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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애비뉴Q’
귀여운 인형들이 나오는 뮤지컬이 충격적이래봐야 얼마나 충격적일까 싶겠지만, <애비뉴Q>에는 잊을 수 없는 ‘변태’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인형들끼리의 섹스다. 지금까지 간직했던 마지막 동심 한 조각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랄까.23일 막을 올린 뮤지컬 <애비뉴Q>는 ‘퍼펫 뮤지컬’을 표방한다. 미국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나올 법한 인형들이 등장해 ‘19금’스러운 대사와 노래를 태연히 한다.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한 뉴욕의 가상공간 ‘애비뉴Q’가 배경이다. 갓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은 하지 못한 프린스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유치원 보조교사 케이트, 성정체성을 의심받는 로드,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포르노만 보는 트레키 몬스터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인형들은 늘 입을 벌린 채 웃고 있으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도 경쾌하다. 단, 그 가사에는 무력한 처지에 대한 자조, 사회에 대한 냉소, 음탕한 유머 ... -
연극 ‘안녕 피아노’
오랜만에 만나는 향기 나는 희곡이다. 물론 그 향기는 ‘정통 문학의 향기’다. 극중의 대사는 잘 쓴 소설 속 문장들처럼 정갈하고 적확하다. 지문은 간결하고 시적이다. 요즘 대학로 연극들이 너무 시끄럽다거나, 극의 전개 속도가 매우 빨라 적응이 잘 안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안녕 피아노>가 공연되는 노을소극장으로 향하는 게 좋겠다. 약 80분간의 공연이 끝난 후, 어쩌면 박완서나 오정희의 중편소설 한 편을 읽은 듯한 감회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극의 배경은 지방의 작은 도시 K시. 몰락한 서울의 어느 중산층 가족이 그곳으로 이사온다. 중심가를 벗어난 한적한 위치에 자리 잡은 ‘피아노 모텔’이 연극의 무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텔 관리인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리게 되는데, 모텔의 가장 전망 좋은 방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딸 미정의 피아노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그것이 모텔의 방 하나를 차지한 채,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 -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
원인이 모호하고 대책도 없는 젊은이들의 분노는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한다. 펑크록은 젊은이의 분노를 가장 직설적으로 담아낸 음악 장르였다. 1990년대에 데뷔해 현재까지도 가장 중요한 펑크록 밴드로 여겨지는 그린데이의 명반 <아메리칸 이디엇>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청소년기의 열병을 적나라하게 그려 브로드웨이에 파란을 일으키고, 토니상 최우수연출상을 받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마이클 메이어가 연출했다. 메이어는 그린데이의 리더 빌리 조 암스트롱과 각본도 함께 썼다. 내달 브로드웨이팀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일본 공연 중인 <아메리칸 이디엇>을 지난 8일 공연장 도쿄국제포럼에서 먼저 봤다.막이 오르면 무대 전면에 설치된 40여대의 브라운관에서 북한의 핵실험, 부시 정부의 전쟁 등에 관한 뉴스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온다. 현재가 보잘것없고 미래도 별 볼 일 없을 3명의 백인 젊은이 조니, 터니, 윌이 주인공이다. 세 친구의 하루 일과는 맥주... -
연극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이 연극은 ‘박정근’이라는 인물에서 출발한다. 2012년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트위터로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돼 2심에서 징역 2년을 구형받은 사람이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지하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 들어서는 순간, 무대에 배우는 한 명도 없고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 실제 인물 박정근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항소심을 눈앞에 둔 그가 연기 지도를 받는 황당한 장면이다. 박정근의 맞은편에는 연출가일 수도 있고 배우일 수도 있는 익명의 인물이 앉아 있는데, 그가 박정근에게 이렇게 말한다. “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단어에 좀 더 진심을 담아봐요. 마음은 몸을 따라간다구. 자꾸 연습해 자꾸!”배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9명의 배우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객석이다. 관객 속에 섞여 앉은 배우들은 모두 붉은색 옷을 입었다. 그들이 입을 모아 스크린 속 박정근의 대사를 외친다. ... -
극작가 김영수 작품 재구성도시 빈민 이야기 다룬 ‘혈맥’
이 연극은 불친절하다. 관객의 눈앞에 펼져지는 장면들은 서사의 틀에서 벗어나 분절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줄거리로 작품을 이해하려는 관객에게는 러닝타임 120분이 고역이다. 그렇다고 이미지가 세련된 것도 아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난투극, 불어 터진 컵라면으로 허겁지겁 배 채우기, 죽기 살기로 펼쳐지는 남녀의 싸움, 허공으로 날아갔다가 갈갈이 찢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성경책 같은 것들이 관객의 이목을 괴롭힌다. 말하자면 ‘좋은 그림’을 무대에 펼쳐놓는 감각적인 이미지극도 아니다. 비논리적이고 몰상식한 장면들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까닭에 관객은 불편하다. 그럼에도 연출가 김현탁은 극의 시작부터 능청을 떤다. 극중의 ‘털보’가 이발소 의자에 앉아 객석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네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재밌게들 보시기 바랍니다. 아자아자! 파이팅!”극작가 김영수(1911~1977)의 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른바 사실주의 연극의 ... -
뮤지컬 ‘레미제라블’
영화 이 한국에서 개봉한 뮤지컬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이유는 역시 ‘원작의 힘’이다. 48%의 유권자들이 열패감을 느끼던 대선 직후라는 사회 분위기와 굳이 연결해도 마찬가지다. 은 이야기가 극적이고 노래가 아름답고 배우들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우울과 허무를 158분간 잊어버릴 수 있게 했다.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뮤지컬 의 한국어 초연작은 상연 중이었다. 용인, 대구, 부산을 거친 5개월여의 지방 공연 기간 동안 이 뮤지컬은 미세조정기를 거쳤다. 서울 공연은 지난 6일 용산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오픈런으로 열렸다. 주최 측은 4월 공연은 90% 이상 예매됐다고 밝혔다. 뮤지컬 은 1985년 런던에서 초연돼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상연 중이다. 한국에서는 1996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오리지널팀이 내한해 관객을 만났다. 이번 공연에도 영국 스태프가 대거 참여해 한국 인력과 호흡을 맞췄다.1막은 파리에 혁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순간까지를 보... -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연주회
피아니스트 손열음(26)은 이날 연주회의 꽃이었다. 지난 6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불리는 발레리 게르기예프(59)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내한 연주회가 막을 올렸다. 게르기예프는 지난 2월에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바가 있으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하는 것은 2005년에 이어 7년 만이다. 손열음은 1부의 두번째 순서, 오케스트라가 첫 곡인 리아도프의 ‘바바야가’로 몸을 푼 직후에 무대에 등장했다. 연주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손열음은 강하고 빠른 서주의 두 마디에서부터 산뜻한 출발을 선보였다. 협주곡에서 솔리스트의 첫걸음은 이후의 연주를 가늠하는 잣대일 터. 첫발에서 호흡을 놓치면 이어지는 연주에서도 갈지자 횡보를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손열음은 첫번째 타건에서부터 듣는 이를 충분히 안심시켰다. 이어지는 저현(低絃)의 피치카토, 다시 손열음의 피아노가... -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 기념작 오페라 ‘카르멘’
카르멘과 돈 호세의 연기가 빛났다. 미국 태생의 성악가 케이트 올드리치는 메조소프라노로서는 약간 높은 음역을 지녔다. 팜므 파탈의 대명사로 불리는 여주인공 카르멘에 매우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수차례 카르멘을 연기하며 호평을 들었던 성악가답게 연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또 한명의 주인공인 테너 장 피에르 퓌흐랑은 비음이 다분히 섞인 탓에 프랑스 성악가임을 단박에 드러냈다. 힘이 넘치는 성량은 아니었지만, 객석의 뒤쪽까지 충분히 전달되는 ‘직진형 소리’를 구사했다. 아울러 그는 남자주인공 돈 호세의 극중 캐릭터를 세심한 부분까지 묘사해낼 줄 아는 ‘배우형 성악가’였다.국립오페라단이 창단 50주년 기념작으로 오페라 <카르멘>의 막을 올린다. 18일부터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은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카르멘>을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무대는 절충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오페라 <카르멘... -
연극 ‘달빛 속으로 가다’
이 연극의 시종(始終)을 이끄는 표상은 ‘달빛’이다. 달빛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희미한 빛을 뿌리면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감싼다.<달빛 속으로 가다>는 12년 전 대학로에서 초연됐던 연극이다. 당시의 정부가 실시한 ‘새로운 예술의 해 희곡 공모’에 당선됐던 극작가 장성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초연 연출가였던 김철리가 서울시극단의 하반기 정기공연으로 다시 꺼내들었다. 빠르고 유쾌한 연극이 유행하는 시대에 왜 이처럼 ‘느리고 답답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는 것일까? 연출가는 “정치와 이념 과잉의 시대에 인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이라고 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숱한 모순과 갈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1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외려 사람들의 삶이 더 망가졌다는 생각”에 다시금 대본을 집어들었다는 얘기다.무대는 깊은 산속의 암자다. 음력 ... -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
바그너의 음악극을 연상시키는 첫 장면이다. 짙푸른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명창 안숙선이 3m 높이의 사다리를 탔다. 관객에게는 3m가 넘는 긴 치마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치맛속은 그저 사다리일 뿐이다. 그 모양새가 마치 거대한 대모신(大母神) 같다. 객석에서 바라보면 위용이 당당하지만, 창자(唱者)의 입장에서는 몸의 균형을 잡기가 아슬아슬하다. 안 명창은 그 위태로운 사다리 위에서 천지창조를 묘사하는 서창(敍唱)을 판소리로 부른다. “천지가 탄생할 제, 어둠장막 깜깜한데, 현묘한 도, 밝은 빛 한줄기, 음양양분, 한서유강, 강약건습….”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이 ‘판소리 오페라’로 명명한 <수궁가>를 5일 무대에 올렸다. ‘창극’의 전망을 세계로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지닌 공연이다. 적잖은 제작비를 들여 지난해 9월 초연했으나, 공연기간이 단지 나흘에 그쳐 아쉬움이 컸던 작품이다. 동독 출신의 거장 아힘 프라이어(78)가 연출한 이 공연은 지난해 12월 독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