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래빗 홀’ 니콜 키드먼
니콜 키드먼(44)은 아름답지만 따분한 금발 미녀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는 우리를 대신해 영혼의 심연으로 모험을 떠나는 예술가입니다. 지난주 개봉한 은 키드먼이 주연을 맡고 제작까지 겸한 작품입니다. 키드먼은 원작 연극을 본 뒤 영화화를 결심했고, 상대 남우 아론 에크하트, 감독 존 카메론 미첼을 끌어들여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영화는 6세 아이를 잃은 지 8개월이 된 부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일터에 나가고 가끔 웃지만, 부부는 여전히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 베카는 집안에 남아있는 아이의 흔적을 하나 둘씩 지우지만, 남편 하위는 그런 흔적으로라도 아이를 간직하고 싶어합니다. 베카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과 우연히 재회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하위는 아이 잃은 부모들의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 마리화나를 나눠 피웁니다. 부부의 관계는 조금씩 악화됩니다. 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줍니다. 극중 ... -
‘악질경찰’ 니컬러스 케이지
니컬러스 케이지(47)는 추락할 때 멋있고 정상에 있을 때 못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더욱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도록 부추겨야 합니다. 지난주 개봉한 에서 케이지는 오랜만에 제대로 추락했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형사 맥도나(케이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와중에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사람을 구하다가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이후 맥도나는 가까스로 경찰직에 복귀하지만, 허리 통증이 심해 마약에 의지하는 신세가 됩니다. 맥도나는 압류하는 마약마다 자기 주머니에 넣고, 불법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지고, 직권을 남용해 수사합니다. 경찰 내사과와 갱단이 동시에 맥도나를 압박해 그를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은 아벨 페라라가 연출하고 하비 케이틀이 주연을 맡은 (1992)의 리메이크작입니다. 원작의 폭력성과 케이틀의 열연도 대단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에 바탕한 연출, 연기였습니다. 그러나 독일 출신 노장 베르너 헤어조크가 손 댄 리메이크는 원작과 꽤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특히 ... -
‘비우티풀’의 바르뎀
하비에르 바르뎀(42)은 바다 같은 배우입니다. 세상의 온갖 강이 바다로 흘러들 듯, 사람들의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등의 감정이 바르뎀에게로 흘러듭니다. 13일 개봉하는 로 바르뎀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의 섬뜩한 악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합니다. 조울증을 앓은 아내와 헤어진 뒤 홀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욱스발(바르뎀). 그는 중국, 세네갈 등지에서 온 불법 이주 노동자의 일자리를 알선하고, 경찰에게 뇌물을 줘 단속을 무마해주는 브로커입니다. 그는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능력도 있어 가끔 영매로 일하기도 합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간 그는 큰병을 앓고 있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 옛 아내에 대한 연민,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책임감은 욱스발을 자꾸만 붙들어 맵니다.바르뎀은 역시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
‘로맨틱 크라운’의 톰 행크스
톰 행크스(55)는 미국식 낙천주의의 화신입니다. 파산하거나 사람이 죽거나 나라가 망해도 톰 행크스가 있는 한 영화는 해피엔딩입니다. 그가 (1996)에 이어 두번째로 연출한 영화 (원제 래리 크라운)이 18일 개봉합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주연도 겸했습니다.대형 마트의 직원 래리 크라운은 근무시간 중 상사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습니다. 성실하고 유쾌한 태도로 ‘이달의 직원’에 여덟 번이나 선정된 크라운이었기에, 단지 고졸이라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상태인 그는 세간을 내다판 뒤 학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 전문대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됩니다. 크라운은 새 인생의 막을 엽니다. 영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몰락한 미국 중산층 백인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집을 잃고 가족은 해체됩니다. 여느 영화인이 연출하고 출연했다면 지독한 비관, ... -
여름 블록버스터 그녀가 있어 즐겁다…‘7광구’ 하지원
하지원(33)은 액션 배우입니다. 이렇게 부를 여배우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데 대해 한국 감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합니다.그가 주연한 가 이번주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망망대해 위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지는 대원들과 정체불명 괴수의 싸움을 그립니다. 대원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하지원은 총을 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살아남습니다. 종반부 20여분은 하지원과 괴물 단 둘을 위한 무대와 다름 없습니다. 총제작비만 130억원대가 투입된 3D 블록버스터의 종반부를 홀로 책임질 한국 여배우로 하지원 이외에는 떠오르는 이가 없습니다. 2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양지를 덮친 ‘메가 쓰나미’를 그린 윤제균 감독의 에서도 하지원은 살아남았습니다. 하지원은 침체에 빠져있던 윤 감독의 재기작 에서 여자 복서였고, 얼마전 인기를 끈 드라마 에서는 스턴트우먼이었으며, 지금 촬영 중인 에서는 탁구선수 현정화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여배우는 없습니다... -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 뎁
조니 뎁은 꿈꾸는 떠돌이 소년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가 되려고 합니다. 뎁이 주연한 가 19일 개봉합니다. 의 네번째 편인 이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총 1160만 관객을 모은 인기 시리즈입니다. 뎁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해적선장 잭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습니다. 스패로우 선장은 할리우드가 낳은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군에 속할 겁니다. 명색이 해적인데 그리 사악해 보이진 않고, 엄청난 위기를 몰고 다니지만 얼렁뚱땅 헤쳐나갑니다. 바람둥이 같은데 애인은 없고, 비겁하지만 때론 터무니없이 용감합니다. 뎁은 시리즈의 성공과 함께 할리우드 톱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시리즈 이전과 이후에도 그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들, 아버지였던 적이 없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뎁은 그의 영화에서 주로 기괴한 외톨이 역할로 출연했습니다. (1990)에선 고성의 기계인간, (94)에선 괴상한 성적취향을 가진 재능없는 영화감독, (2005... -
영화 ‘마셰티’의 스티븐 시걸
예순살 된 분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스티븐 시걸은 불량식품입니다. 싸고 맛있지만 건강에 나쁩니다. 그러나 불량식품은 그 맛입니다.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에 대해 덜 알려진 사실이 있습니다. 시걸은 일본에서 합기도를 배워 일어를 유창하게 하고,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서 여러 장의 음반을 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에너지 드링크를 파는 사업가이며, 독실한 불교도입니다. 그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연출과 주연을 겸한 에서는 ‘환경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는 다국적 기업에 맞서 싸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팬들이 시걸을 바라보는 이미지는 한때 유행했던 ‘스티븐 시걸 시리즈’에 농축돼 있습니다. 스티븐 시걸이 나온다면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보여주는 유머입니다. 예를 들어 은 “스티븐 시걸이 사다코의 목을 꺾는다”, 은 “지구로 날아드는 초거대 운석, 스티븐 시걸이 운석의 목을 꺾는다” 등입니다. 그렇게 숱한 영화 속에... -
‘라스트 나잇’ ‘네버 렛미고’…키이라 나이틀리
키이라 나이틀리는 턱선 하나로 영화계를 평정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영화정보 사이트 IMDb에서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를 “두드러진 뼈대: 튀어나온 광대뼈와 강인한 사각턱”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의 영화 사이트에서 여배우의 특징을 ‘광대뼈와 사각턱’이라고 기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군요. 그러나 나이틀리가 영화 속에서 맡은 역할은 뼈대보다도 강인했습니다. 그녀의 이미지에 대해 흔히들 ‘말괄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하지만, 어딘지 아쉽습니다. 말괄량이는 ‘얌전하지 않고 덜렁거려 여자답지 못한 여자’를 일컫는데, 이 말엔 결국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자답게’ 길들여져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다운 게 대체 무엇입니까. 나이틀리는 출세작인 에서 여자 축구선수였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말 북한과 영국의 수교 10주년을 맞아 서구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검열로 절반 가까이 잘려 ... -
‘미트 페어런츠3’ 로버트 데니로
로버트 데니로는 가부장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을 때조차 그는 가부장의 권위를 보였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 남우들에게 좋아하는 배우를 물으면 절반 정도는 로버트 데니로를 꼽았습니다. 등의 대표작에서 데니로는 갱, 베트남 참전용사, 권투선수같이 남성적이고 강인한 역을 능란하게 소화했습니다. 한국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있다면 미국엔 장인과 사위의 갈등이 있습니다. 시리즈는 장인·사위 갈등을 소재로 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31일 개봉하는 3편은 그레그(벤 스틸러)가 잭(데니로)의 사위가 된 지 10년째 되는 해에 벌어집니다. 직업, 외모, 재산 등 모든 면에서 못마땅하던 사위에게도 어느덧 정이 든 것일까요. 자신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잭은 그레그에게 가문을 이끄는 ‘갓퍼커’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레그가 순조롭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는다면 영화가 재미없겠죠. 이 영화에서도 데니로는 여전히 아버지로서의 카... -
‘블랙 스완’ 위노나 라이더
위노나 라이더는 1990년대 할리우드의 ‘요정’이었습니다. 이제 불혹이 된 요정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번주 개봉작 에서 그의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포스터에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은 라이더가 아니라 그보다 10살 어린 내털리 포트먼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니나(포트먼)는 뉴욕 발레단의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입니다. 예술감독(뱅상 카셀)은 새 시즌의 오프닝 작품으로 를 올리면서, 발레단의 간판스타였던 베스(라이더)를 하차시키고 새 주역을 내세우기로 합니다. 감독의 눈에 든 니나는 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발탁됩니다. 하지만 연습벌레이자 완벽주의자인 니나는 순수한 백조 연기엔 능하지만 관능적인 흑조 연기는 미숙해 감독의 불만을 삽니다. 테크닉은 떨어지지만 천부적인 관능성을 가진 신입단원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의 불안감을 자극합니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라이더는 토슈즈를 신은 우아한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습니다. 짙은 눈화장을 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