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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걸음 걸었으면 두 걸음 물러서라
<나의 아구아를 찾아서>후카자와 우시오경향신문 연재가 마무리된다는 연락을 받은 후,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소개할까 오래 고민했다. 이 코너를 맡으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것은 책을 고르는 일이었다. 서점대상,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베스트셀러, 여성과 약자들을 담은 책을 주로 다뤘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책은 이번주 발매된 동포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의 <나의 아구아를 찾아서>이다. 일본을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을 소설에 등장시켜 일본 사회의 단면을 그려온 작가이며, 재일동포 및 한국인 차별에 당당하게 맞서온 작가다.<나의 아구아를 찾아서>에서는 직장인이자 플라멩코 댄서인 리코의 7년간의 연애와 삶을 그려냈다. 2010년의 리코는 20대 후반이다. 어느 날 회사가 망하고 연인과도 헤어진 리코는 무작정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스페인에서 플라멩코와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일본에서 스페인 전통 무용인... -
오늘도 내일도 생존하라, 그것이 혁명···‘아나카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만드는 첫 걸음일본 출판계에서도 ‘페미니즘’은 주목받는 키워드지만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이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출한 여고생을 지원하는 한 시민단체의 단체장은 몇 년 동안 사이버불링에 시달린다. 성범죄를 폭로하고 재판에서 승소한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토 시오리 역시 오랜 협박에 시달렸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의 작가이자 수많은 칼럼을 잡지에 기고해 온 다카시마 린은 자신을 ‘아나카(무정부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견디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작가는 “나는 이전부터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등해야 한다. 거기에는 멍청한 이도 현명한 이도 없고 강자도 약자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한 가네코 후미코에게 감동을 받았고, 록산 게이를 통해 페미니즘을 배웠다. 그리하여 권력을 거부하고... -
부도덕하고 지저분한, 또다른 인간의 이면…경쾌한 입담으로 거침없이 폭로하다
<싫으면 부르지 마>와타야 리사와타야 리사가 등단한 지 21년째다. 2001년 고교 시절 쓴 소설 ‘인스톨’로 일본문예상을, 2004년 와세다 대학 재학 시절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으로 만 19세 나이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최연소 수상자로 큰 화제를 모았다. 젊은 나이에 천재적인 재능을 뽐낸 와타야 리사는 끊임없이 주목받는 소설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독특한 등장인물들의 삶을 솔직한 입담으로 풀어내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데뷔 21년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단편집 <싫으면 부르지 마>가 얼마 전 발간됐다. 총 4편의 단편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에 주목한다.첫 번째 작품은 ‘안대 미니 마우스’이다. 야마자키는 중·고 시절부터 롤리타 패션을 애정했으며, 대학에 가서도 그 취향은 변함이 없다. 캐주얼한 복장의 대학생이 대부분인 가운데 혼자 레이스 블라우스에 폭넓은 스커트를 입은 그녀... -
일본 시골마을 공동체에서 벌어지는…코믹하면서도 서글픈 ‘이케이도 준’식 전원일기
<하야부사 소방단>이케이도 준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글을 잘 쓴다. 일본 작가 중에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고 숨도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은 다작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렇다.히가시노 게이고와 쌍벽을 이루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케이도 준이다. <한자와 나오키>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1963년생으로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일본의 경기가 매우 좋았던 시절에 은행에 취업했으며, 1995년 은행을 퇴사하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끝없은 바닥>으로 에도가와 란포 상을, <변두리 로켓>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경험을 살려 쓴 소설로 ‘금융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다.은행이나 회사에서 성공을 좇는 남자들의 치열한 경쟁, 샐러리맨이 깨부술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상하 관계... -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동포’라는 정체성 고민했던 이양지의 일상
<언어의 지팡이> 이양지지난 5월22일 도쿄의 한인타운 신오쿠보에서 작가 이양지의 추모 모임이 열렸다. 1989년 <유희>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양지는 1992년 5월22일 급성심근염으로 사망했다. 등단 후 10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으로부터 3년 후였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온 작가는 너무나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이양지 사후 3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첫 수필집 <언어의 지팡이>가 발간됐다. 이양지가 쓴 시, 수기, 소설가 오바 미나코와의 대담, 이양지의 동생 이영의 ‘언니 이양지에 대해’가 실렸다. 소설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이양지의 일상이 펼쳐진다.수필집에 담긴 ‘나는 조선인’은 이양지가 스무 살 때 쓴 수기다. 이양지의 부모는 10대 때 일본으로 건너와 궂은일을 하며 자식을 키웠다. 몸 누일 곳도 없어 전철역 앞 벤치에서 잠을 자는 일도 허다했다. 먹고살 만해진 이양지의 부모는 하루가 ... -
회사에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동료는 아닌···그런 사람도 있잖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다카세 준코전원 여성 작가라고요? 그렇다. 올해 아쿠타가와상 후보 다섯 작품 모두 여성 작가의 작품이었다. 언론들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상이 발표된 후 여성 작가만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 일어난 이변이다. 생리를 거부하기 위해 거식증을 가진 여고생의 이야기를 담은 'N/A', 90세의 꼬장꼬장한 할머니와 고분고분한 어머니, 그 사이에 낀 채 소설가를 지망하는 19세 딸의 이야기를 담은 야마시타 히로카의 <험담>, 어머니를 간병하며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쓴 스즈키 료미의 <기프티드>, 폐광 테마파크의 갱부 마네킹을 아버지라고 믿고 큰 주부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고사가와 지토의 <가정용 안심 갱부> 등이 후보에 올랐다.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은 직장인들 사이의 미묘한 인간관계를 음식과 연...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면…먹고 웃고, 피아노를 쳐라
<노후와 피아노>이나가키 에미코만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연주로 우승한 소식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전해졌으며 해외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하지만 모두가 임윤찬이 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본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50세에 조기 퇴사하고 <퇴사했습니다>를 집필한 후, 프랑스 리옹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나가키 에미코의 최신작은 <노후와 피아노>다. 조기 퇴사 후, 건강할 때 노후를 준비하자는 마음에서 저자는 피아노 앞에 앉는다. 어릴 적 배우긴 했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니 악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이 굳어 도저히 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평생 작은 소원이 있으니 바로 피아노를 제대로 쳐보는 것이다. 목표는 베토벤의... -
혐오와 가짜뉴스 속 "어떻게 살면 좋을까?" 끊임없이 물으며 나아간다
올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는 한국과 일본, 인도, 노르웨이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일본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도 최종 심사작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 부커상 후보가 된 두번째 인물이다. 수상은 놓쳤지만 영예로운 문학상의 최종 심사작 후보였다는 것만으로 그 명성은 더 높아가고 있다.가와카미 미에코는 1976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아쿠타가와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등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다. 최신작 <봄날의 무서운 것>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 2020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삼았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전염병이 시작된 직후, 아베 전 총리는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휴교령을 내렸다. 어떤 병인지 정확하게 알려지기 직전, 일본에는 결핵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코로나에 대한 미신을 적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신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잘 모르는 전염병 앞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사실을... -
재일동포 그리고 여성···여기,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선자’가 있다
<억울함을 발판 삼아 -정화신을 둘러싼 여러 인생 이야기>정화신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화 되어, 다시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파친코>의 선자는 재일동포 여성들을 대표하는 보편적인 인물이다. 시장에 선 선자의 얼굴,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로 손님들에게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는 강인함은 동포여성들의 족적이기도 하다. 드라마 <파친코> 제8화에는 동포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여기 한 여성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정화신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39년에 박인철과 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왔다. 혼인 첫날밤에서야 박인철로부터 “이미 두 번 결혼한 적이 있었다”는 전력과 “지금 만나는 애인과 일본에 가서 돈을 벌 테니, 당신은 한국에 남아 농사를 도우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박인철이 결혼한 이유는 “제사를 지내고” 자신이 일본으로 간 후 “대신 농사를 지어주고 부모를... -
63일 동안 노숙인이 된 저자, 일본 복지 제도의 허실을 기록하다
<르포 노상생활>구니토모 고지2021년 여름은 평소와는 달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이 무관객으로 개최됐고, 반면에 그 외 행사들은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병상 부족으로 ‘의료난민’이란 단어가 급부상했고, 긴급사태가 선언된 가운데 많은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다. 노숙생활자들도 이 변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부터 시부야의 미야시카공원이 재개발에 들어가며 노숙인 100여명이 거처를 옮겨야 했다.저자는 지난여름 도쿄에서 63일간 노숙생활을 하며 <르포 노상생활>을 완성했다. 노숙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자는 “덥고 춥고 배고프고 정신적으로 힘겨운” 이미지 이외의 실태를 알기 위해 7000엔(약 7만원)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1992년생인 저자는 대학 졸업 논문 작성을 위해 노숙생활을 하며 그 실태를 기록했고, 이 책이 두번째 노숙생활 르포다.도쿄 신주쿠에서 한여름의 노숙생활은 더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