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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한 정현종 시인의 말은 참 맞는 말이다. 20년 동안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한 명 한 명이 전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크고 깊고 귀하고 용기 있고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은 어떤 심리이론보다 ‘삶의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그동안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을 통해 스물다섯 사례 삶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상담사였지만, 그들은 내 삶의 스승이기도 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 하는 그들로부터 삶에 대해 더 많이 배운 사람은 바로 나였다.돌아보면 올해에는 ‘심리 열풍’이 뜨거웠다. TV에서는 여러 상담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온라인 플랫폼 및 강좌에서도 심리 관련 콘텐츠가 넘쳐났다. MBTI는 혈액형만큼이나 타인을... -
공부 말고 다른 관심사로 자녀 이야기 들어주세요
■상담 신청저희 아이는 초등학교 때 전교 부회장이었어요. 친구도 많고, 운동도 잘하고, 교내 교향악단 첼로 연주자이기도 했어요. TV 뉴스 앵커도 되고 싶고, 변호사도 되고 싶은 꿈 많던 소녀였어요.그런데 얘가 중학교에 가더니 완전 다른 애로 변했어요. 말로만 듣던 ‘중딩병’이 무섭게 오더라고요. 점점 짜증이 늘더니, 요즘에는 제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아요. 이제 곧 고1이 되니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고, 마음도 불안하고 힘든 것은 알아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아, 몰라”, “아, 짜증나”라고만 하고, “엄마도 싫어”라는 얘기도 몇 번 하더라고요. 아주 제 속이 뭉개지죠.며칠 전 기가 막히는 일이 있었어요. 제가 아이와 친구들 네 명을 함께 밥 먹이고 학원에 데려다 주는 날이었어요. 엄마들이 번갈아가면서 당번을 하거든요. 저희 딸을 비롯해서 다섯 명 다 중상위권 성적은 되는 애들이에요.저녁을 먹이면서 넌지시 “너희는 꿈이 뭐니? 뭐가 되... -
은퇴 후 공허한 삶, 작은 도전들로 채워요
<상담 신청>전자 관련 대기업을 다닐 때에는 나름 좋았어요. 분주한 나날들이었고, 급여도 넉넉했어요. 아내 역시 일하고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맞벌이라서 아파트도 일찍 샀고, 저축도 제법 해놓았어요.5년 전에 두 살 어린 아내가 저보다 한 해 일찍 퇴직을 했고, 제가 이어서 은퇴를 했어요.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미리 생각해 놓아야 했는데, 돌아보면 아무런 준비 없이 은퇴하게 된 게 가장 아쉬워요. 은퇴 이후 첫 1년은 좋았어요. 느긋하게 하루를 즐기고 해외여행도 아내와 함께 떠나니 참 좋더라고요.은퇴하고 두 해가 지난 다음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하늘이 무너진다는 느낌이었어요.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어서 서로 무척 각별했었어요. 아내 장례를 치루고 정신을 차려보니 상당히 당황스럽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도 주위에 아무도 없고, 약속이 없는 날은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고, 저녁 또한 주로 혼자 먹으려니 참 쓸쓸했어요... -
18년 넘도록 말 못한 성폭행 피해, 더이상 혼자 감당하지 마세요
<상담 신청>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일곱 살이었던 남동생이 아팠어요. 부모님은 남동생을 살리려고 전국을 돌아다니셨어요.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니고, 좋다는 민간요법은 다 시도해보고, 여기저기 기도를 드리러 다니셨어요. 부모님이 동생을 데리고 전국을 다니시는 동안 저는 고모 집에 맡겨졌어요. 한 달에 한두 번밖에 부모님을 만날 수 없었어요.그래도 잘 지냈어요. 외롭기는 했지만 괜찮았어요. 고모네는 아들만 하나였기 때문에 고모부는 저를 딸처럼 예뻐해 주셨고, 부모님이 양육비를 충분히 주셨기에 고모도 좋아하셨어요.그러던 어느 날 제게 지옥의 문이 열렸어요. 고모는 밖으로 돌아다니는 분이셨고, 고모부도 자주 출장 가셔서 집에 어른이 안계시는 때가 많았어요.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사촌오빠를 무척 좋아했어요. 키도 크고 다정한 오빠는 제게 동경의 대상이었거든요. 어른이 안계시는 날에는 무서워서 종종 오빠 방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 -
다름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야기>■아버지의 말이봐요, 선생님. 내가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고요. 내가 30년을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개인적인 일 본다고 하루를 땡땡이 친 일이 없소. 내가 지방이기는 해도 큰 기업 계열사 대표예요. 그런데 얼마나 답답하면 KTX를 타고 서울까지 왔겠습니까? 아들이라고는 저 녀석 하나이고 나이 마흔 넘어서 얻은 아들이라서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몰라요.내가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것은 저 녀석 때문이에요. 그런데 내가 요즘 저 애를 보면 아주 속에서 열불이 나고 잠이 안와요. 애 엄마가 사춘기라서 예민하니까 그냥 놔두라고 해서 내가 거의 2년을 참았어요.저 녀석이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소심하고, 말도 없고, 부끄러워하고, 겁도 많은지 모르겠소. 꿈도, 야망도 없어요. 친구도, 사회생활도 없어요. 그렇다고 반항을 하거나 대들지도 않아요. 그냥 꿈틀거리는 지렁이 같아요. 움직이기는 하는데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도 잘 모... -
무릎 꿇게 만든 두 사람이 밉겠지만…그들은 ‘환자’입니다
■ 이야기제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지난주에도 저는 시어머니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고, 시어머니는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고, 남편은 이혼하자고 했어요. 무슨 1970년대 신파극 같죠? 저도 참 독해요. 나 싫다고 나가달라는 사람들과 3년째 이런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까 말이에요.남편은 소개팅으로 만났어요. 준수한 외모에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어요.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시아버지가 남긴 재산도 상당했어요. 이런 완벽한 조건의 남자가 제게 적극적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엄마는 제 결혼을 좋아했고 자랑했어요. 주변 어르신들은 “주연(가명)이가 어려서부터 예쁘고 얌전하더니 시집을 이렇게 잘 가는구나” 라고 좋아해줬어요.이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시댁에 인사 갔는데 시어머니가 반겨주기는커녕 일마다 꼬투리 잡아 화를 냈어요. 제가 사온 선물은 구석에 처박아 ... -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 이야기20년 간 달려왔어요.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아요. 내년에는 임원을 달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아요. 문제는 제가 숨기고 있는 심각한 내적 긴장감과 불안이에요. 저는 한 번도 제게 만족한 적이 없어요. 남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거짓말이야. 칭찬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괜히 띄워주는 거야’ 라고 생각해요. 수치로 좋은 결과가 나와도 저는 제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겸손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게 아니에요. 저는 사실 거만한 편이에요. 좋은 성과를 내서 다들 술을 마시러 가도 저는 각종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 일을 구상해요. ‘너희가 나를 해이하게 만들어서 무너뜨리려고 해도 나는 무너지지 않아’ 라고 생각해요. 저는 병적 완벽주의자 같아요.타고난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부모님 영향 같아요. 두 분 다 엄격하셨어요.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저녁에 집에 오실 때 한 번 긴장하고, 공무원이었던 아버... -
내 마음 속에 있는 ‘어린 나’를 가르쳐야 해요
집착은 사랑과는 완전히 달라 자신뿐 아니라 타인도 망쳐 위험스스로 외로움 공감하고 수용건강한 이들과 새로운 관계 맺고사랑은 다음으로 잠시 미뤄두길■이야기한마디로 저는 ‘집착녀’예요.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포함해서 20대 후반 지금 만나는 사람까지 네 명을 사귀었는데 다 제 집착 때문에 끝났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과도 요즘 좀 힘든데 그도 떠날까봐 마음이 불안하고 무서워요.썸을 탈 때까지는 집착을 하지 않는데 정식으로 사귀면 갑자기 소유욕이 생겨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궁금하고, 연락이 되지 않은 채 2~3시간이 지나면 화가 나기 시작해요. 오만가지 상상을 하다가 연락이 닿으면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울기도 해요. 만났던 남친들이 몇 달이 지나면 다들 도망가더라고요.저번 주에도 남친에게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가 크게 다투었어요. 저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더 집착하게 되고, 마음이... -
질투심에 상대방이 망하길 바란다면?
편하고 좋기만 한 삶은 드물다A를 넘어서면 B를 질투하게 되고또다른 C라는 질투의 대상 나타나비교와 질투는 끝없는 소모전결국 자기 존재를 잃어버릴 수도남들 눈보다 ‘나’에게 집중해야■이야기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명이 넘어요. 일반인치고는 꽤 성공한 거예요. 작년 한 해는 인스타 키우기에 시간, 돈, 에너지 다 몰두한 거 같아요. 팔로워 1만이 넘으니까 광고 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고, 예쁘다는 댓글도 많이 달리고, 연락이 뜸하던 사람들한테도 연락이 오고 즐겁더라고요. 한동안은 유명인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어요.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울해지는 거예요. ‘내가 왜 이러지?’ 하고 고민해보니까 ‘난 가짜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스타에 몰두하면서 진짜 인플루언서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뽀샵으로 얼굴도 몸매도 다 바꾸는데 쟤들은 생얼이고, 나는 다 설정 샷인데 쟤들은 일상 자체가 화려하고 멋지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 -
암 환자에게 필요한 건, 꽃 한송이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암환자들에 건넨“잘 먹어라” “운동하라” 충고의 말은 마음에 와닿기보다는 도리어 상처가 돼 이미 ‘전쟁 중인’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조용한 포옹·소박한 꽃 한송이일 수도■대화“몸 상태가 안 좋았는데 부모님 병간호를 하느라 병원 가기를 미루다 병을 키웠어요. 유방암 3기였어요. 림프에도 전이가 됐고요. 항암 치료를 16번 했어요. 3주의 주기로 했는데 항암만 1년이 넘게 걸렸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져 다행이지만 처음에는 정말 괴로웠죠. 그때 제 사진 보여줄 게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죠? 퉁퉁 붓고, 얼굴은 기미로 뒤덮이고, 몸에 있는 털은 모두 다 빠졌었죠. 발바닥 피부가 벗겨져 걷지도 못했고, 면역력이 떨어지니 이빨도 깨져 지금까지도 밴드로 묶어 놨어요.”- 아, 얼마나 힘드셨어요. 선생님의 아픔은 정말 헤아리기조차 어렵네요.“올케언니가 유방암이 걸렸었는데 잘 이겨냈거든요. 그래서인지 암이라는 진단을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