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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물렁한 연준과 도사린 ‘위험’
지난 11월10일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매월 발표되는 물가지표에 대해 대통령이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매점매석을 하는 불공정 거래자들을 질타했고, 원유를 판매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담합을 비난했으며, 물가 안정을 위해 싸우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인플레이션은 경제적 현상이지만, 정치적 파급 효과도 크다. 물가 상승은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인 아서 오쿤은 고통지수(misery index)라는 지표를 고안했는데, 고통지수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으로 계산된다. 실업은 돈을 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고, 물가 상승은 가지고 있는 돈의 실질가치가 떨어지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조사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임기 1년차인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대체로 4... -
다 같은 메타버스가 아니다
한국 증시는 사실상 올해 내내 조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뜀박질하듯 달려온 종합주가지수는 올 1월에 고점을 기록한 이후 줄곧 횡보세이다. 경기선행지수의 하강이 보여주는 향후 경기 둔화 가능성, 주요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 강화 등이 주식시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화려한 시세를 분출하는 종목들이 있다. 주로 성장에 대한 기대가 투영되는 종목들인데, 요즘은 메타버스 관련주들이 이런 흐름을 대표하고 있다.메타버스의 부상은 매우 상징적 현상이다.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늘 새로운 기술에 열광해왔지만, 메타버스 열풍은 아바타가 들어간 ‘가상의 공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가상의 공간’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자동차와 컴퓨터, 스마트폰 등과 같은 위대한 발명품들은 물리적 실체가 있고, 현실의 행위에 기반하고 있지만 메타버스는 전혀 다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허구와 실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어쩌면 성장... -
미국 증시 치솟는데 한국은 왜?…기업 구조조정 나선 중국 영향 무시 못해
주식시장의 조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6월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주말까지 9%대의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리 강한 강세장일지라도 주가가 조정 없이 오를 수는 없고, 고점 대비 10% 남짓의 하락은 늘 나타날 수 있는 통상적 조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주가 하락을 심각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다만 한국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한국과 미국 증시의 극심한 차별화이다.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들은 9월의 짧은 조정을 끝내고, 10월 들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유럽 증시의 흐름도 나쁘지 않다. 지난주 영국과 이탈리아 증시가 연중 최고치에 올라섰다. 반면 중국과 일본, 대만 등 우리와 이웃한 동아시아 증시들의 성과는 부진하다. 연중 최고치 대비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6.0%, 대만 가권지수가 -5.5%,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5.3%의 조정세를 기록하고 있다.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는 중국 본토... -
다시 스태그플레이션, 긴축 속도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
오랫동안 잊힌 단어가 글로벌 경제를 배회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국면이었던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문헌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을 따름인데,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먼저 선행성 지표들을 중심으로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전반에 선행성을 가지는 한국 경기선행지수가 두 달째 내리막이고, 9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을 하회하면서 향후 경기수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고공권인 상황에서 국내외 시장금리는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경기둔화와 높은 물가 사이의 연결고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연방준비제도 파월 의장이 지난주 미국 의회에서 발언한 것처럼 공급망 교란에 따른 생산차질이 그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조업 중단이 공급망 교란의 주... -
매의 탈을 쓴 비둘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다. 금리 인상의 명분으로 경기 회복과 물가 불안, 금융 안정의 필요성을 들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경기 회복과 물가 불안은 구조적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경기는 확장과 수축의 사이클을 반복하는데, 요즘이 경기 확장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금리를 올려 통제해야 할 과잉 수요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도 기본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코로나 팬데믹 기저효과가 마무리되는 4분기부터는 물가 상승세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망 병목이 물가를 올릴 수는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금리 인상이 적절한 처방이 아니다. 수요 과잉이 아닌 생산비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데, 금리를 올리면 삶의 고통이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공감하는 이유는 금융 안정의 필요성 때문이다.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사람들의 위험선호를 자극... -
‘자본 없는 자본주의’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은 애플이다. 올해 7월29일 기준 애플의 시가총액은 2조4000억달러에 달한다. 한국 코스피 시장 전체 시가총액 1조9억달러보다 훨씬 큰 규모이니 애플은 세계 증시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공룡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애플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98%나 급등했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이나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가늠하는 밸류에이션도 상승하기 마련이다. 애플의 PER(주가순이익 비율)은 26.3배이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37.1배에 달한다.통상 PBR이 PER보다 높은 경우는 흔치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7월29일 기준 PER은 12.5배, PBR은 1.7배이다. PER은 주가(시가총액)를 1년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이고, PBR은 주가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당기순이익은 1년 동안 이뤄진 기업활동의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인 반면,... -
유럽·중남미 주식시장, 국제유가가 관건
축구팬에겐 즐거운 요즈음이다. 세계 축구를 양분하고 있는 유럽과 중남미의 국가대항전인 유로2020과 코파아메리카 대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TV로 양 대회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매우 대조적인 광경을 보게 된다. 마스크도 안 쓴 관중들이 꽉 들어찬 유럽의 축구장과 관중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는 브라질 경기장의 풍경 말이다. 코로나19가 유로2020 때문에 유럽에서 다시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지만, 아무튼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축구장의 풍경이 코로나 방역에 대한 유럽과 중남미의 격차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코로나 방역에서는 차이가 크지만,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큰 차이가 없다. 독일과 프랑스 증시의 약진이야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코로나 확산을 막지 못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브라질 증시도 지난달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인도 증시도 지난주 최고치에 올라섰다. 한국과 미... -
진짜 인플레이션은 임금이 오를 때 온다
요즘 금융시장의 화두는 단연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을 때 생긴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인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수요가 건실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경기회복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물가 상승이 불러올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와 금리 상승이다.다소 불안한 점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과욕이다. 1조900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에 이어, 공화당의 반대로 규모가 줄었지만 1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계획도 의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여기에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가족계획에도 1조8000억달러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와 가계가 축적해 놓은 막대한 저축으로 강력한 경기회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지출이 과하면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질 수 있다.그렇지만 일시적인 물가 불안을 넘어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한다. 물가가 지속적으... -
법정화폐 권력에 대한 가상통화의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거의 모든 자산이 올랐지만, 가장 많이 오른 자산은 단연 가상통화다. 가상통화의 맏형 비트코인은 2020년 저점 이후 12배 올랐고, 시가총액이 비트코인 다음으로 큰 이더리움은 31배나 올랐다. 지난달에는 가상통화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시장에 상장되기도 했다. 지난 6일 기준 코인베이스의 시가총액은 511억달러로 자신이 상장돼 있는 ‘나스닥(Nasdaq Inc)’ 시가총액의 2배 가까이 된다. 외국에서는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하나의 주식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주류 금융권의 시각에서는 가상통화 시세를 버블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범주에서 보면 가상통화는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가상통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배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상통화 시세가 성장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상통화를 ‘화폐’로 보면 내재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흠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주화나... -
불평등과 큰 정부의 시대…‘증세’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법인세 인상 계획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다른 나라들에도 법인세 인하 경쟁을 멈추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동의를 표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이에 앞서 영국은 2023년부터 법인세 세율을 올리기로 결정했다.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공공부채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경제 운용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많은 이들에게 감세와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 패러다임이 익숙하겠지만, 자본주의가 늘 그렇게 운영돼왔던 것은 아니다.1930년대 대공황 국면을 기점으로 1960년대까지 이어진 시기는 큰 정부의 시대였다. 경제 운용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컸고, 그러다 보니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책임져줬지만, 이를 위해 세금은 많이 걷었다. 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