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의 삐삐가 묻는다…아직도 동심·교훈에 어린이들을 가둬놓느냐고
수해를 몰고 온 긴 장마에 선생님을 한번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산다는 일 곳곳이 얼마나 장대비 같은지, 보슬비에 의탁하고 싶은 날들이라고나 할까요. 예전에는 보슬비라는 인터넷 아이디가 정겹기는 해도 선생님께서 평론가로 보여주신 엄정한 지성이나 세련미를 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그 이름이 마음에 젖어 옵니다. 어떤 죽음은 죽음 이후에 오히려 삶보다 가까워져 오는 것인지 저는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선생님의 평론’과 ‘평론가인 선생님’을 더 자주 생각합니다. 이제 몇 달 있으면 선생님의 5주기를 맞네요.며칠 전에도 가슴 아픈 죽음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신 젊은 교사의 소식에 미어지는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교실에서 어린이와 만날 일을 꿈꾸어 오셨을 선생님의 날들은 이제 영영 중단되었습니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죽음이며 더군다나 젊은 교사의 죽음은 오늘날 어린이가 살아가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니 더욱 침잠에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듭니... -
전 여기서 일하는 게 좋아요…어른들 세상 ‘미리보기’거든요
부모님 도우려 모텔 프런트 데스크에 선중국인 이민자의 딸 ‘미아’노동의 기쁨과 자부심도 느꼈지만미국인의 ‘갑질’ 등 부당함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룰 거다, 아메리칸드림을2021년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성인 1만9000명을 상대로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설문한 바에 따르면 14개국에서 ‘가족’을 1순위로 꼽은 반면 한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고 한다(경향신문 2021년 11월21일자 “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한국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 1위 꼽아” 참조). 어른의 가치관은 다음 세대에도 전해지는 법인지 우리 청소년 역시 돈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 같다. 매경이코노미가 2022년 6월 만 13~18세 청소년 494명을 대상으로 ‘10대 청소년 경제 활동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돈(물질적 풍요)’이라고 답한 청소년이 30.1%(280명, 복수... -
이토록 애틋한 생명, 힘없는 존재들에게 인간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동물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이야기는 나에게서 벗어나 타자로 나아가는 일인간 중심 질서를 반성하며 모든 비인간 존재를 존중하는 건 어른의 몫아파트에 사는 여우들은닭을 매우 사랑합니다.닭 다리만 좋아하는 여우닭 날개만 골라 먹는 여우닭 한 마리 통째로 좋아하는 여우.출출할 때마다통닭집으로 전화를 겁니다.207동 703호날개만 튀겨 주세요.504동 201호다리만 양념으로 해 주세요.아저씨, 통닭 한 마리빨리 와 주세요.통닭집 아저씨날마다 여우 아파트로 배달을 갑니다.- ‘여우 아파트’ 전문<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김은영, 문학동네, 2014)동시를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문득 부끄러워진다. 닭을 잡아먹는 저 여우가 진짜 여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기가 되기 위해 ‘공장’에서 길러지는 닭에게는 A4 종이 한 장 크기의 면적이 허용된다고 들었다... -
어린이를 해치는 사람, 돌보는 사람…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겠습니까
‘애들 먹이는 게 골치’인 부모에게서 떠밀리듯 친척집에 맡겨진 소녀 이야기킨셀라 부부가 나눠준 든든한 애정, 아이의 일생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될 것어린이를 투명하게 담아낸 소설들, 어른 독자에게 재차 되묻는 질문세상 모든 어린이에 대한 책임…회피하고 싶은 부담인가, 벅찬 희망인가지금까지 나는 아동문학 작품‘을’ 쓰거나, 아동문학 작품‘에 대해’ 쓰는 일을 해 왔다. 동시를 창작하고, 동화와 동시를 비평하는 평론과 연구 논문을 썼다. 다시 말해 아동문학 작품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왔다. 이 칼럼에서도 동화, 청소년소설, 그림책, 그래픽노블 등 아동청소년문학 여러 장르 안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새롭게 발견하는 눈길을 찾으려 했다. 아동문학을 창작하는 어른 작가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돌아보며 조금씩 더 투명한 눈빛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렇게 발견한 어린이를 작품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그런 어린이를 보다 많은 어른과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랐... -
‘열세 살의 세계’를 꼭꼭 숨기지 않아도 괜찮단다, 마지막 어린이들아
초등학교 6학년, 어른들의 말을 따르기만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날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어찌할 수 없는 지점이 있음을 깨달아가며 직접 부딪혀 나가는 ‘가장 나이 많은 어린이’들이청소년기라는 새로운 날로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밀어주자, 손가락 하나 정도로 ‘살짝’만“오늘이 마지막이네.”강은이 말에 혜윤이가 “그러게”라고 대꾸했다. 내일 졸업식을 하면 학교와는 이별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이렇게 작았나. 이제 한 바퀴를 도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아, 마지막 어린이도 끝이구나.”강은이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마지막 어린이?”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나 6학년 될 때 오빠가 그랬거든. 6학년이 마지막 어린이라고.” - <열세 살의 걷기 클럽> 178~179면<열세 살의 걷기 클럽>(김혜정, 사계절, 2023) 에필로그에서 말하듯 6학년은 ‘... -
선을 넘어서, 손을 잡아봐…그게 다 너의 세계가 될 테니까
초연결 시대, 오히려 개인은 흩어지고 고립되는 ‘외로운 세기’…날 때부터 그랬던 세대의 관계 맺기는 생소할 수밖에온라인·오프라인 두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 친구의 모습인가’ 구분짓지 말고 더 많은 사람과 이어지기를오해·편견 걷어내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찾아낸다면, 사회는 더 단단하고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저명한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웅진지식하우스, 2021)에서 초연결 시대인 현재를 ‘외로운 세기’라고 진단한다. 그가 명명한 ‘외로운 세기’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했던 코로나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로운 세기’는 2020년 1분기에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으며 “코로나19가 닥칠 즈음 우리 대다수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외롭고 고립되고 원자화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12면)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외로워진 이유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정치 기획”(366면)으로 분... -
어른도 낯선 사회적 ‘단절의 기억’…아이들이 언어로 정리하는 일에는 긴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다
‘성장기’라는 특별한 시기 찾아온 코로나 학교도 못 가며 사회적 경험에 큰 제한 집에서 격리된 시간·돌봄 사각지대 등 아이들이 마주했을 ‘단절감’과 ‘적막감’ 그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게 잘 보듬어야최근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평균 1만명 정도로 여전히 코로나는 잠잠해지지 않고 있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가 거의 모든 공간에서 해제되고 나니 예전만큼 무거운 마음은 조금 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강의나 강연 자리에서 주로 말을 하는 입장인 나는 아직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감염될 걱정에 앞서 감염의 전파자가 될 경우에 대한 우려가 더 크고, 그러느니 마스크를 착용하는 불편을 감내하는 게 더 속 편해서다. 코로나로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생계에 큰 곤란을 겪거나, 일상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스크를 좀 더 쓰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기도 하다.지난 3년을 지나오며 가장 많은 걸 잃은 이들에는 ... -
세상에서 네가 어떻게 사라지겠어, 내가 너를 잊지 않는데
‘절친까지는 아니었던’ 친구의 죽음 이후,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비로소 가늠하는 그의 빈자리남은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현재진행형’…슬픔과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설 충분한 ‘추모의 시간’ 필요동화 속 기소영의 ‘친구들’처럼 광주와 세월호의 친구들도…서로의 ‘기억’에서 찾는 건 ‘희망’ 아닐까동화나 소설의 제목에는 종종 주인공의 이름이 붙는다. 지금 내 방 책장들을 눈 닿는 대로 훑어보아도 그렇다. 그리스인 조르바, 레베카, 위대한 개츠비, 82년생 김지영, 체공녀 강주룡, 산적의 딸 로냐, 아기 사슴 플랙, 꼬마 옥이, 소나기밥 공주……. 문학은 결국 작품 속 인물이 살아가는 이야기니 인물의 성격이 담긴 이름은 작품 전체를 드러내는 제목으로 적당하다.이름이 담긴 제목에 작품 내용이 좀 더 숨어있는 경우도 있다. <헨쇼 선생님께>(원제 DEAR MR. HENSHAW,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선우미정 옮김, 보림, 2005)는 어... -
10대들의 현실 앞에서, 학폭의 ‘해결’에 더 집중하자는 건 이상론일까
저학년 동화에서는 폭력 가해자가 뉘우치며 갈등 해결…고학년 동화·청소년 소설에선 ‘나’ 자신의 성장과 성숙한 관계맺음에 집중SF 등 장르 문법으로 폭력을 ‘재현’하는 소설들도 현실을 ‘성찰’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 많아…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들 더 창작되길최근 이슈가 된 학교폭력 관련 드라마와 사건은 어린이와 청소년 주변의 폭력에 대해 다시 살펴보게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살아가는 세계가 안전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세계까지 침범하거나 되풀이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을 가장 먼저 지켜주어야 할 가정, 보육기관,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학대나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2절 제6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학교에서 어떤 폭력에 노출될 수 있으며 어떤 보호를 필요로 하는지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① 학생은 체벌... -
얄팍한 지식·교훈 가공으로는 탄생할 수 없는 ‘초콜릿어’와 ‘고래 노래’
난독증 친구와 난민 아이가 초콜릿과 로쿰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말 못하는 아이가 외톨이 고래를 위로하는…두 책에서 보이는 소재·주제는 겉으론 다르지만 서로 다른 언어 세계를 지닌 존재가 연결되고 만나는 ‘내면’ 맞닿아 있어단순 형식으로 전달하는 동화·동시부터 허술한 지식 늘어놓는 지식정보책이 아동문학으로 분류될 수 없는 이유다어른 독자 대상의 책과 마찬가지로 어린이책 역시 다양하다는 점을 알릴 필요를 종종 느낀다. 어른 독자는 소설과 에세이와 학술서를 헷갈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책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는 그저 단 하나로 뭉뚱그려 보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책의 하위 분류에 아동문학과 지식정보책이 있고, 아동문학에는 그림책과 동화와 동시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설령 알더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린이책을 낱낱이 파악하지 않고 그저 어린이가 읽는 책, 그뿐으로 생각한다. 도서 십진분류법의 분류기호 하나에 어린이책이 몽땅 들어가는 양 여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