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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연재를 마치며
2016년 10월6일 경향신문 창간기념일부터 매주 1회 연재해 오던 ‘필화 70년’을 7개월여 만에 총 33회로 일단 종료한다. 원래는 8·15 해방 이후 70년간의 필화를 중요한 사건만 엄선해 30여회에 걸쳐 다루고자 기획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유신통치 개막 직전인 1971년까지만 다루는데도 예정했던 30회를 넘겨 버렸다. ‘필화 70년’ 시리즈는 결국 ‘필화 26년’으로 마감하게 되어버려 여간 죄송스럽지 않다.한국의 필화는 곧 분단 독재체제의 존립 명분과 일치한다. 국가보안법이 가장 끔찍한 감시탑이었고, 그 다음이 친일·친미파 비판 금지라는 경고등이 보이면서 계속하여 군부와 기독교 비판은 터부라는 옐로카드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민주화란 곧 외세를 탈피하고 민족 주체성을 확립해야만 실현 가능한 제도란 점에서 필화의 역사는 곧 민주 투쟁사의 피의 얼룩이나 다름없다. 처음 이 연재를 기획했을 때는 박근혜의 몽매한 파렴치 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여서 그 실상을 ... -
(32) 월간 ‘다리’ 필화 사건
월간 ‘다리’지 필화는 제7대 대통령 선거(1971년 4월27일)를 앞두고 신민당 김대중 후보 홍보활동을 원천봉쇄하려는 독재체제의 흑막과 중앙정보부의 용공조작 행위, 이에 공조한 권력 지향형 검찰, 그런데도 무죄 판결을 내린 용감한 판사가 나중에 사법부 파동으로 법복을 벗게 된 사건까지 가히 ‘필화의 종합세트’였다.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 중인 반대 의원들을 따돌리고, 지지 의원들만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제3별관에서 1969년 9월14일 일요일 새벽 2시경 날치기 통과시킨 게 박정희의 3선개헌이었다.1970년은 그들에게 악몽이었다. 정인숙 여인 의문사(2월17일), 와우아파트 붕괴(4월8일), 김지하의 ‘오적’ 필화(6월2일), 전태일 분신(11월13일) 등등으로 민심은 흉흉했다. 이런 가운데 돌발사건이 또 하나 터졌다. 9월29일 신민당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당 내부는 물론이고 중앙정보부 예측도 뒤엎은 채 강경파 김대중이 선출된 것이다.■ ‘40대 기... -
(31) 남정현 ‘분지’ 필화 사건
작가 남정현(南廷賢, 1933~)이 단편 ‘분지(糞地)’(현대문학, 1965년 3월) 때문에 연행·고문과 수사·구속·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1967년 6월28일)을 받은 지도 반세기가 되어 간다. 이 필화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 대해서는 한승헌 변호사의 여러 기록들(<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권력과 필화> 등)로 사건 전모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반핵 평화’ 문제를 제기한 작가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민족문학사적인 해석과 평가는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차제에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작가는 이 소설 창작 동기를 “반핵과 반미”에서 찾고 있다. “핵무기의 엄호를 받고 있는 미군에 의해 훼손되는 민족적인 자주권, 그리고 인간적인 모독, 거기에서 오는 우리 민족의 울분과 자존심 등을 민족적 양심에서 형상화한 것”이었다.“지금까지 역사상에는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수없이 ... -
(30)“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안 준비” 보도에 ‘빨갱이’로 몰아 연행
“어둠의 시간에 그가 있었다./ 아픔의 시간에 그가 있었다./ 거짓에 길들여지는 시간에 그가 있었다. (…)/ 그는 한반도의 상공에 날고 있는 각성의 붕(鵬)이다. 이와 함께 그는 한반도와 한반도를 에워싼 모든 힘의 논리를 이성의 논리로 이겨내는 물질적 정화(精華)이다./ 리영희!”(고은 ‘어떤 서사’, <리영희 저작집>, 한길사)■ 리영희의 첫 필화리영희(李泳禧, 1929~2010년)의 첫 필화는 케네디·박정희 회담(1961년 11월14일) 취재기였다. 5·16쿠데타의 후속 절차였던 박정희의 도미 여정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합동통신 3사 기자만 엄선됐는데, 그는 합동통신 소속이었다. 회담 후 언론들은 공식 발표문대로 “군사원조도 약속하고, 경제원조도 해주고 정치적 승인도 했다는 따위의, 두 손 벌려 박정희의 요구를 전면 수락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냈다.”(리영희-임헌영, <대화>, 한길사)그런데 리영희는 워싱턴 포스트의 주선으로... -
(29) 재벌에 의한 필화 1호 : 정경·권언 유착의 심화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부정축재처리위원회가 구성(5월28일)되어 기업인들이 구속됐을 때 이병철은 도쿄에 있다가 김종필의 종용으로 한 달 뒤 귀국했다. 공항에서 바로 서울 명동 메트로호텔로 연행당한 그는 이튿날 박정희와의 면담(6월27일)에서 경제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6월30일 재산목록과 헌납각서를 제출하면서 구속 해제된 기업인들은 7월17일 경제재건촉진회를 결성하여 한 달 뒤 한국경제인협회로 개칭했다가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을 정경유착의 옥동자로 탄생시켰다.■ ‘나라 경제 망친 3분(粉)’ 고발1963년 대통령 선거(10월15일)와 국회의원 선거(11월26일)로 민정 이양 후 12월17일 제3공화국이 출범하자 총칼 아래서 숨죽였던 언론이 진실 밝히기에 나섰다. 경향신문은 ‘국회선 밝혀질 것인가’란 기획기사를 12월18일부터 시작했는데, 필화로 비화된 건 ‘국민경제 망친 3분(粉, 밀가루·설탕·시멘트)’이었다. 흉년으로 허기진 판... -
(28) 황용주 논문 ‘통일론’ 공작 필화
황용주(南天 黃龍珠·1918~2001) 필화사건만큼 분단사의 치부를 알몸으로 보여준 예는 드물다. 박정희와 대구사범 입학(1932년) 동기였던 그는 독서회 사건으로 퇴학당해 도일, 와세다대 불문과, 학병, 8·15 후 동향인 밀양 출신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비서 등으로 혼란기를 보냈다.이병주가 뒤를 이은 국제신문 주필에서 부산일보 주필(1958년)로 옮긴 그가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박정희 사령관을 만난 건 1960년 초였다. 흉중에 쿠데타의 불씨를 품었던 박정희에게 황 주필은 불쏘시개를 지폈다. 그가 “우리도 군사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탈피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라고 묻자, “박정희는 씽긋 웃으면서 ‘나도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라고 답”(안경환, <황용주-그와 박정희의 시대>, 까치)했다.■ “이념보다 권력에 철저한 박정희”역사는 흘러 4·19혁명 뒤 허정 과도정부 때... -
(27) 정공채의 반미 장시 ‘미8군의 차’
“자기 나라 국방을 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미 지상군 철수가 거론되기 전부터 불원간 이런 사태가 올 것을 예측, 그동안 조용하게 준비”해왔다고 한 건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아니라 1978년 1월18일 박정희의 연두회견에서다.과연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까? 그건 아마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떠나보내는 투쟁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인 난제일 것이다. 갈 듯이 운자를 띄워 숭미파들의 애간장을 녹여 몸값을 올린 게 몇 번이던가. 일본의 방어선이자 중국의 전진기지이고 감시탑의 최적지인 한반도를 미국이 스스로 포기할 리야 없겠지.“1958년 북한에서 중국군이 철수한 후에도 미국이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는 수만의 외국 군사력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남북 간 군사문제의 대외적 종속을 구조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략) 주한미군사력의 존재로 인하여 한반도 군사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속되어 미국의 결정사항으로 일관되었다.”(이삼성, &l... -
(26) 송요찬 ‘박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장’ -장군 필화 제1호
“비닐 우산,/ 받고는 다녀도/ 바람이 불면/ 이내 뒤집힌다./ 대통령도/ 베트남의 대통령.// 비닐 우산,/ 싸기도 하지만/ 잊기도 잘하고/ 버리기도 잘한다./ 대통령도/ 콩고의 대통령.// 비닐 우산,/ 흔하기도 하지만/ 날마다 갈아도/ 또 생긴다./ 대통령도/ 시리아의 대통령.// 비닐 우산,/ 아깝지도 않지만/ 잠깐 빌려 쓰곤/ 아무나 줘버린다./ 대통령도/ 알젠틴 대통령.”(신동문 시 ‘비닐우산’, 사상계 1963년 4월)1960년대는 제3세계의 쿠데타 계절이었으나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는 없다. 어떤 명분이나 공적도 쿠데타의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이 시에 언급된 나라들과 4·19혁명을 이룩한 한국은 엄연히 다르다. 사월 정신은 5·16을 거역한다.■ 거세진 ‘박정희 퇴진 운동’민정이양을 약속한 1963년이 밝자 박정희 장군 퇴진운동은 거세졌다. 1월7일 오후 군사정부 내각수반이던 송요찬(宋堯讚, 1918~1980년)은 신당동 자택에서... -
(25) 소설 ‘임진강’의 류주현 작가
보수파들이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요란하게 흔들어 줬건만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행 비행기(3월18일)에서 일본은 최우선 동맹국, 한국은 파트너라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꼬투리를 달아 친미파들 자존심을 긁었다. 만찬 초대를 했느니 말았느니 따위 논란까지 고려하면 이런 콩쥐 처지에서도 왜 사드 배치 부지까지 덥석 내주나 부아가 치민다. 주체성을 갖춘 나라라면 그들이 우리에게 손발 닳도록 간청하며 온갖 무역 특혜를 제안해와도 어깨에 힘줄 판인데 이게 무슨 허수아비 국격 망신인가.‘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란 미합중국이 갖춘 풍성한 장단점 중 제국주의 속성을 나타낸 촌철살인이다. 미 대륙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 머물렀던 독립전쟁 전후의 청교도들이 인디언 살육과 멕시코와의 전쟁 등으로 광막한 토지에다 하와이까지 점령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행진해야 한다. 그것이 백인의 운명이다”라는 데서 ‘명백한 운명’ 사상은 형성됐다.... -
(24) 황산덕 서울대 교수
“지도자는 대중과 유리되어 그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자나 특권계급이 아니라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고 그들의 편에 서서 동고동락하는 동지로서의 의식을 가진 자라야 한다. 국민을 지도함에 있어서 친절하고 겸손하며 모든 어려운 일에 당하여 솔선수범하여 난관을 돌파하며 사를 버리고 오직 국민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숭고한 정신을 그는 가져야 한다. 지도자로서 가지는 모든 권력의 연원은 국민이다. 자기 스스로 창조한 권력도 초인간적 존재로부터 수여된 여하한 특권도 있을 수 없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대중에 깊이 뿌리박고 전근대적 특권의식을 버리라.”(<지도자도(指導者道)>‘좌빨’ 냄새 물씬 풍기는 이 글은 5·16 쿠데타 총성의 메아리가 미처 사라지지도 않은 1961년 6월29일 조선일보에 박정희의 이름으로 실렸다. “공보부에서 27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 육군소장이 저술한 <지도자도>라는 팜플렛을 공무원 및 일반에게 배부하였다. 지난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