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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그리움·의심·분노…‘어린 왕자’ 부부의 15년 편지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지음 | 윤진 옮김문학동네 | 436쪽 | 3만5000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공군 비행사였다. 1930년 엘살바도르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 콘수엘로 순신 산도발을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생텍쥐페리는 첫 번째 결혼이었고, 콘수엘로는 세 번째 결혼이었다. 생텍쥐페리는 가난했다. 콘수엘로와 떨어져 세계를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 <어린 왕자>를 출판했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4년 7월31일 지중해 상공을 비행하다 행방불명됐다.생텍쥐페리가 콘수엘로를 만난 1930년부터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 동안 서로에게 보낸 편지들이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에 담겼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168통의 편지에 그림, 육필 원고, 보도 사진 등 72점의 자료를 엮었다.생텍쥐페리는 콘수엘로를 ‘오... -
17세기 곤충학자 겸 화가였던 메리안 삶 그대로
수리남 곤충의 변태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금경숙 옮김 | 나무연필 | 176쪽 | 3만3000원처음엔 책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간다. 초록색으로 양장 제본된 표지 중앙엔 꽃과 열매, 곤충이 그려져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생각나기도 한다. 책을 열면 이와 비슷하면서도 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그림 60여점이 담겨 있다. 모두 곤충과 그의 먹이식물이 주인공이다. 세심하게 표현된 그림이 귀엽기도 하다. 초록이 많이 쓰여 눈이 시원하다.책을 열면 저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인물의 삶에 눈길이 간다. 책의 모양보다 더 매력적인 인물이다. 옮긴이의 해제로 메리안의 생애가 꽤 충실히 담겨 있다. 164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업자였고, 어머니의 집안도 출판업을 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새아버지를 만났는데 그는 꽃 정물화가였다. 메리안의 유년 시절이 그림과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새아버지의 제자였던 남자... -
‘캣 대디’의 길냥이 성장일기…‘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길고양이는 보통 3년쯤 살다 죽는다. 영역 싸움에 실패하거나 병에 걸리면 더 짧게 산다. 고양이의 수명이 원래 짧은 것은 아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20년 이상씩 살기도 한다. 하지만 길에서는 배고플 때 밥 먹고, 목마를 때 물 마시고, 졸릴 때 마음 놓고 잘 수 없다. 길고양이들은 아주 짧은 생을, 긴장 속에 살다 간다.시인 이용한은 2007년 겨울, 집 앞 버려진 소파에 사는 고양이 가족을 만난 뒤 ‘캣대디’가 된다.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는 저자가 지난 17년간 만난 고양이들 중 1년 이상 본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엮은 책이다. 감상적인 에세이집이라기보다는 길에서 아무의 관심도 받지 않고 태어났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나가는 용감하고 멋진 고양이들에 대한 기록집에 가깝다.책에는 고양이 40마리의 새끼 때 사진과 1년 후 사진이 실려 있다. 왼쪽 페이지에서 잔뜩 주눅 든 얼굴로 쪼그려 앉아 있던 작은 ... -
구불구불 골목길·복작복작 집이 품은 다양한 삶…반듯반듯 새 건물엔 ‘이식’ 안 돼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허남설 지음글항아리 | 232쪽 | 1만6000원누군가에겐 종로, 청계천, 을지로의 촌스러운 철제·슬레이트 지붕이 촌스럽거나 심지어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공구 깎는 금속성 소음, 돼지머리고기 누린내,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도로 상태를 참기 힘들지도 모르겠다.건축학을 전공한 뒤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는 허남설은 이런 ‘못생긴 서울’을 긍정한다.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주민을 몰아내고 잘 구획된 도로 사이에 높은 새 건물을 지을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공동체, 얽히고설킨 일자리의 연쇄가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삶의 인연과 연쇄는 거대한 고목의 뿌리와 같아서, 다른 곳으로 쉽게 이식되지 않는다. 청계천이 복원될 때 서울시 지원으로 가든파이브로 옮겨간 상인들 중 일부는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다시 청계천 근처로 돌아왔다.... -
‘멸종위기 유해동물’이라는 모순된 이름…그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있을까
이름보다 오래된문선희 지음 | 가망서사 | 192쪽 | 2만9000원사진작가 문선희는 2013년 어느날 아침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운전하다 낯선 동물을 만났다. 나중에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그 동물이 고라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라니는 몸의 길이가 80~100㎝, 높이가 55㎝, 몸무게가 15~20㎏ 정도인 사슴과 포유류이다. 한국 전역의 완만한 산기슭에 산다. 잎이 넓은 풀을 잘 먹는다. 자기 구역을 만들어 혼자 산다. 구역을 침범당하면 “악!” 크게 소리를 쳐서 침입자를 내쫓는다.문선희는 10년 동안 국립생태원과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다니며 만난 고라니 200여마리 중 50여마리의 얼굴 사진을 <이름보다 오래된>에 담았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고라니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마주볼 때까지 기다린 끝에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문선희는 고라니의 얼굴을 기록한 작품으로 올해 일우사진상(다큐멘터리 부문)을 받았다.고라니는 ... -
일자 눈썹, 원주민의 전통 의상…강렬함 남긴 프리다의 미의식
프리다, 스타일 아이콘찰리 콜린스 글·커밀라 퍼킨스 일러스트 박경리 옮김브레드 | 178쪽 | 2만3000원어떤 사람은 빳빳한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운다. 어떤 사람은 발가락이 나오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등이나 가슴, 팔이 드러난 옷을 입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당신의 패션은 당신을 말한다.화가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몸을 캔버스처럼 사용했다. 옷과 액세서리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결혼식 날 프리다는 치마와 블라우스, 레보소를 가정부에게서 빌려 입었다. 레보소는 멕시코 전통 숄이다. 공산당원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노동자 계층과 함께하겠다는 신호를 결혼식 복장에 투영했다.결혼 이후에는 멕시코 전통 의상을 고수했다. 어머니의 뿌리와 자신을 연결하기 위함이었다. 프리다는 메스티소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메스티소는 라틴아메리카에 사는 유럽인과 토착민 사이에서... -
나의 과거, 나의 몸과 화해하는 과정 ‘타투’
가장 밝은 검정으로류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48쪽 | 2만2000원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들 하지만 ‘나의 영원’이라면 말이 다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존재하는 것들은 무수하다. 그중에서도 타투는 나와 영원히 함께할 것을, 가장 가까운 내 몸에 새겨넣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 점 때문에 타투를 망설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타투는 ‘후회’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되는 일이 다반사다. 타투를 받았다가 다시 지우는 시술을 받는 이들도 있다.그러나 타투 새김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이다. 어떤 모양으로 할지, 어떤 색으로 할지, 어떤 위치에 어떤 방향으로 할지 모두 내가 정할 수 있다. 몸에 박힌 타투를 보는 것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쉽게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이전에 자신이 내린 선택과 경험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화해할 수 없다. 타투를 한 이는 자신의 과거, 자신의 몸과 화해하는 첫 번째 문턱에... -
식민지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본 마티스…명작 속 숨은 ‘범죄들’
미술관에서 만난 범죄 이야기이미경 지음드루 | 384쪽 | 2만2000원‘색채의 대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한국에서 크게 사랑받는 화가다. ‘핫플레이스’라 불리는 카페와 음식점에는 마티스의 작품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걸렸다. 마티스 작품의 간결한 선과 색채가 2020년대 유행한 미니멀리즘과 맞아떨어진 덕분이다.하지만 <미술관에서 만난 범죄 이야기>를 읽고 나면 마티스의 작품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마티스는 여성을 모델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프랑스 여성과 식민지 여성을 재현할 때 차이를 뒀다. 자국 여성은 교양 있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그린 반면 식민지 여성들은 언제든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봤다. ‘빨간 바지를 입은 오달리스크’ 속 식민지 여성은 오로지 신체만 강조된 채 눈요깃감으로 전락해버린다.<미술관에서 만난 범죄 이야기>는 서양미술에 재현된 범죄를 다섯 가지(사기, ... -
‘어린 왕자’와 이야기하던 조종사의 손이 여기 있네
<어린 왕자>만큼 어린 시절 읽었을 때와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느낌이 다른 책이 또 있을까.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은 <어린 왕자>의 프랑스어 초판을 출간했던 갈리마르 출판사가 출간 8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책. 뉴욕 모건도서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지금까지 한번도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는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자필 원고와 수채화 원화 등을 처음으로 담았다. 프랑스 장식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기관과 수집가들의 도움으로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모아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를 더욱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는 원본에 실리지 않았던 생텍쥐페리의 삽화가 여럿 눈에 띈다.<어린 왕자>에는 어린 왕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그림이 없다. 작가의 초기 생각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최종본에 들어가지 않은 생텍쥐페리의 습작에는 어린 왕자 앞에 망치를 들고 있는 ... -
덕후들을 위한 ‘구름 예찬’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개빈 프레터피니 지음·김성훈 옮김김영사 | 464쪽 | 2만2000원구름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2005년 ‘구름감상협회’를 설립한 개빈 프레터피니다. 이 단체에는 현재 120개국 약 5만3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프레터피니는 영국 레딩대학교 기상학과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왕립기상학회의 마이클 헌트상을 받은 기상학자다. 온라인 강연 플랫폼 ‘테드’에서 구름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프레터피니는 이 책에서 구름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각종 구름이 형성, 변화, 성장, 쇠퇴하는 과정과 원리를 알기 쉽게 적었다. 그는 영국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의 말을 빌려 “무언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진정으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책 전반에 구름의 멋짐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고 싶어 안달하는 프레터피니의 열정이 묻어난다.구름감상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