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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채와 정운영 같은 진보 경제학자를 뛰어넘고 싶다”
‘88만원 세대’처럼 젊은 세대의 빈곤을 간명하게 표현한 말은 없었다. 지난 5년간 이 말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경제학자 우석훈(44)이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과 함께 펴낸 <88만원 세대>(2007·레디앙)에서 만들어낸 용어다. <88만원 세대>는 20대의 경제적 독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다루고 그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지금까지 15만부 넘게 나간 경제분야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로 경제민주화 논의를 대중적으로 촉발시켰다. 그는 경제와 정치, 문화를 아우른 사회비평서로 젊은 세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론이 아닌 생활의 예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높인다. 실천의 영역에서도 그는 경제민주화와 분배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방송인 김미화와 김용민, 경제학자 선대인과 함께 지난 1년 넘게 대기업 입장을 대변해온 보수 언론에 대한 대안 매체로 경제 ... -
“전두환씨, 김근태 고문 죽음에 사과할 생각 없습니까”
“독재자 전두환씨, 취재하러 왔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으로 김근태 고문이 돌아가신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 사과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이상호 기자(44)는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서거한 2012년 1월 초, 연희동 전두환 사저를 찾아 소리를 질렀다. 취재를 위한 연희동 방문은 계속됐다. 1월25일엔 의경과 승강이를 벌이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0월을 구형받아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치러야 했던 58건에 달하는 소송 중 하나이다.2005년 7월 삼성과 정·관계의 유착 관계를 폭로한 ‘삼성 X파일’ 보도 이후 그가 보낸 지난 7년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보도는 ‘삼성=이건희=국익’의 등식에 사로잡혀 있던 국민들에게 삼성 이건희 일가의 불법성을 깨닫게 해줬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성과를 냈지만 그 자신에게는 지난한 법적 투쟁의 시작이었다.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고 좌천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M... -
“삶과 의식에 영향을 준 물건들의 근현대사 구상중”
요즘 역사학에서 미시사와 생활사를 다루는 저작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거대 담론에 가려진 역사의 이면을 들춘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때로 생활이나 문화 자체에 매몰되어 역사윤리, 역사철학, 역사관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경향도 보인다. 지나치게 미시적이어서 대중성이 떨어지거나 흥미 위주로 써져 알맹이 없이 끝나기도 한다. 역사 속 숨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전달해주면서도 큰 흐름을 읽게 해주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역사학자 전우용(50)이 갖는 미덕은 이 지점에서다. 그의 최근작 <오늘 역사가 말하다>를 편집한 신미희 투비북스 대표는 “생활사나 문화사 자체에 매몰되다 보면 ‘인간에게 왜 역사가 필요한가’보다는 취미나 지적 즐거움으로서의 역사로 그칠 가능성도 있다”면서 “전 박사의 경우 한국사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굳건히 하되 보편적 인간의 역사를 껴안고 또 그 어떤 학자보다도 미시사에 강하면서도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이를 다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
“시는 사람 내면의 다층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하는 것”
“사람 마음을 훔쳐보는 재주를 갖고 싶었다”던 열여덟 살 소년. 그 바람대로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 한 가지 재주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재주이다. 시인 이병률(45)은 50만부가 팔린 <끌림>, 20만부를 넘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와 같은 여행 산문집으로 폭넓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여행해온 낯선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 그곳에서의 마주침과 단상들을 들려준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거나 겪고 싶을 이야기들이라 공감이 간다.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사진도 마음을 훔치는 도구이다. 지난 13일 서울 정동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병률 시인은 라디오 작가로 18년을 일했다. 어려서부터 주로 심야 프로그램을 맡았다. “청취자의 입장에서, 그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가 글쓰는 게 필요했어요. 제 입을 빌린 그들의 이야기로 청취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었죠.” 그는 “팔리는 책이 될 줄 몰랐다... -
“한문 몰라도 동양철학 할 수 있게 인프라 구축해야”
“나는 고전(古典)이 옛 글자인 고전(古篆)으로 쓰여 있어서 홀로 외롭게 싸우는 고전(孤戰)이자 힘들게 싸우는 고전(苦戰)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서 생각해볼 만한 전거가 되는 고전(考典)이어서 다른 책에 비해 높이를 가진 고전(高典)이 되기를 바란다.” 신정근 교수(47·성균관대 동양철학과)가 저서 <논어>(한길사)에서 고전을 두고 벌인 언어유희다. 그는 이 책에서 “주역과 논어 등은 경전의 반열에서 고전의 대열로, 다시 고전의 대열에서 인문학의 자리로 내려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전으로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이를 쉬운 언어로 번역하거나 대중서로 풀어낸다. 고전에 담긴 지식을 전하는 ‘헤르메스(전령사)’이자 학자들의 서가에서 대중의 품으로 고전을 돌려주려는 ‘프로메테우스’를 자처하고 있다. 동양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지난달 24일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저서 중 가장 대중적 성공을 거둔 것은... -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저자 박찬일 셰프
이탈리아 관광청은 요리가 박찬일(47·사진)에게 보수를 줘야 하겠다. 그처럼 맛깔스러운 요리와 글로 이탈리아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하는 이가 또 있을까. 그의 이탈리아 요리 이야기에 홀려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이 한둘은 아닐 듯싶다. 이탈리아 요리전문가이니 그를 ‘셰프(chef)’라 부르는 게 낫겠다. 박찬일 셰프는 (2009·창비)를 비롯해 여러 권의 요리 에세이로 우리의 삶과 추억 속에 깃든 요리를 이야기해왔다. ‘글 쓰는 요리사’로 알려진 그를 지난 15일 서울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다 서른넷의 나이에 요리를 배우러 이탈리아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기자생활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길을 찾은 첫 이유였다. “기자는 개인시간도 일하는 데 써야 하고 약간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면도 있어야 하는데 저와 좀 맞지 않았죠.” IMF 여파로 월급이 절반으로 깎이자 ‘차라리 잘됐다’ 싶은 마음으로 나왔다. 때는 19... -
강연·읽기·쓰기의 바쁜 틈새서 집중력으로 고전에도 도전
자기경영 계발서의 대표적인 저자를 꼽는다면 공병호(52·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가 이 분야에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 시장을 일궈온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1년 (21세기북스)를 낸 이후 지금까지 100여권의 책을 펴냈다. 1년에 평균 10권가량을 출간한 셈이다. 지난 6월에 나온 (21세기북스)이 딱 100권째였다. 총 판매 부수는 대략 160만부이니 보기 드문 인기를 꾸준히 누렸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는 지금까지 12만부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2001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차렸고 다수의 저서 제목 앞에 ‘공병호’를 붙였다. 지식산업의 1인 기업가로 그만한 성공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의 대표적인 다작가이자 다독가인 그를 지난 18일 서울 가양동 자택에서 만났다. 매년 300회 이상의 강연을 하는 그는 그날 오후에도 부산 강연을 앞두고 있었다.출... -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51)는 2007년 어느 날 고서를 구하기 위해 들른 경매 사이트에서 눈에 띄는 고서 한 권을 발견했다. 책의 제목은 . 몇 장밖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책의 가치를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국문학사에서 이후 두 번째로 발굴된 희곡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性) 희곡으로 19세기 조선 문학의 지형도를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61세의 노인과 18세 여인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설정부터 노골적인 성애 묘사까지 는 유교 사회의 금기를 뛰어넘은 작품이었다. 그의 발굴은 이후 고려대 도서관에서 발견된 또 다른 희곡인 와 함께 한국 고전 희곡의 역사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안 교수는 그간 학계에서 소홀히 한 조선후기 산문에 주목해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해 냈고, 이를 오늘날의 언어로 대중에게 소개해왔다. (휴머니스트)와 (문학동네) 등 그의 저서들은 꾸준히 1만부 이상 팔리고 있다. 인문서 저자로서 이 정도의 독자층을 갖고 있는 이는 흔치 않다.... -
깔끔·산뜻한 문장에 ‘판사’ 별호…당분간 쉬겠지만 늘 소수파에 주목
“아름답고 정확한 한국어를 쓰겠다는 몽상은 내가 지녔던 여러 몽상들 가운데 실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몽상이었다.” 칼럼니스트 고종석(53)이 저서 <감염된 언어>(개마고원)에서 고백한 ‘몽상’이 정말 몽상에 그쳤다고 생각할 이는 별로 없다. 그는 시인과 비평가, 출판 편집자 등 글을 보는 눈이 남다른 이들에게 더 인정받는다. 시인 장석주가 “그가 쓰는 한국어 문장은 우아하고 견실하다. 아울러 어휘를 골라 쓰는 데 섬세하고 정확하다”고 말한 것은 세간의 평가를 종합한 듯하다. 아름답고 정확하다는 말은 글에 담긴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관계에 때묻지 않고, 여론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구체적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합리적 판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를 ‘판사’라고 부른 것이 농담만은 아니었다. 고종석은 언어학자이자 기자, 소설가, 평론가로 활동했다. 성균관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으로 석사, 박사 과... -
‘대한민국史’ 저자 한홍구 교수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부정한 권력일수록 그 출발점이 되는 과거를 미화해 정당성을 얻으려 한다. 과거를 아예 지워버리거나 없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인사들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 것이 전자의 예라면 북한의 조선중앙TV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록영화에서 해임된 리영호 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의 모습을 삭제한 것은 후자의 예이다. 역사는 기억과 해석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터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첨예하게 견해가 대립하는 전장은 현대사다. 과거의 영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고 또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이 출발한 지점이 대개 가까운 과거이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역사학이 추구하는 객관성을 지키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대사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놓자는 주장도 있다.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