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지난해 수해 실종자 구조작업 중 순직한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수사에 관여한 정황이 또 드러났다.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해 8월2일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한 기록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화 시점은 군검찰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가 하루 만에 회수한 날 오후라고 한다. 지난 22일 MBC 보도로 알려진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채 상병 사망 사건 처리 방향이 바뀌는 데 대통령실이 관여한 정황이 될 수 있다.
검사 출신인 이 비서관은 윤 대통령 최측근 인사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검찰과 경찰, 군 수사기관 등 직원을 파견받아 해당 기관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 사건에서도 이 비서관 밑 경찰 파견 직원이 경북경찰청 등과 접촉한 정황이 포착됐다.
채 상병 사망 및 수사외압 사건에 대통령실 개입 정황이 드러난 게 처음도 아니다. 앞서 공수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7월31일 오전 발신처가 대통령실로 확인된 유선전화를 받은 기록을 확보했다. 그 후 이 전 장관은 전날 결재한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발표를 하루 만에 취소하고 경찰 이첩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참모 회의에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민간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했다고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밝혔다.
박 대령이 이 전 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한 7월30일과 이 전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7월31일 사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부 관계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사이에 빈번한 연락이 이뤄진 사실도 드러났다. 이 모든 정황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의 피의자 명단에서 임 사단장을 제외하려는 외압에 대통령실이 관여했을 수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국방장관이 정당하게 내린 업무지시를 번복하는 데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된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해병대 수사단장을 옷 벗기고 항명죄로 기소한 것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공수처는 이 비서관을 소환해 유 관리관에게 어떤 보고를 받고 지시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3개월이나 처장·차장이 장기 공석 상태인 공수처지만, 조속히 관련자 소환과 강제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꼬리 무는 수사 외압 정황과 공수처의 지지부진한 수사는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특별검사 지지가 높은 이유일 수 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특검 문제도 매듭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