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어둠 속에 묻힌 문화재들 보고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박물관·미술관 전시장에서는 문화재들이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저 멀리 수십만년 전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부터 신석기와 청동기·철기시대를 거쳐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이어 고려·조선시대 유물 등 유구하게 이어진 역사와 문화의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들 문화유산으로 비로소 우리는 역사를 서술하고, 문화의 풍성함을 이야기한다. 당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드는 힘을 가진 문화재를 통해 과거를 되새기고 현재를 둘러보며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를 구할 수도 있다. 한 민족, 한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자긍심을 상징하는 게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국내외 여행객들은 박물관을 찾는다.은은한 조명 아래 자신의 가치를 한껏 드러내는 문화재들과 달리 지금도 어둠 속에 갇힌 문화재들이 많다.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수장고도 없고, 보존과학 전문가들의 관리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학... -
(33)먼 미래의 더 나은 세상 위해 오늘의 고단함 묻고 미륵 기다리는 마음
당신은 100년, 아니 1000년 뒤를 생각하며 어떤 일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그 일은 지금이 아닌 나의 다음 생을 위한 것이다. 저 먼 훗날의 그 누군가를 위한 일이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 삶을 위한 일이다.그 일을 한 사람들이 있다. 고려 충선왕 때인 1309년 8월, 강원 고성의 삼일포. 지역 관리·스님·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향나무를 바닷가 곳곳에 묻고 그 과정을 기록한 비석을 호수변에 세웠다. 35년 뒤인 1344년 8월, 이번에는 전남 영암군 엄길리에서 스님과 주민들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갯벌에 향나무를 묻은 뒤 인근 철암산의 큰 바위 작은 틈에 그 경위를 새겨놓았다. 고려 왕조가 쇠퇴하며 새 세상을 향한 열기가 꿈틀거리던 1387년 8월,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서도 4100명이 모여 역시 향나무를 갯벌에 묻고는 전후 사정을 담은 글을 새긴 비석을 세워놓았다.이들처럼 향나무를 묻고(매향) 그 경위를 글자로 새겨놓은 비... -
(32)한국 고고학 사상 최대 발굴조사 5년째…오늘은 또 뭐가 나올까
둘레 2340m 면적 20만㎡, 101년 축조해 935년 통일신라가 무너질 때까지 800여년 동안 왕들이 머물던 곳1915년 처음으로 성벽 일부가 발굴된 이후 안팎에서 3~10세기 유물 10만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학술적 의미가 큰 명문 있는 목간·기와·토기부터 배·방패·그릇·국자·빗 등 목제품, 토우, 금동 장식물, 철제물, 육지와 바다동물 뼈까지…석회와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 쌓아 견고하게 만든 성벽, 서쪽 성벽에서 발견된 남녀 인골 2구는 ‘인주 설화’를 보여주는 첫 사례건물지가 집중 분포된 C구역부터 발굴 중인 현장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언제 끝날지 모를 발굴은 오늘도 계속된다“오늘은 또 뭐가 나올까….” 경주의 신라 왕궁터인 ‘월성’(사적 16호) 발굴조사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단이 2014년 12월12일부터 시작했으니 다음달이면 5주... -
(31)당대 최고 화가가 최고 재료로 빚어낸 ‘비단 위의 불경’
고려시대 이 땅에서 제작됐지만 국내보다 해외에 훨씬 많이 남아 있는 걸작 예술품이 있다. 세계적으로 160여점이 전해지는데, 국내엔 공식적으로 단 20여점이 확인된다. 그만큼 외국인들이 소장하고 싶어한 ‘명품’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 불법 유출되거나, 때론 선물로 주면서 대량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젠 희귀하다보니 보존 등을 이유로 특별전이 아니면 원본들을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고려시대 불화(불교회화)다. 주로 고려 말(13~14세기)에 그려진 고려 불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품’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국내외 미술사가의 상찬도 이어진다. 종교화이지만 종교를 훌쩍 넘어 예술품, 귀한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중세·르네상스시대 유럽 기독교 성화들이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대접받는 것과 같다. 700여년 전 고려 불화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는 무엇일까. 왜 종교적·회화적 아름다움의 정수로 주목받을까.■ 고려... -
(30)남북에 7점만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다면…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를 떠올리면 먼저 뿌듯함이 다가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류의 인쇄사를 새로 쓰게 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이 땅에서 찍어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직지)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도 자랑스럽다.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도 밀려든다. “세계 최고”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우리는 고려 금속활자를 잘 알지 못한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왜 제작했는지, 어떻게 관리되고 어떤 기록물을 얼마나 인쇄했는지…. 학술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게 많다. 자료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남북 분단도 큰 이유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는 단 7점(남한 1점, 북한 6점 소장)뿐으로 연구에 한계가 있다. 남북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한다면 자료 부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인류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 세계기록유산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것도 아쉽다. ... -
(29)건져올린 14척 중 고려 10척, 통일신라·조선시대는 겨우 1척씩뿐 바다만 아는 미스터리 ‘고선박’
한국 수중고고학, 1976년 ‘신안선’ 발굴로 첫걸음…선박들 안에 콩·젓갈·솥부터 청자 수만점까지 온갖 물건물살 악명 높아 “1392~1455년 200척 침몰” 실록에도 기록된 태안 마도해역, 지금은 ‘바다의 경주’ 평가고고학 지식·잠수능력 겸비한 전문 인력 태부족…육지서 많이 사라진 도굴꾼들이 바닷속 호시탐탐문화유산이 땅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의 해저, 해안의 갯벌 속에도 묻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이 땅은 3면이 바다여서 고대부터 해상활동이 활발했고, 서남해안은 중국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로 국제 문화교류의 현장이었다. 특히 서해는 갯벌이 발달돼 유물의 보존환경도 좋다. 2000년대 들어 수중문화재를 다루는 수중고고학이 자리 잡으면서 수중문화재도 부상하고 있다.바다에서 건져올린 대표적 수중문화재는 옛 배, 고선박이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누비다 침몰, 수백~수천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난파선이다. 고... -
(28)2000년 전 ‘농경문 청동기’ 속엔 벌거숭이 사내가 산다
이 땅에 청동기시대의 등장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1000년 전후쯤으로 본다(물론 그 시기를 둘러싼 엇갈린 학설들이 있다). 석기시대를 지나 석기보다 효율성이 뛰어난 청동기가 나타난 시대다. 논·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인구도 늘어나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전환됐다. 생산력도 이전 시대보다 급증했으며, 그 생산력 차이는 부족 내, 부족과 부족 사이에 계급도 발생시켰다. 청동기시대가 발전하면서 기원전 5~4세기 전후에는 철기시대가 등장한다. 청동기·철기시대는 흔히 함께 거론되는데, 철기시대 유적에서는 철기와 청동기가 함께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청동기·철기시대는 무엇보다 금속을 찾아내고, 합금기술까지 확보함으로써 이전 시대와 질적으로 큰 차이를 드러낸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 중심의 합금이다. 쇠는 제련 과정 등을 거쳐야 하는, 당시로선 최첨단 재료다. 선사시대이다 보니 이 시대도 관련 문헌자료는 극히 드물다. 다만 고고학적 유적과 갖가지 청동기·철기 유물이 ... -
(27)베일 속 한성백제의 비밀 품은…도심 속 ‘고대사 보물창고’
석촌동 3호분은 ‘고구려식’ 계단형 돌무지무덤으로 한성백제의 전성기 이끈 근초고왕 능으로 추정493년 이어진 한성백제는 백제사의 핵심이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 ‘백제역사지구’에서 빠져석촌동 고분 발굴 진행…문헌·고고학 등 통합적 연구로 한성백제 공백 메워 온전한 백제사 되찾아야옛 무덤인 고분은 고대사 연구에서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문헌기록이 귀한 상황에서 무덤 조성 당시의 물질문화는 물론 정신문화까지도 읽어낼 수 있는 정보를 품고 있어서다. 고분은 조성 주체자의 가치관, 특히 사후관을 보여준다. 혼례와 더불어 보수성이 강한 매장의례는 지속성이 유지되면서 주체세력에 따라 시대별·지역별로 뚜렷한 특성도 드러낸다. 특히 다양한 껴묻거리는 문헌자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귀한 유물이다. 고구려 벽화고분들, 무령왕릉 같은 백제 고분들, 천마총 같은 신라 고분들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삼국시대를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거대한 현대도시 서울에도 고분들이 남아... -
(26)처마 끝에 활짝 핀 연꽃시대 따라 천 가지 얼굴
무늬 새긴 기와·처마 끝 ‘막새’ 통틀어 부르는 ‘와당’, 연꽃·용·두꺼비 등 무늬 다양…악귀 쫓는 ‘귀면’, 대문·기둥에 달기도역동·우아·화려함, 삼국시대엔 각 나라 특색 고스란히 드러나…실용 중시한 조선은 이전보다 세련미 뒤져신라의 얼굴 ‘천년의 미소’, 기와 단독으로 첫 국가문화재 지정…흔히 출토되지만, 자세히 보면 끝이 없는 유물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화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180호) 화면 오른쪽 밑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다. 인장 속 글자는 ‘長毋相忘’(장무상망).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장무상망’에는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추사와 제자 이상적 사이의 속깊은 뜻이 녹아 있다. 그런데 ‘장무상망’ 글자의 유래를 따져보면 2000여년 전의 중국 한나라 때 기와에 닿는다. 한나라 유적에서 발굴된 와당에 새겨진 글자였다.기와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암키와·수키와로도 나눌 수 있다. 기와지붕을 보면 암키... -
(25)2m 빼곡히 쓴 이 유산분배 기록에 ‘없는 것’
율곡 이이 비롯 4남3녀가 부모 타계 뒤 나눠가지며 작성한 ‘화회문기’…‘남녀 차별’ 없이 출생순으로 ‘공평하게’ 땅·노비 배분 후 각자 서명재산 배분 앞서 제사·묘 돌보는 ‘봉사조’ 등 공동재원 설정…당시 가족제도·제사 관습·아들과 딸의 지위 등 사회상 읽을 수 있어유산 다툼·효도계약서 오르내리는 지금과 달리 갈등 없이 돈독한 우애를 바탕으로 화목하게 합의된 기록에 새삼 ‘눈길’450여년 전인 1566년 5월20일, 율곡 이이의 형제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셋째 아들인 이이를 비롯, 4남3녀 7남매다. 아들들은 본인이, 딸들은 남편이 대신 참석했다. 남편과 사별한 셋째 딸의 참석 여부는 불분명하다. 7남매가 어렵게 모인 것은 아버지(이원수·1501~1561), 어머니(신사임당·1504~1551)가 남긴 재산을 배분하기 위해서다. 이날 있었던 7남매의 유산분배 내용은 상세히 기록한 문서로 전해진다. 보물 제477호인 ‘율곡 이이 남매 화회문기(和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