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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회예술의 시대
한국의 20세기 예술은 반세기의 짧은 시간 동안 예술지형을 만들어냈고, 21세기 예술은 예술의 장 내에 존재했던 예술을 사회의 장 바깥으로 확장했다. 확장의 단초는 1980년대로부터 나왔다.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비판적 리얼리즘은 민중미술과 포스트민중미술의 담론과 실천을 거치면서 정치미술로 진화했다. 정치미술은 사회의 장 내에서 발생하는 권력관계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예술을 이르는 비평 개념이다. 이때 발생하는 예술의 정치성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을 사회적 개념으로 재구성한 것이 사회예술 비평이다. 사회예술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예술이며, 과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나아가 사회예술은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실천을 통합의 관점에서 창조적으로 융합하는 예술이다.■예술생태의 재구조화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시대는 한국 예술가들에게 정치적 의제를 예술적 실천의 주요 의제로 다룰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으며, 예술운동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
(29) 표현의 자유
작품 내용에 대해 비평하는 것은 예술적 실천인 반면, 작품을 철거하는 일은 정치적 실천이다. 예술과 정치는 무관하지 않지만, 예술공론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정치는 위험하다. 그것은 예술의 정치화다. 예술은 정치를 비판하거나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예술을 통제했을 때 남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예술은 정치와 종교의 지배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예술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있었다. 예술은 정치적일 수는 있지만, 정치의 도구가 되는 순간 근대 이후 예술이 쌓아온 예술공론장의 성좌를 잃어버린다. 예술을 정치적인 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예술은 죽은 사회를 지탱하는 껍데기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와 근대예술…표현의 자유를 상실한 예술은 성립이 불가능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정신을 만드는 주춧돌이자 그것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것은 현실정치의 장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살아있게 만드는 기본 요소... -
(28) 치유의 예술
예술은 치유의 방법이자 그 결과다. 예술은 타인의 고통은 물론이고 예술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아도르노는 예술이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가 아니라 그 상처를 송곳으로 계속 찔러 덧나게 만드는 기제라고 했다. 예술가들이 상처를 다루는 것은 그것을 아물게 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도록 들춰내서 사회적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기억투쟁을 벌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승일은 1980년대 말 학생미술운동의 과정에서 겪은 고통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포스트-트라우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임흥순은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를 돌아보며, 동시대 자본주의 질서를 관통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기라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전승일이 최면치료 과정에서 토로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한편의 비디오클립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으로 만들어냈다.■전승일 ‘포스... -
(27) 비물질 예술
예술의 존재양식은 ‘지속가능한 물질형식’이다. 특히 시각예술에 관한 전통적 관념은 확고부동한 정의로 이 점을 강조한다. 음악이나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에 비해 시각예술은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질형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에 균열이 가고 있다. 공연장, 전시장과 같이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을 나누던 고유의 예술 장을 넘어서 생활세계로 확장하는 예술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나들며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고 있다. 천경우는 신체 접촉의 체험이나 비가시적인 에너지 네트워크 프로젝트로 탈물질 예술소통을 시도한다. 박찬국은 도심 속 옥상농부 실험으로 생태공간의 확장과 공동체적인 소통을 시도하며 청년의제를 다룬다. 이들은 물질형식의 생산을 최종 목표로 삼지 않고, 탈물질의 사회적 퍼포먼스로 사회적 예술의 지평을 확장한다. 사회체제의 변동은 예술체제의 변동과 맞물려 돌아가는 중요한 모멘텀이다. 정보화혁명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예술의 생산과 소통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자본주... -
(26) 시장예술
예술노동의 소외를 복지 프레임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예술가들의 작품 생산활동을 미술시장이라는 단선적인 채널에 귀속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화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시점에 지난 몇년간 존재했던 시장예술 프로젝트들은 매우 긍정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장은 상품을 교환하는 장소다. 그것은 노동의 결과물로써 생산된 상품을 거래하는 곳이다. 따라서 시장에는 상품논리와 인간적 소통이 공존한다. 이 점에 착안한 예술가들은 시장이라는 장에서 예술적 활동을 펼침으로써 그 공간을 활성화하거나 재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시장예술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시장 속 예술의 함의와 가능성을 시장을 꾸미고 활성화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예술노동의 소외 현상 극복위한 단초 제공시장예술은 예술의 재구성에 기여하는 전환의 동인이다. 시장예술은 예술노동의 소외 현상을 극복하려는 대안 모색에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시장예술 프로젝트들은 5% 미만의 예술가들에... -
(25) 국가주의 예술Ⅱ
해방 70주년이다. 해방둥이가 만 70세를 맞이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식민의 잔재를 털고 해방의 역사를 제대로 되새길 만한 시간이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 해방의 참뜻을 얻지 못했다. 국가적 규모와 국민적 성원에 힘입은 대규모 독립기념사업이 이어져 왔지만 일제강점기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예술은 해방의 기쁨을 나누고 식민의 상처를 씻어내는 일에 마침표를 찍지 않고 있다. 1960~70년대 국가주의 예술이 반일과 반공의 국시를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차원에서 담고 있다면, 1980년대 이후의 국가주의 예술은 민족주의 관점에서 국가공동체의 공감대를 확산하는 데 주력했다. 김영중의 ‘불굴의 한국인상’은 국민정서를 집약한 민족주의 서사의 기념비적인 대작이다. 이승택의 ‘김상옥 열사의 상’은 영웅 조상의 전형성을 비껴 나간 공공미술 작품이다. 김서경·김운성의 ‘평화의 소녀상’은 제국주의 전쟁의 상처를 담은 추념의 공공미술이다.■ 김영중... -
(24) 국가주의 예술Ⅰ
1960~1970년대는 전후의 폐허를 딛고 국가재건의 열망이 넘쳐나던 시대이다. 4·19 혁명의 민주주의 정신은 5·16 쿠데타라는 민족주의를 앞세운 국가주의 정신으로 바뀌었다. 모든 인식과 실천의 제1원칙으로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계급과 지역, 성별, 세대를 불문하고 국가통치의 준거로 자리 잡았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는 예술. 그것은 가히 국가주의 예술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와도 짝패를 이루는 개념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이어져온, 반일이나 반공의 국시를 계승하는 것이기도 했다.■ 애국선열 조상, 60·70년대 시대정신 집약한일수교회담으로 반일정서가 팽배하던 시절, 수도 서울의 중심지 가로변에 37인의 역사인물 조상(彫像)이 들어서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의 국민정서를 담은 이 프로젝트는 광화문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대로변에 위인 조상을 세우는 일이었다. 1964년... -
(23) 분단미술Ⅱ
분단은 한국 사회의 일상을 직조해내는 거대한 구조이자 그러한 일상이 재구축해내는 유동하는 질서이다. 한국 사회는 한반도 남단에만 존립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여전히 분단 이전의 한반도 전체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 위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 깊이 스며들어 있는 가상의 코리아는 현실을 지배하는 강력한 기제이다. 분단체제는 한국 사회에 불구의 마음을 심어두었다.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먹고사는 냉전체제를 공고히 하는 밑거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생장하는 내면화한 정신적 구조 그 자체였다.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들에게 분단체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예술작품 속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금기인 시대가 있었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1980년대 이전까지 30여년간 철저히 분단문제에 침묵했다. 민주화시대 이후 동시대 예술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후기적 현상은 분단을 넘어 통일을 이야기하는 탈분단미술이다. 월북자 아들이라는 연좌제 시각의 고통 속에서 성장한 ... -
(22) 분단미술
7월27일은 한국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한 정전협정일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시 중단한 지 62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공공미술 작품들은 분단과 전쟁을 되돌아보았다.분단미술은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는 데 기여한 것만이 아니라 그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냉전의 상징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분단미술은 분단으로 인해서 발생한 전쟁과 냉전, 비극과 영웅주의 등을 포괄한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전쟁영웅을 기념하는 김경승의 ‘맥아더장군동상’은 영웅주의 공공미술의 대표작이다. 이순신장군상과 더불어 가장 널리 세워진 ‘이승복어린이동상’들은 냉전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전쟁기념관의 윤성진 작품 ‘형제의 상’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함축한다.■ 김경승 ‘맥아더장군동상’전쟁 영웅주의의 대표적 조형물1957년 9월16일.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응봉산 정상에 ‘맥아더장군동상’이 들어섰다. 한국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역사적 사건인 인천상륙작전 개시일을 기념하는 날을 맞아 연합... -
(21) 모성의 감성학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예술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매우 일반적인 도상이다. 예술이 어머니를 다루는 방식은 어머니 여성에게 투사하는 모종의 사회적 통념에 근거한다. 생명, 보살핌, 강인함, 따사로움, 희생 등의 개념들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보편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예술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때로 매우 각별하고도 특수한 방식으로 장소성을 발현하며 새로운 의미로 작용한다. 부산 태종대공원에 있는 전뢰진의 조각 ‘모자상’은 자살바위 인근의 비극적인 장소성을 따뜻한 감성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임옥상의 ‘대지-어머니’는 땅을 딛고 선 어머니의 쇠잔한 육신을 통해 어머니 이미지의 이면을 내비친다. 필리핀 작가 아그네스 아렐라노의 대지에 누운 임신부 여성 나체, ‘달의 여신 할리야’는 여성성에 관한 이중적인 가치로부터 나온 터부를 거둬들이게 한다.■ 전뢰진의 ‘모자상’자살바위 인근의 비극적 장소성을 감성공간으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