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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광부, 그 무거운 삶의 무게
“광산에서는 늘 광부가 주연이었다. 어두컴컴한 그늘에서 고된 일을 해온 선탄부, 아니 여자 광부. 무겁게 입을 가린 분진 전용 마스크에서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검은 공간 속에서 일상을 엮어 가는 선탄부.”사진작가 박병문은 강원도 태백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태백의 검은 땅에서 자랐다. 광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일은 그에게는 아버지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반추하는 작업이다. <선탄부>에서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넘어 탄광의 다른 이들에게로 눈을 돌린다. 갱도에서 캐낸 석탄에서 불순물인 잡석이나 이물질을 골라내는 여성 선탄부들이 그들이다. 작가는 “밤샘 작업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오면 집을 향해 질퍽한 눈 위를 걸어가던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삶의 진한 향기가 났었다”고 썼다. -
흑백사진서 끄집어낸 ‘우리 자신’
“분명한 것은 그 순간 사람들은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내고, 침묵하고 있었던 공기가 흔들리고, 벽처럼 딱딱하게 버티고 있던 것들이 깨지고, 닫혀 있던 감정의 문들이 열리고, 각자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집단의 정념에 몸을 맡긴다는 것이다. 그때 멎어 있던 역사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기억극장>의 저자 김은산은 사진작가 이갑철의 1980년대 사진들을 두고 “한국인의 집단적인 기억을 이끌어내는 ‘스틸사진’들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확실히 이갑철의 사진들은 언어화하기 힘든 공기를 품고 있는데, ‘서울 1987’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또한 그러하다. 경찰과 청년의 실랑이를 기울어진 구도로 포착한 이 흑백사진에는 묘한 정적과 폭발 직전의 긴장이 공존한다. “(사진은) 우리가 버려두고 돌보지 않은 시간,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그 순간 결코 깨닫지 못했던 이야기들, 바로 우리 자신”을 환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담박한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삶의 성찰
“어둠에 어둠을 갉아먹고 적막으로 쌀찐 벌레가 좌선방 좌복 위에 돌처럼 앉아 있다.”사진작가 서옥경은 세종시 경원사 신자로 오랫동안 절 주변을 찍어왔다. 시인이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회장인 효림 스님(경원사 주지)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효림 스님이 젊은 시절 깊은 산중의 수행처에서 홀로 지낼 때 겨울바람을 찍겠다며 무거운 사진기를 지고 산에 올라왔다. <얼룩>은 작가의 사진에 효림 스님의 시를 나란히 배치한 사진집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풍경과 스님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담박한 시와 맞물리며 소슬바람처럼 다가온다. -
축구선수 되고픈 소년의 ‘역동적 꿈’
“그 흰색 표면은 이미 화려한 색채의 파편들, 역동적으로 교차한 선의 궤적들, 불꽃놀이 화약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진 물감덩어리들로 가득 차 있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압도하는 시각적 스펙터클과 보드서핑에 버금가는 다이너미즘이다. (중략) 비디오 속에서는 우리가 보는 그 구조물과 똑같은 공간에서 한 소년이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움직임으로 물감 묻은 축구공을 연신 차올린다.”<까다로운 대상>은 2000년 이후 28명의 국내 미술가, 2명의 국외 미술가, 1명의 국내 소설가, 1명의 건축가 등이 동시대 미술계와 문화예술의 장에서 펼친 활동을 작가론의 관점에서 접근한 현대미술 비평서다. 사진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함경아 작가의 설치미술 ‘악어강 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 작가는 축구선수를 꿈꾸는 탈북 소년을 전시실로 초대해 물감을 묻힌 축구공을 갖고 놀게 한 뒤 그 흔적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
작은 게 사랑스럽다
“참새나 강아지같이 조그맣고 단순한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큰 것은 싫다. 같은 것이라도 친밀감을 갖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자연 속으로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 또한 즐겁다. 얼마 전 덕소에서 휴양 중 지붕 위에서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새들의 귀여운 모습이 재미있어 화폭에 옮겨봤다.”올해는 나무, 해, 달, 아이, 까치, 마을 등 한국적인 소재를 친근한 붓질로 담아냈던 화가 장욱진(1917~1990)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장욱진은 당대의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해 잡지나 신문 또는 책에 들어갈 삽화를 자주 그렸다. 때로는 그림에 짧은 글이 덧붙기도 했다. <강가의 아틀리에>는 그가 신문·잡지 등에 발표한 글과 삽화를 모은 화문집으로 1976년에 초판이 나왔다. 이번에 나온 것은 기존의 글 20편에 새로 발견한 글 23편을 보강한 개정증보판이다. -
다른 꿈속으로 나를 밀어넣는 희열
“공방에서 대패질을 하고 가죽을 다듬다 보면 멀어져 가고 밀려나고 밀어내는 것들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느낀다. 갑갑한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그래서 현실 감각을 멀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둔감했던 감각의 세포들이 되살아나 다른 꿈속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바느질은 잡스러운 고민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까.”근대사 연구자인 저자는 30대 중반 무렵 목공방과 가죽공방에 발을 들여놓은 후 공방의 매력에 빠져 10년째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꿰매고 있다. <공방 예찬>은 그가 취미로 작은 가구와 가방을 만들면서 느낀 기쁨을 짧은 에세이와 사진으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가장 원초적인 근육을 움직이면서 창조적 노동에 참여하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정한 기쁨”이라고 말한다. -
헛것으로 가득 찬 ‘우상의 숲’
“장제스의 동상이 시내 사거리 광장, 관공서, 각급 학교, 마을 앞에 무분별하게 세워졌다. 장제스가 죽고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이 바뀌자 그 수천수만 개의 동상이 뽑혀서 장제스가 잠들어 있는 계곡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광경은 말 그대로 ‘우상의 숲’을 이루었다. 우상이란 대부분 가공되고 조작된 가면을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우상의 가면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공포와 두려운 마음이 만들어서 헌증한다.”한국 사회의 온갖 우상이 탐욕 위에 세워진 헛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렬한 그림체로 고발해온 홍성담 화백은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일”에 비유한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내버린 오물들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남긴 상처와 피고름 속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제주 4·3사건, 광주항쟁, 유신독재, 세월호 참사,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 촛불집회를 다룬 그의 그림과 글... -
이제 당신은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얼굴이 나왔든, 스쳐지나가는 옷깃만이 잡혔든, 이 책은 모두 이 땅 사람들의 얼굴과 모습과 행동에 빚진 기록 사진집이다. 이 책은 ‘그날’ 당신과 내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어디에 있었든 이 역사의 동참자들이며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사람들이다. 어디에 있었느냐는 물음은 그래서 이렇게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윤성희 작가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 결정 이후 열린 촛불집회에서 찍은 이 사진 속에서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감격을 곱씹고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10명이 2013~2017년 광장의 기억들을 기록했다. 책의 1부는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걸친 촛불집회, 2부는 세월호에서부터 노인 빈곤 문제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상처를 담았다. 사진들은 대통령 한 명의 파면으로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
언제쯤 끝날까, ‘철조망’ 조국
“그래도 훗날 철조망이 걷히고 나면 ‘분단의 고통을 겪던 1980~90년대 우리의 조국 풍경이 이러했노라’고 사진으로 말할 날을 기대하며 이어 온 철조망 사진작업이 어느덧 30년 세월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철조망 조국 그대로다. 물론 해수욕장으로 개방되거나 상업시설이 들어선 곳 일부에서는 철조망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변함없음’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작가는 고성과 속초, 양양과 강릉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도로변 풍경을 30여년간 사진에 담았다. 분단의 산물인 철조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변 풍경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철조망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청년들은 모래사장에서 배구를 한다. 주민들은 철조망에 오징어와 빨래를 널어 말리거나 호박 넝쿨을 키운다. 철조망과 평범한 일상의 기묘한 동거는 언제쯤 끝날까. -
차별 없는 예술
“가장 최근에 설치된 UN 커미션 작품 가운데 괄목할 만한 것으로는 ‘반환의 방주 The Ark of Return’를 들 수 있다. 노예무역과 그로 인한 희생자들을 기리며 세워진 이 조형물은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아이티계 미국인 건축가 로드니 리온에 의해 제작되었다. 리온은 대서양의 삼각무역 구도를 작품에 형상화하면서 100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운반된 경로와 선박을 조각에 담았다.” 책은 뉴욕의 퍼블릭 아트(공공미술)에 대한 것이다. 퍼블릭 아트는 계층, 인종,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미술이다.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퍼블릭 아트는 일상의 풍경에 독특한 돋을새김을 선사한다. 사진은 ‘반환의 방주’ 중앙에 놓인 조각이다. 흑인 노예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 조각은 짐바브웨이의 먹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