다양성을 훼손하는 도서 검열을 한 것이다.

단체들이 퇴출을 요구한 120종은 주로 성교육·성평등 관련 아동도서들이다. 이 가운데 김 지사가 열람을 제한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비롯한 책 7종은 2019~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지정됐다가 보수·종교단체 항의로 철회된 것들이다. 해외에서 유아 성교육 등에 널리 쓰이는 교재인데도 김 지사는 “낯 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여당 모 의원은 울산 지역 고교 도서관 내 현대정치사 인물 도서 현황자료를 요구해 학교를 정치적으로 압박한다는 반발을 샀다. 경북 경산시가 ‘시민 독서감상문대회’ 주최 측에 좌편향 도서 선정을 재고할 것을 권고하는 일도 있었다.

도서 통제·검열은 엄혹했던 유신·5공이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을 빚은 박근혜 정부 때 벌어졌던 일이다. 2015년 뉴라이트 단체들이 전국 도서관 어린이·청소년 추천도서가 좌편향됐다고 공격하자 정부는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고,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해당도서를 폐기토록 해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비판이 거셌다. 법조계에서는 헌법 속 ‘언론·출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려면 사전제재는 물론이고 시장에서 평가 기회를 얻기도 전 정부나 제3자가 개입해 걸러내는 조치까지 모두 검열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일부 주장을 근거로 함부로 검열에 나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역대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도서관은 그런 문화를 키워내는 공간이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양한 사고를 탄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권력을 이용한 도서 검열은 출판계와 문화에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도서관은 권력 눈치를 보는 획일주의와 문화빈곤에 빠질 것이다.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도서 검열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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