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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5) 에필로그-발해문명이 던진 메시지
    (35) 에필로그-발해문명이 던진 메시지

    바로 이맘때였다. 기자는 지난해 비무장지대 일원, 즉 민통선 이북지역을 탐사 중이었다.한창 ‘민통선 문화유산 기행’이라는 기획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의 와중에 방치되고 훼손되고 있는 비무장지대 일원 문화유산을 찾는 기획이었다. ■ 휴전선 너머로 떠난 역사기행 기자가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찾아간 곳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육군박물관 등이 1991~2000년 사이 지뢰지대를 뚫고 조사했던 문화유적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아도 모골이 송연하다. 상당수 답사지역이 지뢰지대였고, 조사한 지 10~20년이 흘렀기에 조사 당시 지뢰지대를 뚫고 개척했던 좁디좁은 길이 제멋대로 자란 풀과 나무 때문에 어사무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순간 길을 잃기도 했다. 땅거미는 사납게 밀려오지, 발밑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지…. 허겁지겁 빠져나온 뒤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상황을 복기하면 “미친 짓을 했구나”하는 후회가 밀려들었...

    2008.06.13 17:47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4) 단군신화, 몽골비사의 숨은 뜻
    (34) 단군신화, 몽골비사의 숨은 뜻

    우리는 이미 BC 4500~BC 3000년 전 발해연안에서 꽃을 피운 훙산문화에서 단군신화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음을 논증해왔다.제단과 여신묘, 적석총 등 이른바 단·묘·총 3위일체 유적의 발견과 곰 이빨, 곰 소조상, 곰형 옥기 등의 출토가 이를 고고학적으로 입증시켜준다. 이미 훙산문화 시절에 제정일치 사회가 개막되었음도 보았다.단군신화를 유심히 보면 이것은 단순한 신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군 왕검은~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주 무왕이 즉위한 해(BC 1046년 무렵)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삼국유사)주 무왕이 은(상)을 멸한 시점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렸다는 1500년을 더하면 BC 2500년 무렵이 된다. 여기에 환인→환웅↔웅녀→단군의 시대를 감안하면 BC 3000년 무렵과 맞아 떨어진다. 그런 뒤 은(상)이 망하자 기자(箕子)가 본향인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돌아오자, 정권을 내주고 장당...

    2008.06.06 16:57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3) 단군신화, 게세르신화, 그리고 몽골 비사
    (33) 단군신화, 게세르신화, 그리고 몽골 비사

    “왕에게는 아들이 많았는데, 한 왕자의 재주가 다른 형제들을 늘 앞섰다. 여러 아들이 이 왕자를 죽이려 하니 왕자가 도망쳤다. 강에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어~.”깜짝 놀랐다. 2007년 7월24일, 어룬춘(鄂倫春) 자치기 자거다치(加格達奇)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러즈더(樂志德) 다워얼 학회장을 만난 자리였다. 다워얼(達斡爾)족은 이른바 원(元)고구려족일 수도 있다고 해서 관심을 받아온 종족. 그런데 여든세살이나 된 러즈더 회장은 탐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주몽설화와 아주 비슷한 신화를 술술 말하지 않는가. 다워얼족=고구려의 원형? 귀를 쫑긋 세웠다.그런데 들을수록 이상했다. 이야기 구조가 주몽신화와 너무 똑같은 것이 아닌가. 작은 해프닝이었다. 러즈더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역사지식을 토대로 그저 고구려 신화를 이야기한 것일 뿐이었다. 잠깐의 흥분이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닮은 꼴을 찾는다는 것 하지만 기자는 또 작은 깨달음을 얻...

    2008.05.30 17:01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2) 천자를 칭한 조선
    (32) 천자를 칭한 조선

    ㅃ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韓)조의 내용을 조목조목 풀어보자. 기승전결을 갖춘 베스트셀러 소설 같다.“위략(魏略)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연나라가 왕을 칭하고 동쪽 땅을 다스리려고 하자(欲東略地), 옛날 기자(箕子)의 후손인 조선후(朝鮮侯)도 역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亦自爲王) 병사를 이끌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周)’의 왕실을 지키려 했다.”연나라가 제·조·위·중산국 등 다른 네 나라와 함께 왕(王)을 칭한 것은 BC 323년이었다. 왕을 칭했다는 것은 이미 주나라를 천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연나라가 왕을 칭하자 조선도 역시 스스로 왕을 칭했다. 그러면서 연나라가 동쪽땅, 즉 조선땅을 노리자, 조선이 도리어 주(周)왕실을 지킨다는 구실로 연나라 타도를 외쳤다는 뜻이다.“(조선이 연을 공격하려 하자) 대부 예(禮)가 ‘절대불가하다’고 간하자 (왕은) 공격을 멈췄고, 대부 예를 연나라에 보내 이야기하니 연나라도 (조선에 대한 ...

    2008.05.23 17:4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1) ‘연나라 강역도’와 조선
    (31) ‘연나라 강역도’와 조선

    “연나라는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 5군을 두어 오랑캐를 방어하였다.”(사기 흉노열전·연소공세가)“연나라는 전성기 때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을 공격하여 연나라에 귀속시켜 관리를 설치하고 요새에 성을 쌓았다.”(사기 조선열전)■ 연나라가 한반도까지?이런 자료를 토대로 역사를 요리하는 중국을 보면 부러움 반 자괴감 반의 복잡한 기분이 절로 든다. 랴오닝성 박물관에 붙어있는 전국시대 연나라의 강역도를 보자. 그 경계가 랴오둥(遼東)은 물론 한반도 서북부까지 이른다. 화가 치밀어올라도 어쩔 수 없다. 잘못 대들었다가는 일패도지(一敗塗地)할 수밖에…. 사료를 반박할 그럴듯한 근거를 대라 하면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사료도 갖추지 못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성을 갖고 보면 그들이 신주 모시듯 하는 사료에 숨어있는 허점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측 자료는...

    2008.05.16 17:4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0)우리 역사 빼닮은 선우·중산국
    (30)우리 역사 빼닮은 선우·중산국

    1974년부터 발굴한 중산왕릉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을 하나하나 풀어보자.먼저 무덤이 석곽으로 조성된 것이다. 무덤에 돌을 쓰는 행위는 우리가 누누이 강조했듯 발해문명권, 즉 동이문화의 대표적인 묘제이다. 또한 묘실을 중심으로 아(亞)자형 혹은 중(中)자형으로 묘도를 조영했다든지 하는 것들은 은(상)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있는 예이다. 또한 리쉐친(李學勤) 등 중국 학자들이 검토해왔듯 중산국 영역에서 쏟아지는 은(상)의 유적들과, 우칭셴(武淸縣)에서 확인된 선우황비(鮮于璜碑) 등은 선우·중산국=기자(箕子)의 후예임을 증거해준다.■ 山자형 청동기의 비밀자, 이제 중산왕릉에서 출토된 ‘산(山)’자형 청동기를 살펴보자. 착왕(錯王)과 성왕(成王)의 무덤에서는 산(山)의 형태를 지닌 청동예기가 모두 11점(착왕릉 5점, 성왕릉 6점) 쏟아졌다. 그런데 중국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것은 이 청동예기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무게다. 삼지창 모양인데, 크기는 119...

    2008.05.09 17:39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9)중원에 꽃 핀 동이족의 나라
    (29)중원에 꽃 핀 동이족의 나라

    선우·중산국에 대한 역사서를 보면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춘추좌전’ 소공 12년조의 두예(杜預) 주(注)는 “선우는 백적(白狄)의 별종”이라 했고, 사마정(司馬貞)이 ‘사기’를 주석한 색은(索隱)에는 “중산은 옛 선우국이며 성은 희성(姬姓)”이라 했다. 여기서 백적은 북방의 오랑캐이고, 희성은 주나라 왕의 성(姓)이다. 결국 이 사료에 따르면 선우나 선우의 뒤를 이은 중산은 (은)상, 즉 동이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하지만 다른 사서인 ‘속한지(續漢志)’는 “선우는 자성(子姓)”이라 했고, ‘성씨변증(姓氏辯證)’도 “선우는 자성(子姓) 계열이며 은의 후예”라고 했다. 자성(子姓)은 은(상)나라 왕의 성씨이다. 즉 선우(鮮虞·鮮于)는 은나라 후예의 성씨라는 뜻이다. 왜 이렇게 둘쭉날쭉할까. 한 나라의 출자(出自)를 두고 오랑캐(백적)의 별종이라느니, 주나라 왕의 성씨라느니, 다시 은나라 왕의 성씨라느니 혼선을 빚는 것이다. 바로 외세의 틈바구니...

    2008.05.02 17:38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8)중산국의 위대한 문명
    (28)중산국의 위대한 문명

    BC 307년, 조나라 무령왕(재위 BC 325~BC 299년)이 신료들을 부른다.“…지금 중산국이 우리나라 한가운데 버티고 있고(我腹心)…사직이 망하게 생겼으나 나는 호복(胡服)으로 갈아 입고서라도 그들을 치고자 합니다.”(사기 조세가)벌집을 쑤셔놓은 발언이었다. 호복이라니. 주나라의 제후국인 조나라가 오랑캐 옷을 입고 뭘 어찌하겠다는 건가? 대신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아우성친다. 그러자 무령왕이 설득에 나선다. ■ 중산국을 타도하라!“백성들에게 호복의 착용과 말 타고 활 쏘는 법(호복기사·胡服騎射)을 가르치려 하는데 무슨 잔말이 많소? 옛날 순임금은 묘인(苗人)들 앞에서 춤을 추었고, 우임금은 옷을 벗고 나국(裸國)에 들어갔었소. 그분들은 덕정을 선양하기 위해 그러셨소. 설사 세상의 비웃음을 받더라도 난 반드시 오랑캐 땅, 중산을 반드시 차지할 것이오.”(雖驅世以笑我,胡地中山吾必有之)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조 무령왕이 중산을 오랑캐(이...

    2008.04.25 17:40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7)수수께끼의 나라 선우·중산
    (27)수수께끼의 나라 선우·중산

    1974년 11월, 허베이성(河北省) 핑산(平山) 싼지셴(三汲縣). 수리공사가 한창이던 이곳에서 놀라운 발굴이 이뤄진다. 춘추전국시대 신비의 나라였던 중산국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중산왕인 착(錯·조 라고도 읽음)의 왕릉을 비롯, 3기의 왕릉이 확인되었고, 왕릉에서 출토된 정(鼎) 등 각종 예기에서 전국시대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어요.”이제 일찍이 ‘전국시대의 중산국사략(대만대 학술지 ‘사원(史原)’ 11호, 1981)을 집필한 바 있는 이형구 교수(선문대)와 더불어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춘추전국시대, 그 약육강식의 혼란기에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였던 소국, 그러나 비록 작지만 강했던 나라, 바로 ’선우(鮮虞) 중산(中山)국‘의 신비를 풀어보자는 이야기였다. 왜 하필 이 조그만 나라를 주목하느냐. 바로 이 나라가 바로 동이의 나라요, 기자(箕子)의 후예가 세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주변 강대국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불꽃처럼...

    2008.04.18 17:41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6) 난산건의 비밀
    (26) 난산건의 비밀

    이쯤해서 ‘삼국유사’(제1권 고조선 왕검조선조)를 인용해보고자 한다.“(단군 왕검은)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호왕(무왕을 뜻함)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 이에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뒤에 돌아와서 아사달(阿斯達)에 숨어 산신이 되니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다자,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왔던 각종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시사점을 끌어낼 수 있다. 즉 주나라 무왕이 은(상)을 멸한 시기는 BC 1046년쯤이다. 물론 이 연대는 최근 중국 측의 하·상·주 단대공정으로 결정된 것으로 100% 확신할 수 없다.어쨌든 그쯤(BC 1046년)을 기준으로 단군왕검이 나라를 다스렸다는 1500년을 더한다면 BC 2600년쯤이 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단군 이전, 즉 환인과 그 아들 환웅, 그리고 곰이 변해 사람이 된 웅녀(熊女)의 시대를 감안해보자...

    2008.04.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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