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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탈북 청년들
서울 남산 기슭의 여명학교 지하 2층 미술실.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여러 그림들은 이내 숨을 옥죄며 가슴을 짓눌러왔다. 감옥, 창살, 총칼 그리고 절망스럽게 묶여 있는 자신의 몸. “아이들이 이곳에 왔던 초기에 그린 그림들이에요. 시점은 각기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죠.”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의 설명은 그림에서 배어나오던 어렴풋한 공포를 현실적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탈북한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들에게 잡을 손이, 기댈 어깨가 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절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하루빨리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김제동 = 와, 헤어스타일 멋있는데? 어디서 했어? 강현수(20) = 미용실에서요.제동 = 그런데 너무 잘생겨지진 마라. 이 아저씬 태생적으로 잘생긴 것들을 싫어해.정재석(21) = 아저씨도 괜찮아요. ... -
(41) 배우 하정우
‘짐승남!’ 사람에 따라 이 단어에 어울릴 만한 이를 제각각 떠올리겠지만 나는 하정우(35)만한 다른 짐승남을 떠올리기 힘들다. 나 에서 나 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당하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 진짜 남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진짜 남자, 진짜 수컷의 냄새. 그가 그동안 영화 속에서 맡았던 역할들은 화려해 보이거나 멋져 보이는 것과 거리가 먼데도, 이 시대 가장 멋진 남자 배우로 그를 서슴없이 꼽을 수 있는 건 ‘진짜 수컷의 냄새’ 때문인 것 같다. 궁금했다. 그 안에 있는 수컷의 정체가…. - (에서) 욕도 아주 ‘찰지게’ 하시던데…. 중국집에서 소주로 입 헹구는 장면 있잖아요. 그건 진짜 술꾼들만 할 수 있는 건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전에 기사식당인지 어디선지 본 적이 있어요. 그때 강렬한 인상을 받고 나중에 꼭 써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란스럽지 않고 잔잔한 방식... -
(40) 배우 손예진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마주 앉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배우 손예진씨(29)를 내 이상형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뒤 이뤄진 첫 만남. 예전 이상형이던 배우 송윤아씨가 형수가 되고 난 뒤 ‘방황’했던 내 마음은 손예진씨를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걸 두고 형수는 “넌 줏대도 없냐”고 비난했고, 내 주변에선 나를 한동안 놀려댔다. 그런 비난이나 놀림이 대수인가. 사랑은, 이상형은 움직이는 거다. 그렇지만 긴장과 떨림으로 터질 듯한 내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내게 ‘선방’을 날렸다. “얼마 전에 방송 보니까 여배우를 사귀신다고….”-그게요. 제가 그렇게 폭탄발언을 하면 기자나 네티즌들이 추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실체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그 기사 썼던 기자만 욕먹었더라고요. 댓글 보니 ‘여배우들이 미쳤겠냐’며….“사실 저 송윤아 선배랑 친하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도 자주 놀러가요. 그리고 지금... -
(39) 성악가 조수미
-누나, 오늘도 빨래하고 계셨던 건 아니죠?“요즘은 세제가 참 좋은 것 같아. 예전엔 빨래하고 로션을 발라야 했는데, 요즘은 그냥 둬도 부드럽고 좋던데요?”시작부터 웬 빨래타령? 그것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디바’ 조수미(48)를 만나서 말이다. 그 이유는 지난해 MBC 을 위해 ‘누나’를 만난 날에서 비롯됐다. 클래식 문외한인 나에게 조수미라는 이름은 구름 위의 세계나, 책에서나 만날 법한 것이었다. 그런 설렘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누나가 불의의 일격을 날렸다. “제동씨 만난다니 긴장돼서…. 긴장 풀려고 빨래하다 왔어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어요. 이렇게 한강이 보이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빨래하는 누나 모습을 상상해 봤거든요.“공주같이 공부만 하고 살다가 혼자 유학가서 긴장하고 살면서 그런 습관이 생겼어요. 그땐 빨래하면서 눈물 많이 흘렸는데…. 인간은 혼자 태어나서 살다가 간다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 -
(38) ‘나는 꼼수다’ 김어준
김어준(43). 그의 이름 석자를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본 사람이라면 ‘푸흣’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웬만해선 참지 못한다. ‘김어준은 대한민국 언론인이다.’ 그런 어이없는 조합이라니. 반면 웃다가 ‘똥침’처럼 날아드는 생각은 그만한 대한민국 언론인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누구처럼 장외·장내 구분하지 말고, 닥치고 물어보자. 언론의 역할이 뭐냐고. 십수년 전 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허위의식에 똥침을 날린 그는 지금 로 세상을 다시 뒤흔들고 있다. 변두리에 머무르던 기발한 풍자와 패러디가 순식간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인 ‘변방의 혁명성’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무엇보다 그는 웃긴다. 그리고 쉽다. 잘나고 복잡한 논리는 결코 재미와 감성을 이기지 못한다, ‘씨바’. 참고로 이 인터뷰는 그의 MBC 라디오 퇴출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 14일 밤 이뤄졌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그는 전매특허인 ‘씨바’와 각종 욕설을 내뱉었... -
(36) 영화 ‘도가니’ 원작소설 쓴 공지영
공지영(48)이란 이름은 당대의 보통명사다. 이 시대에 그의 이름 앞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그의 날카로운 펜끝에서 생산된 소설과 영화, 에세이가 독자와 관객을 울고 웃게 한다. 나에게 공지영은 예쁘고 글 잘쓰지만, 술 마시면 한 얘기를 또 하는 ‘동네누나’였다. 적어도 며칠 전 누나의 초대로 영화 의 시사회에 가서 펑펑 울기 전까지는 그랬다.몇년 전 지방의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졌던 성폭행 사건을 다룬 공지영의 소설 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면서 전국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이 때문에 지영이 누나의 트위터는 불이 났다. 수많은 멘션이 밀려들고, 누나 역시 그 사건과 관련된 각종 자료며 기사, 이야깃거리들을 하루종일 트윗, 리트윗하느라 바쁘다.-공개적으로 소감도 많이 밝혔겠지만, 막상 영화보고 나니 느낌이 어때요? “확실히 영상으로 표현되는 게 장난이 아니야. 강렬하고 무섭다는 걸 느꼈어요. 나도 작품 쓰면서 꽤 많이 감정이입하고 썼는... -
(35) 가수 이효리
장자는 ‘호접몽(蝴蝶夢)’에서 ‘내가 나비인겐지, 나비가 나인겐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주 몇 잔에 나도 장자가 된 건가. 소주병에서 요염하게 웃던 여자가 어느새 내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희한하네. 자정이 되면 족자 속 미녀가 나와서 사내를 홀렸다는 옛날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게슴츠레 그녀를 올려다보는 순간 술이 확 깨는 한마디가 날아온다. “야, 김제동 정신차려.” 자칭 ‘우주의 중심’ 이효리(33). 시대의 ‘섹시 아이콘’이자 ‘톱스타’지만 내겐 여동생이자 술친구, 아니 이제는 인생의 동지 같은 존재다. 끼와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녀의 미소에 대한민국 어느 남자가 마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난 그날 이후로 ‘혹시나’ 하는 마음을 ‘역시나’로 바꿨다. “오빠, 난 책 많이 읽고, 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그런 남자가 이상형이야.” “그거 내 이야기인 거야?” 대답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소주잔에 술을 채우던 효리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
(34) ‘나가수’ 떠나는 윤도현
“똑바로 하라고 했지? 넌 너무 답답해. 하나를 보면 열을 알거든. 너희 집에 가봐. 냉장고 열면 한 달이 넘은 우유에, 묵은지를 넘어서 곰팡이 핀 김치까지…. 집만 크면 뭐해. 내용물이 너무 허접한데. 네 상태가 그런데 여자를 만날 준비가 돼 있겠냐고. 네 어머니도 답답해 하시잖아. 반성 안하냐?” 바쁜 시간 쪼개 인터뷰하자고 만났더니 잔소리부터 날아온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그렇지 뭐. 그런 집에 혼자 놀러와서 뭘 바라?”라고 맞받았지만 도현이 형의 말은 구구절절 옳다.윤도현 형(40)과 나는 ‘톰과 제리’이자 ‘실과 바늘’ ‘삼겹살과 소주’다. ‘YB 윤도현’이기 전에 ‘방송인 김제동’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 존재이자, 10년 동안 한결 같았던 내 삶의 위안이다. 지난 6개월간 형과 함께 에 출연하면서 우린 소중한 것을 얻었다. 형은 음악 속에서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됐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은 기쁨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깨닫게... -
(33) 취임 1주년 맞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어린 시절, 학교 다니면서 짜증나는 일 중 하나는 ‘장학사님’이 오실 때다. 교장선생님 이하 학교 전체가 한 달 전부터 법석을 떨며 환경미화를 하고, 모종도 옮겨 심고, 운동장에 돌도 주워 날라야 한다. 교실이며 복도 마룻바닥에 양초를 듬뿍 칠한 뒤,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하게 걸레질을 해댔다. 그렇게 ‘꽃단장’을 하고 맞이하는 장학사님 앞에서, 어디 한 번 제대로 숨이라도 쉴 수 있었나. 특히 나 같은 말썽꾸러기에겐 선생님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김제동, 많이 컸다. 그 장학사님보다 훨씬 ‘높은’ 교육감을 만났다. 지난 24일, 취임 1주년을 앞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집무실을 찾았다. -교육감으로서 첫돌을 맞으신 건데, 축하인사보다는 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무래도 많죠?“그렇죠.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부족함과 한계도 느껴요. 교육을 바꾼다는 것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맺는 관계를 바꾸는 것이죠. ... -
(32) 알바 대학생 이소현·윤호산씨
‘엄마, 아빠 대학 가서 죄송해요.’반값 등록금 시위현장에서 한 대학생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고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초·중·고 시절 착실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부모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다니…. 자식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군대에 보내고, 휴학을 시킨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알바’와 ‘공부’에도 바쁜데 피켓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학생들. 가슴을 맞대고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소현씨(20·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1학년·이하 소현)와 윤호산씨(25·서강대 법학부 3학년·이하 호산)를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왜 반정부 시위라는 거죠?” 올해 대학 1학년이 된 스무살 소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러게…. 그게 왜 반정부 시위가 되는 걸까.”느닷없는 질문에 대책없이 얼버무린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스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