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통폐합 강행

‘5共 악몽’이 떠오른다

정부가 22일 확정한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놓고 여야 정당,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모두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배경이 의문이다. 해답의 키는 노무현 대통령이 쥐고 있는 듯하다. 주변에선 “(통·폐합 방안은) 노대통령 언론정책의 최종 결정판”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십년 쌓인 언론에 대한 불신·분노·적대감의 사감정이 시스템으로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실을 통·폐합하는 내용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실을 통·폐합하는 내용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내가 이름을 외우는 기자는 딱 세 사람”이라고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첫 오찬 자리에서다. 그러면서 “김○○, 이◇◇, 우×× 기자”라고 실명을 댔다. 대통령은 이들을 1990년대 초년 정치인 시절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던 기자들로 기억했다. 취임 다섯달 만에 ‘장수천’ 보도를 걸어 언론사들을 상대로 30억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낸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이란 직책보다 자연인으로서의 감정이 앞섰다는 비판을 받고 취하했지만 “퇴임후 다시 내겠다”고 했다.

소송은 취하했지만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은 관가의 문을 잠그고 기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 선진 시스템’이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으로 기자실 폐지, 취재 제한, 공무원에게 보도경위 추궁 등 단편적 조치에서 나아가 전 행정부처의 브리핑룸마저 통·폐합하겠다는 참여정부식 언론정책의 완성이다. “언론에 대한 신종 보복폭행”(국민중심당 이규진 대변인)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이 방안이 정부 정책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은 더 심각하고 중대하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통·폐합 방안’이 상정되고 통과되기까지 단 한 사람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중의 우려를 전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대통령만 빼고 각계 각층이 우려하는 주요 정책이 확정되는 동안 정부내 반대 목소리나 제동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출범 초기 “모든 국무회의 토론 과정도 공개하겠다”고 호언했지만 토론도 없었고, 공개도 하지 않았다.

이 방안은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386 핵심 관계자 10여명이 대통령의 뜻을 뼈대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흔한 공청회나 설명회 한 차례 열리지 않았다. 정당·학계·언론·시민단체 어디도 관련부처로부터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 절차의 투명성을 외면한 밀실행정의 표본이다.

정말 시행을 위해 내놓은 조치인지 실효성도 의문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이 안은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을 포함한 여야 정당은 이미 통·폐합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차기 정권에서 수정 또는 폐기가 확실시되는 안이다. 시행 수개월 만에 ‘사망’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화풀이로 해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홍보처는 왜 있어야 하는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5공 언론통제의 악몽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홍보처가 정부 정책의 홍보전위대라는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기구로 나선 데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단국대 손태규 교수(언론홍보)는 “모든 언론이 자기를 이해하고, 감싸주기를 바란 노대통령의 욕심이 정부와 언론 관계를 파행으로 치닫게 했다”며 “참여정부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초법적·탈법적 언론탄압과 달리 합법을 가장한 방법으로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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