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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한길사아이히만의 최종 언도가 나왔다. 정의에 대한 그의 희망들은 무산되었다. 비록 그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했다 하더라도 법정은 그를 믿지 않았다. 법정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 그는 희생자였으며, 오직 지도자들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이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 그는 ‘희생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세르바티우스가 한 말을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대신해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그의 깊은 확신’이었다. 이틀 후인 1961년 12월15일 금요일 아침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나치 독... -
탁월한 결정의 비밀
▲ 탁월한 결정의 비밀 | 조나 레러·위즈덤하우스1980년대 말 심리학자 폴 안드리아센은 MIT 경영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다. 참가자들에게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라고 요구한 다음 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첫 번째 집단은 구입한 주식의 가격 변동만을 볼 수 있을 뿐 주식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도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주식 거래를 결정해야 했다. 반면 두 번째 집단은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시장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들은 CNBC를 시청하고, 월스트리트저널을 읽고, 전문가들에게 주식시장의 동향 분석을 의뢰할 수 있었다. 어느 집단이 과제를 더 잘 수행했을까? 놀랍게도 정보가 부족한 집단이 정보가 풍부한 집단보다 무려 2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과다한 정보는 오히려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많은 정보를 접한 학생들은 가장 최근의 소문이나 내부자 정보에만 주의를 집중했다. 풍성한 정보를 접... -
전후라는 이데올로기
▲ 전후라는 이데올로기 | 고영란·현실문화“1994년 8월은 일본에서 보낸 첫 여름이다. 그해 8월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오키나와전의 비참함, 원폭의 참상, 공습의 흔적 등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중계될 때마다 내게 일본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상상력이 없었던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학습된 전쟁을 둘러싼 나의 기억은 착각이었던 것일까. 일본의 텔레비전, 영화, 신문 등 어디에도, ‘한국의 8월’을 떠올리게 하는 잔학무도한 일본 군인은 없었다. 가족을 전장으로 보내고 공습을 견디며, 소중한 혈육을 잃거나, 귀환의 체험을 했던 ‘일본 국민’의 슬픔에 가득 찬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 후 내내 8월을 도쿄에서 보냈는데, ‘일본인’이 얼마나 험난한 시대를 보냈는지 세심하게 공들여 묘사하는 드라마는 주인공과 음악만 바뀔 뿐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우리-일본인’의 슬픔으로 가득 찬 공간일 뿐, 전쟁의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타자가 끼어들 ... -
소농 -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 소농-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 쓰노 유킨도·녹색평론사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소농에게 농지는 조상의 무덤이면서, 동시에 향토에 토착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다. 그것은 경제학에서 규정하는 ‘생산요소’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고도로 발전된 산업사회에서 지금도 400만호를 넘는 농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소농의 삶’이 향토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농정(農政)에 이런 인식이 없기 때문에 소농제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일본의 경제환경은 3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이야말로 정보화사회에서 소농의 바른 자리 찾기를 모색해야 할 시기이다. 농업정책의 첫 번째 목표를 소농들이 토착 정주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두고, 이것을 중심으로 지역산업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대형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조개선책’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 농부이자 농학자 쓰노 유킨도는 자급적 ... -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 스튜어트홀·한나래대처리즘의 포퓰리즘은 왜 예측과 달리 대처리즘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일정한 대중적 불만세력을 결속시키고 사회 내에 다양한 분파를 조성하고 결집할 수 있으며 대중적 경험의 일정한 측면과 연결 지을 수 있는지 예견해 준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대처리즘은 분명히 일반 대중 대다수의 가슴과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처리즘이 대중의 사고와 경험의 내부 ‘논리’에 작용하면서도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외부적’ 세력에 그친 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대처리즘을 특징짓는 일정한 사고, 감정, 계산 방식은 하나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세력으로서 일반 대중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었다. 대처리즘이 ‘미약한 대중의 편에 서서 거대한 세력에 맞서고 있는’ 것처럼 내세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우리는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대처리즘은 어느 정도는 자신을 단순히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 당황스럽게도 ‘우리... -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 빅토르 마이어 쇤버거 외·21세기북스정보의 작은 파편 대신 전체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정밀성보다는 느슨함을 높이 치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과의 소통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빅 데이터 기술이 일상생활의 당연한 일부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세상을 더 크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해보려고 애쓰게 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사고방식이 ‘N1=1all’화되는 것이다. 비록 가짜였을망정 명확성과 확실성을 요구했던 분야에서 이제는 흐릿하고 애매모호한 것을 용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현실을 좀 더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대가라고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의 붓 터치는 들쭉날쭉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장엄한 한 편의 이미지가 나타나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같은 현실 말이다. 포괄적 데이터 집합과 들쭉날쭉한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빅 데이터는 스몰 데이터 및 정확성에 의존하던 방식보다 우리를 현실에... -
우주의 구조
▲ 우주의 구조 | 브라이언 그린·승산공간상의 한 지역에 저장될 수 있는 엔트로피의 최대값은 부피가 아닌 표면적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므로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요소와 가장 기본적인 자유도(우주의 엔트로피를 운반하는 최소단위)는 우주의 내부가 아닌 경계면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우주의 내부는 우주의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이것은 플라스틱 조각의 표면에 새겨진 정보로부터 3차원 영상이 결정되는 홀로그래피와 그 원리가 비슷하다. 물리학의 법칙은 우주적 레이저빔의 역할을 하면 경계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들을 비추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 즉 홀로그램 영상인 것이다. (…) 말다세나는 끈이론의 범주 안에서 홀로그래피 우주가설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특별한 양자이론은 한 차원 위의 공간에서 중력이 포함된 다른 양자이론으로 번역될 수 있다....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마음산책“수학의 기초가 뭔지 알아요?” 나는 물었다. “수학의 기초는 숫자예요.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숫자라고 말할 거예요. 눈과 얼음과 숫자. 왜인지 알아요?”수리공은 호두까기 도구로 집게발을 깨서는 구부러진 집게로 살을 빼냈다.“숫자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 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수리공은 수프에다가 크림을 얹고 오렌지 주스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 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 -
공부하는 삶
▲ 공부하는 삶 |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유유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소중한 시간과 힘, 지성의 활력과 이성을 애석하게 낭비하는가!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거나(그렇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공부를 하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모른 채 형편없고 변덕스럽게 한다. 미래의 공부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게 하는 중간결과물, 터득하고 함양해야 하는 덕목, 공부하는 정신,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면밀히 사유하지 못할 것이고, 당연히 만족스럽게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가진 자원이 같다고 가정한다면, 이해하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과 아무렇게나 나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크겠는가! ‘천재성이란 오랜 인내’라고 할 때 그 인내는 조직적이고 총명한 인내여야 한다. 어떤 공부를 해내는 데에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균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 -
김수영 전집
▲ 김수영 전집 | 김수영·민음사무의식의 시에 있어서는 의식의 증인이 없다. 그러나 무의식의 시가 시로 되어 나올 때는 의식의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이 의식의 그림자는 몸체인 무의식보다 시의 문으로 먼저 나올 수도 없고 나중 나올 수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시(同時)다. 그러니까 그림자가 있기는 있지만 이 그림자는 그림자를 가진 그 몸체가 볼 수 없는 그림자다. 또 이 그림자는 몸체를 볼 수도 없다. 몸체가 무의식이니까 자기의 그림자는 볼 수 없을 것이고, 의식의 그림자가 몸체를 보았다면 그 몸체는 무의식이 아닌 다른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시는 시인 자신이나 시 이외에 다른 증인이 있을 수 없다. (…) 진정한 참여시에 있어서는 초현실주의 시에서 의식이 무의식의 증인이 될 수 없듯이, 참여의식이 정치 이념의 증인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행동주의자들의 시인 것이다. 무의식의 현실적 증인으로서, 실존의 현실적 증인으로서 그들은 행동을 택했고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