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물질은 부분의 집합, 그 이상

환원주의 vs 전일주의

부분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부분의 합으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7) 물질은 부분의 집합, 그 이상

■ 환원주의

손가락을 보라. 자세히 보면 지문이 보인다. 육안으로는 여기까지다. 현미경으로 보면 이제 울퉁불퉁한 피부표면이 보일 텐데, 여기저기 이상하게 생긴 벌레들도 있을 거다. 좀 더 확대해보면 세포가 보인다. 사회가 인간들의 모임이듯 우리 몸은 세포들의 모임이다. 더 확대해보면 세포를 이루는 소기관들이 보인다. 세포핵, 소포체, 미토콘드리아 같은 거 말이다. 이 정도까지 확대하려면 비싼 전자현미경이 필요하다. 세포핵 내부를 보면 당신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가 보인다. 절반은 아버지, 절반은 어머니에게서 온 거다. DNA는 공 모양으로 뭉쳐있지만 이것을 펴서 확대하면 탄소, 산소 같은 원자들이 보인다. 손가락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100억배 정도 확대해야 한다.

이제 원자를 확대해보면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가 보이고, 원자핵을 확대해보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보이고, 이들을 더 확대하면 쿼크가 보일 거다. 이쯤 되면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세상은 보다 작은 것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다. 물리학자는 모든 물질을 이루는 궁극의 단위와 이들을 기술하는 법칙을 찾으려 한다.

쿼크를 이해하면 이들이 모인 원자핵을 이해할 수 있고, 원자핵과 전자를 이해하면 원자를 이해할 수 있고, 원자를 이해하면 DNA를 이해할 수 있고, DNA를 이해하면 단백질을 이해할 수 있고, 단백질로 이루어진 세포소기관을 이해하면 세포를 이해할 수 있고, 세포를 이해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을 이해하면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이쯤 되면 당신은 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대상을 쪼개어 부분으로 나눈 다음, 이들로부터 전체를 이해하려는 방법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환원주의는 물리학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원자와 분자가 그 예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함께 시작되었다. 증기기관을 설명하는 열역학은 ‘기체분자’라는 개념에서 탄생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분자들이 날아다니며 피스톤을 두들기는 것이 압력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기체분자의 속력이 빨라진다. 이들이 피스톤을 밀어서 증기기관이 움직인다. 증기기관이야말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한 첫 사례다. 아무튼 증기기관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기체분자들의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체분자는 원자로 구성된다. 19세기 화학자들은 원자를 더 이상 쪼개어질 수 없는 물질의 최소단위라고 정의했지만, 20세기가 시작되자 원자에 세부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원자의 세부구조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이 완성되자 원자들이 왜 그런 화학적 특성을 갖는지 이해된다. 수소는 왜 폭발하는지, 다이아몬드는 왜 단단한지 알게 된 것이다. 아마 이때가 환원주의의 황금기였으리라. 여기서 화학은 양자역학의 응용에 불과하다는 환원주의적 발언이 나오게 된다.

알코올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기화합물의 하나다.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맥주 없는 금요일을 생각해보시라.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은 효모라는 세균이 설탕을 분해할 때 부산물로 나온다. 산소 없이 에너지를 만드는 이 과정을 발효라 부르는데, 루이 파스퇴르가 발견했다. 인간의 경우 산소를 이용하여 음식에 들어있는 포도당을 분해한다. 우리가 숨을 쉬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다. 파스퇴르는 발효가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니라 생명의 고유한 현상이라며, 여기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것을 생기론(生氣論)이라 한다. 화학으로 환원할 수 없는 생명의 고유한 현상이 있다는 생각이다.

파스퇴르가 죽은 후 에두아르트 부흐너(1907년 노벨 화학상 수상)는 발효가 화학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효모를 갈아서 즙을 내어 완전히 분해시킨 후에도 발효가 일어남을 보인 것이다. 발효는 생명의 고유한 작용이 아니라 효소들이 일으키는 화학반응에 불과하며 효모는 일종의 화학공장이었던 것이다. 이 발견으로 생기론은 종말을 맞았으며, 생명을 환원주의로 설명하는 시각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환원주의는 현대과학의 첨단무기였다.

■ 많은 것은 다르다

1972년 사이언스지에는 ‘More is different(많은 것은 다르다)’라는 필립 앤더슨(197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에세이가 실렸다.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물리학은 여러 세부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분야가 다르면 서로 소통이 쉽지 않다. 입자물리는 물질을 이루는 궁극의 근원을 탐색하는 분야로, 20세기 주류 물리학이 걸어온 길을 대표한다. 자연을 보는 시각이 환원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응집물리는 수없이 많은 원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고체를 탐구하는 분야로, 여기서는 많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래 ‘고체물리’라 불리던 분야였는데, 고체로 분류하기 애매한 대상도 다루기 때문에 지금은 응집물리라고 한다.

앤더슨의 비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연을 이해하는 데 있어 환원주의적 관점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는 거다. 환원주의는 이렇게 주장한다. 원자물리는 입자물리의 응용에 불과하고, 화학은 원자물리에 불과하고, 생물학은 화학에 불과하고, 인간은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만약 입자에서 원자, 화학, 생명, 인간으로 층위(層位)가 높아짐에 따라 이전 층위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법칙이 출현한다면, 환원주의처럼 단순히 말하기는 힘들 거다.

우리 몸은 원자로 되어 있다. 성인의 경우 원자 수는 대략 7,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다. 세어보지 마시라. ‘0’이 27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주로 탄소, 수소, 산소, 질소의 네 종류다. 양자역학은 이들 원자를 완벽하게 기술한다. 하지만 아무리 원자 각각을 들여다본들 소화불량이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원자들이 모여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되고, 이들이 모여 세포가 되고, 세포들이 모여 위장이 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물론 나의 위장(胃腸)은 원자로 되어 있으며, 이 원자들은 양자역학에 따라 운동한다. 더 나아가 원자는 쿼크와 전자로 되어 있으며, 이들의 운동은 입자물리학이 설명한다. 하지만 입자물리나 양자역학에서 위장을 바로 설명할 수는 없다. 원자가 많으면 뭔가 달라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예 많은 것을 다루는 물리 분야가 따로 있다. 바로 통계물리다. 통계물리는 앞서 이야기한 기체분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열역학에서 탄생했다. 기체는 원자나 분자들이 날아다니는 상태다. 기체 상태에서는 물이나 철이 비슷해 보인다. 텅 빈 공간을 조그마한 입자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자세히 보면 하나는 물 분자고, 다른 하나는 철 원자일 뿐이다. 하지만 온도를 20도 정도로 낮추면 전혀 다른 ‘것’이 생겨난다. 하나는 물이라는 액체가 되고, 다른 하나는 철이라는 고체가 된다. 이처럼 기체가 액체나 고체로 되어 상(相)이 바뀌는 현상을 상전이(相轉移)라 부른다. 철 기체로부터 철 고체의 특성을 유추해낼 수 있을까?

물체를 던지면 어디에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다. 물체의 궤적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구 위에서 이 궤적은 이차함수라는 도형으로 주어지며, 이 도형을 그려서 미래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수능에 문제로 나오는 거다. 하지만 중간에 궤적이 갑자기 끊어지면 어떨까? 어려운 말로 불연속점이 생긴 것인데, 이 경우에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통계물리학에 따르면 상전이가 일어나는 순간 물리량들은 무한히 커지거나 불연속이 된다. 즉 상전이 전후를 연속적으로 연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체로부터 고체의 특성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전이가 일어날 때 무언가 새로운 특성이 돌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성요소에서 없던 성질이 전체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창발(創發)’이라 부른다.

창발의 예를 보기는 쉽다.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수많은 자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자동차가 움직이고 커피가 끓고 있다. 인간행동, 사회현상도 모두 여기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들 가운데 원자로부터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창발이라 보면 된다.

■ 환원 대 창발

환원주의에 대립되는 말로 ‘전일주의(holism)’가 있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창발은 전일주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래서 창발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환원 대 창발 논쟁은 잊을 만하면 나타난다. 1987년 미국에서는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SSC)를 놓고 두 진영(?)이 충돌했다. SSC는 수십억달러의 건설비용이 필요한 입자가속기로, 입자물리 분야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당시 앤더슨은 SSC 의회 예산청문회에 참석하여 이런 증언을 했다. 응집물리에 충분한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지 않으며, SSC로 얻게 될 입자물리의 결과는 생명과학에 있어 DNA의 구조를 밝힌 일보다 더 근본적이지 않다.

SSC와 같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장치를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깔린 논리는 이렇다. 이런 장비로 알아낼 기본입자에 대한 이론이야말로 과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지식이라는 것이다. 환원주의자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다. 결국 모든 것은 기본입자의 운동으로 환원될 터다. 하지만 앤더슨의 주장은 입자물리가 응집물리나 생명과학보다 더 근본적이지 않다는 거다. 창발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스티븐 와인버그(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그의 책 <최종이론의 꿈>에서 앤더슨을 비판한다. DNA 이야기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DNA가 생물학의 근본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학에 있어서의 환원주의다. 동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생명에 대한 모든 지식을 DNA에 대한 연구로 환원하려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았는가. 창발주의자 앤더슨은 응집물리 수준에서만 창발주의자다. 아마도 앤더슨은 응집물리의 중요한 모형이나 이론들이 재료공학과 화학의 수많은 물질의 특성에 비해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와인버그는 전형적인 환원론자다. 물론 그는 반환원주의자들이 자신의 환원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니까 적절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와인버그에 따르면 앤더슨이 말한 DNA 이야기에도 일리는 있다. DNA가 모든 생명과학에 근본적이라기보다 DNA 자체가 모든 생명 자체에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환원주의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많은 이들이 환원 대 창발 논쟁에 혼란스러워한다. 부분으로 쪼개서 이해해야 하나, 전체를 그대로 두고 이해해야 하나. 필자의 생각에 이 논쟁은 ‘본성 대 양육’ 논쟁과 비슷하다. 사람의 성격이나 지능이 유전자와 양육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느냐는 과학논쟁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어릴 때 고아가 되어 각각 다른 가정에 입양된 경우 성인이 된 이들의 행동을 비교하여 연구할 수 있다. 한동안 엄청난 논쟁이 있었지만 최근의 결론은 50 대 50이란다. 환원 대 창발 논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는 양자역학으로 설명된다. 원자가 모이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같은 고분자가 된다. 적혈구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을 사용하기는 힘들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크다. 하지만 적혈구 헤모글로빈의 헴에 있는 철 원자가 산소와 결합하는 것은 양자역학이 설명한다. 이렇게 적혈구 수준의 이해에서도 원자수준의 환원적 설명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적혈구와 다른 수많은 고분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인간을 이해하는 데 원자의 이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는 전혀 다른 법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11번 염색체상의 헤모글로빈 염기서열 중 단 하나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겸형 적혈구 빈혈증에 걸린다. 원자 몇 개의 실수다. 이 문단에 일부러 ‘하지만’을 3번이나 썼다.

현대과학의 역사는 환원주의의 위력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몰랐던 진실을 환원주의가 찾아냈기 때문이다. 우주에는 0.00000000000000000000043㎞의 쿼크에서 440,000,000,000,000,000,000,000㎞의 우주까지 층위가 있다. 각 층위들은 자신만의 언어와 법칙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인접한 위아래 층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물리학을 배울 이유가 없다. 환원주의의 힘이다. 창발은 많으면 다르다고, 층위가 다르면 새로운 법칙이 나타난다고 말해준다. 양극단에 서있지 않다면 이 두 입장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부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7) 물질은 부분의 집합, 그 이상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 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 1, 2>(공저) <과학하고 앉아 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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