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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을’도 못 되는 IT업계 노동자들
15년 경력의 프리랜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이현승씨(36·가명)는 ‘대기업·공공기관-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중소기업-인력파견업체’ 다단계 사슬에서 ‘갑’만 빼고는 모두 경험했다. 지금은 누적된 스트레스로 20㎏ 가까이 체중이 줄어들고 건강이 나빠졌다.이씨는 그동안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몸담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사자를 풀어놓은 우리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남은 것은 병명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손발 떨림’ 증상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청이나 외주가 중심인 콜센터 상담원이나 전자제품 애프터서비스업은 그나마 정해진 근무시간이라도 있지만, IT업계는 사람이 더 이상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칠 만큼 혹사시킨다”고 전했다.2008년 ‘병’의 지위에 있던 중소기업에서 대량 메일 발송시스템 개발을 위해 일했던 기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갑’인 공공기관이 발주해, ‘을’인 ... -
(6) 다양한 영화 볼 수 없는 관객들
직장인 최해윤씨(31)는 프랑스에 갔다가 마약운반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투옥생활을 했던 가정주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싶었다. 그는 지난 15일 휴일을 맞아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복합상영관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영화를 보지 못했다. 상영관 4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대작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차지했고, 2개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어바웃 타임>을 상영하고 있었다. 상영관이 많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20~40분마다 시간을 골라 볼 수 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보려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해 포기하고 말았다. 최씨는 “복합상영관은 여러 스크린에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는 볼 수 없고 극장이 보여주고 싶은 영화만 상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영화관에는 쉽게 갈 수 있다. 직... -
(5) 아이 맡길 곳 못 찾은 ‘일하는 엄마’
연년생으로 한 살, 두 살짜리 아들을 낳아 키우는 ‘직장맘’ 이지혜씨(36·가명)는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편”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하지만 ‘꽤 괜찮은 편’인 육아 일기는 고달프고도 애처롭다.그는 지난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6개월, 올해는 4개월을 쉬고 회사로 복귀했다. “사실 둘째 갖고는 석 달 동안 회사에 말도 못했어요.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이씨는 2년 후면 승진 대상이 되고 직전 3년간 근무평가가 심사 기준이 된다. 휴가 기간이 길수록 불이익을 받는 만큼 가능한 한 적게 쉬고 악착같이 버티는 수밖에 없다. 이씨는 “회사가 휴가를 보장해주긴 하지만 원하는 대로 다 쉬면 사실상 승진은 포기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이씨가 근무하는 시간 동안 육아는 친정어머니와 중국 동포 돌보미 아주머니가 맡고 있다. 어머니는 지난해 말 발목 수술을 해서 아직도 불편하다. 월 150만원을 받는 돌보미 아주머니는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퇴근하기 30... -
(4) 항의할 권리
“살려주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지난 10월18일 오후 8시. 수도권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119구급대원 이재영씨(38·가명)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목적지는 11㎞ 떨어진 외진 낚시터. 10분 만에 도착해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늦었잖아, XX들아. 빨리 안 뛰어”라는 고함 소리가 귀를 찔렀다. ‘늘 있는 일’이라 여기고 환자 상태부터 살폈다. 96세 할머니. 응급처치 후 이송을 결정하고 들것을 꺼내기 위해 구급차로 달려갔다. 환자 아들 ㄱ씨(59)는 처치가 빠르지 않다며 구급대원들에게 쉼없이 욕설을 쏟아냈다. 참다못해 “그만하세요. 이러시면 공무집행방해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가슴으로 발길질이 날아왔다. 흥분한 ㄱ씨는 이씨의 목을 조르고 가슴과 배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구조하려다 내가 죽을 수 있겠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얻어맞은 이씨는 몸을 굴려 가까스로 이들을 피한 뒤 환자를 구급차에 태워 병원까지 이송했다. 출동부터 병원에 이르기까지 총 20분.... -
(3)풍자할 권리
지난 5월15일 오전 8시, 회사원 신종협씨(31)는 철야근무를 마치고 귀가를 서둘렀다. 누군가 서울 합정동 집에 들어서는 신씨를 불렀다. 경찰 7명이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이적단체 구성)’를 위반했다는 혐의가 담긴 압수수색영장을 들이대고는 10시간에 걸쳐 컴퓨터 하드디스크 내용을 복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에 ‘국가의 원수’라고 쓴 스티커를 붙인 아이팟터치는 “이적단체에서 줬다”며 가져갔다. 말장난이 웃겨서 붙인 스티커였다. 그는 그날부터 지난 6월23일까지 서울 홍제3동 경찰청 보안수사대 소속 보안분실에서 5차례, 총 40시간 넘게 취조를 받았다. 수사관들은 “대한민국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 사실을 인정하는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66번이나 되풀이했다.지난해 1월 박정근씨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의 트윗을 풍자나 조롱의 의미를 담아 리트윗(퍼나르기)했다가 구속됐다. 이를 보고 신씨... -
(2)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카톡, 카톡” “마!플!” “딩동!”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19일 오후 9시 서울 신촌의 한 맥줏집. 직장인 박은영씨(28·가명)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카카오톡, 마플, 네이버 밴드, 라인, 문자메시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서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 사진 봐라 진짜 웃긴다” “심심하다 뭐해” “포코팡에 초대합니다” “박은영씨 뉴스에 우리 회사 관련한 내용 떴으니까 확인하세요.”메시지 더미에서 회사일과 관련한 메시지를 발견한 박씨는 한숨을 쉬었다. 곧바로 휴대전화로 해당 기사를 검색해서 확인한 뒤 팀장에게 보고했다. 거래처 직원과 함께 쓰는 또 다른 대화방에는 내일 점심 약속 시간 변경을 알리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퇴근 이후에라도 알림을 꺼놓을 수 없어요. 회사일과 관련한 카톡방이랑 밴드가 있거든요. 편리한 점도 있지만 감시받는다는 느낌이랄까요.”박씨는 맥주를 들이켠 뒤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의 옆 테이블에서는 4명이서 온 ... -
(1)최저 주거기준 미달 100만명 시대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고시원. 월세 18만원, 3.3㎡(1평) 크기에 창문도 없다. 두 명이 바로 누우면 꽉 찬다. 가구는 낡은 TV와 책상, 침낭이 전부다. 빨래를 널어도 쉬 마르지 않는다. 방 구석엔 작은 소화기가 놓여 있었다. 이 방에 살고 있는 민철식씨(28)는 “가끔 고시원에 ‘묻지마 방화’가 일어나는데, 불나면 피할 곳도 없다. 겁이 난다”고 말했다.그는 대전의 한 전문대를 중퇴하고 2007년 서울에 올라온 뒤 7년째 고시원에서만 살고 있다. 학벌도 신통찮고, 기술도 없는 그를 받아주는 직장을 찾기는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 건설현장 잡부부터 행사진행요원, 의약품 임상실험까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사이 이태원·강남·도봉구·동인천으로 모두 7번 이사했다. 결혼은 이미 포기했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원룸에만 살아도 어디 산다고 말하고 여자친구를 데려올 수도 있겠지만, 고시원에 살면서 그게 되겠습니까.” 20대 초반엔 고시원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