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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고향의 죽음 이후, 내 몸속에서 죽음이 풀처럼 우거지기 시작했다네
소설가·평론가 김형수=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선발전이 진행 중입니다. 낡은 사고를 깨우는 새로운 언어도, 거시적 전망을 밝히는 설득력 있는 통찰도 보이지 않습니다. ‘글로벌’이라는 표어는 많지만 국제적 환경 속에서 남북 대치의 특수성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는 판박이 같은 진단만 반복되고 있어요. 선생님의 전쟁 체험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재료로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제 ‘전란 속 개인사’의 외연에 있는 국제사회의 입장, 개괄적인 양상 같은 것들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고은=전쟁은 두 번의 쾌감을 낳았어. 그 쾌감은 적과 아군이 한 번씩 배당받은 쾌감인 셈이었지. 하나는 전쟁 초반의 김일성이고 그 중반의 맥아더였지. 아니 맥아더보다 더 쾌감의 절정에 이르렀던 사람은 이승만이었어. 그가 평양 탈환 직후 평양 역전 광장에서 북한 인민들의 태극기 속에서 열변을 토한 사실은 이에 앞서 김일성의 서울시청 앞에서의 쾌감 못지않은 것이었지.... -
(49) 형! 나 떠나야겠어. 나는 고향이 죽어라고 싫어. 고향은 선지피야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얼마 전 올림픽에서 한·일전 축구를 보다가 마주친 문제가 있습니다. 극적인 승전보의 쾌감 속에 유독 강조되는 단어가 선수 전원에게 부여되는 ‘병역 면제’라는 것이었어요. 한국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군 면제와 연동되어 있다는 것이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스마트 기기들과 쏟아지는 금메달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이 여전히 ‘유보된 전쟁’ 속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1950년에 시작해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긴 전쟁, 그 속수무책의 체제갈등 안에 내화되어 있는 삶이 바로 우리들의 생애 아닌가 합니다. 지난번에 피란 이야기까지 하셨어요.고은=1951년 봄, 서울은 두 번째로 수복되었어. 6·25는 처음에는 남과 북의 전쟁이었으나 곧 북한과 한·미의 전쟁이자 끝내 맥아더와 중국 펑더화이(彭德懷)의 전쟁으로 되는 동안 두 번의 남하와 한 번의 북진이 있게 되었지. 서울은 한반도 남부의 산... -
(48) 피란선이 선유도에 닿은 후 아버지와 난 부산까지 가는 걸 단념했어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전쟁 체험은 통사적이고 연대기적인 ‘사건’들만의 기록으로 박제되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 드러나지 않은 기억들 속에 묻힌 실제 전쟁의 비극과 상처를 저는 지금 듣고 있어요. 이건 또 하나의 한국전쟁사입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여전히 살아있는 6·25라는 동사는, 그래서 1950년대 이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매듭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단의 구조 안에 서식하면서 영혼의 꼬리를 밟고 있습니다. 군산을 떠난 피란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고은=피란선의 1차 기착지는 비응도였어. 몇 가호의 어부마을이 하나 있는데 마을이라고 할 것도 없는 5~6가구의 오두막집들로 이루어진 개펄 기슭이었고 섬 부근의 연안에나 뜨는 돛 한 개의 목선이나 주낙 놓는 작은 배 몇 척이 말뚝에 매여 있었어. 부두라 할 것도 없는 천년포구였지. 씁쓸한 것이 장소의 본연이지.김형수=지금은 쾌속선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제법 번화한 섬인데요.고은=서북풍은... -
(47) 중공군 인해전술이 세상을 공포로 채울 즈음 입대 통지서를 받았어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전쟁 같은 거대한 상황은 아무리 많은 퍼즐을 맞춰도 온전히 복원되거나 재현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구나 민감한 정서와 사유를 가진 인간들에게 도무지 ‘자기주도’적인 전개가 불가능한 불가항력의 상황은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한번 전선으로 떠난 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란 말은 그가 살아서 돌아올지라도 이미 전선과 죽음을 겪기 이전의 그는 아닐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6·25는 선생님은 물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되고 있어야 할 유년의 연장선들을 전쟁이 터진 ‘1950년’쯤에 묻어버림으로써 어떤 파괴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자아의 ‘간극’을 지니게 만든 것 같아요.고은=6·25 사변 실전에 미국군 장교로 참전한 뒤 탁월한 전쟁기록자가 된 페렌바크의 은 폭우가 쏟아지는 신새벽 화천 지역 38도선에서의 북한 인민군 총좌 이학구의 만세소리와 함께 전쟁을 열더군. 그가 전투개시명령을 즉각 실행하는 광경이 인상적으로 ... -
(46) “그해 어느 밤 아버지와 대숲으로 숨었지… 이틀 후 마을로 내려오니 시체가 널렸더군”
소설가·평론가 김형수=6·25를 말할 때 언급되는 시들이 있습니다. 부서진 세계, 파괴된 공동체, 불신과 증오를 감춘 꽃을 한탄하며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라 외치는 박봉우의 ‘휴전선’, 장대하고 원시적인 토착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동엽의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전후문학은 교과서의 사조 하나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우리에게 ‘문명’을 ‘좀비들의 영토’로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사유의 크기를 제공했어요. 저는 이번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대안 문명이 아니라 아예 그것조차 넘어서는 바깥을 향한 발자국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원점이라 할 6·25의 속살에서 소년 고은이 확인한 ‘폐허’의 요체가 무엇이었는지 여쭤도 될까요?고은=그토록 전투적인 거대 명제에 부응할 바에는 의미의 깊이가 더해야겠네. 다만 내가 6·25 사변의 후방 사회에서 체험한 사실의 하나는 인류사의 토대를 이루어 준 핏줄, 탯줄에 의한 생명의 기본형식인 씨족이나 그 뒤에 만들... -
(45) 성님, 동생도 어디론가 내쫓긴 자리에 냉혹한 호칭 ‘동무’가 군림했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음산한 전쟁의 기억을 더듬다 어느새 ‘고은 문학’의 발화점에 이르렀습니다. 6·25는 외세가 어떻든 동족상잔의 오명을 벗을 수 없어요. 핏줄조차 속수무책이던 파괴와 살상, 그 전면적인 폐허 앞에서 선생님은 틀림없이 문명 전체를 뒤집어보는 과정을 밟았을 것 같은데요.고은=사실 인류사의 행로에서 문명이란 어제오늘이겠지. 지난날 씨족시대의 삶은 핏줄의 삶이지. 그래서 ‘엄마!’라는 아기의 말은 한국어와 티베트어가 같고 인도 유럽어 쪽으로도 미음(ㅁ) 발음은 다 한통속인가 보네. 핏줄의 말 기본은 동서가 다를 까닭이 없는지도 모르지. 이런 게 보편의 단초이지. 그 시절 단순한 삶의 군락에서는 근친의 신분인 엄마, 아빠 그리고 제 새끼들밖에 없지. 그래서인가 아시아 고산지대 오지 부족들은 고조, 증조는커녕 할아버지라는 3대 뒤쪽 호칭도 필요 없는 경우가 있어.김형수=씨족, 부족, 엄마… 이런 말들은 금세기가 잃어버린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끝없이 잉여를 ... -
(44) 낮엔 유치장 속 아버지에 도시락 심부름 밤엔 격납고 수리 같은 노역을 했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선생님의 산문을 처음 접한 게 언제였을까요? 고교 시절 을 읽을 때는 서술자의 눈빛을 몰랐어요. 나중에 를 보면서야 ‘한 정신’을 체험한 느낌인데, 아마 ‘추억을 싫어하지만 6·25를 시대의 근원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에, 또 비극을 인지하는 능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동일시하는 태도에 꽤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머잖아 저도 6·25를, 자아가 달팽이라면 그 껍질의 기원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 중요한 사태의 배경설명을 아직 끝내지 않으신 거지요?고은=6·25 전야(前夜)에 대한 정세는 간단하게 넘어갈 것이 아니네만 그것을 상황심리로 요약한다면, 중국 모택동 주석의 인민군이 1949년 1월 북경에 무혈입성한 뒤 불과 3개월 미만으로 200만 대군이 양자강을 건너고 5월에는 상해를 접수해버릴 때 미국 군부는 당황했어. 북한 신정권은 바로 그 중공 승전을 모방하는 전투의지에 스스로 설레게 되었지. 더구나 중국의 천하통일 직후 중공군 조선계 병력 3... -
(43) 6·25는 내게 상처의 날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탄생의 날이기도 하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이 땅의 역사를 국사라 할 때와 민족사라 할 때는 내용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국사라는 거울은 짓밟힌 면경처럼 수많은 실금과 우둘투둘한 굴곡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파편들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결국 민족사라는 거울을 보게 하는데, 이런 차이가 전쟁의 명명에도 있겠지요?고은 = 기억은 기억의 균(菌)들을 퍼뜨리더군. 6·25사변의 명칭을 ‘한국전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또 국내 정서로는 ‘동족상잔’으로도 표현하고, 어떤 경우에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떠올리는 ‘남북전쟁’이기도 해. 중국은 제 눈에 안경으로 ‘항미원조전쟁’이라 하지. 북한은 북한대로 명명하고 있지. 현대사 전공자나 정치학 쪽에서 아직 이 전쟁의 명명에 합의한 적이 없어. 어쩌면 장차 올 평화통일의 시대에나 그 이름이 제대로 확정될지 몰라.김형수 = 그 거대한 집단의 기억이 이름조차 없이 떠돌고 있네요. 공간을 지목해 ‘한국전쟁’이라 하든, 시간을 지목해 ‘6·2... -
(42) 7월의 내 고향은 총소리 없이 시시하게 조선인민공화국이 돼버렸어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6월이 갔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미디어에서 쏟아진 6·25 언어가 모두 다큐멘터리였다면 선생님의 회고는 한 편의 살아있는 미학을 보여줍니다. 공동체가 붕괴되는 역사 파탄의 현장에서 겪은 개개인의 수난사, 그 밖에 집단적, 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그것이 창조자의 내면에 던지는 심리적 파장이나 미의식의 통로가 되는 것을 술회한 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번의 ‘토끼고깃국’ 이야기가 난리통에 유실된 고향 혹은 상처의 기억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요.고은 = 인간에게 고향이란 아버지이기보다 어머니 쪽이겠지. 그리고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이지. 또 본질적으로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정서적인 것이지. 어머니와 아들딸 사이의 대화에서는 교과서의 표준어가 사라지고 오래전의 사투리로 말하겠지. 거기는 근대의 관념어가 나올 자리가 아니라 토착어만으로 충분히 축복받을 자리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고향은 인습과도 남남이 아니겠어. 그러노라면 근현대 독일 ... -
(41) 6·25를 기억할 때마다 무더위와 토끼고깃국이 먼저 떠오른다네
소설가·평론가 김형수=먼젓번에 바다를 대면한 이야기까지 하셨습니다. 나이 열일곱에 전쟁 직전이었으니, 기억의 보폭이 바깥의 계절 변화와 함께하고 있어요.고은=때는 그때가 오는 줄 모르게 오나 보네. 1950년 6월의 더위는 너무 바지런해서 미리 온 참석자처럼 일찍 왔네. 7월 더위가 6월에 온 셈이었어. 그 갑작스러운 억센 더위에 가슴팍이 땀범벅이 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네. 신체의 촉각에 닿은 기온의 흔적도 하나의 기억 서사임에 틀림없지?김형수=네. 연표는 단지 온도계의 눈금 같아요. 1950이나 6·25 같은 숫자에서 비극이 체감되는 정도는 미미합니다. 그러나 더워서인지 ‘땀범벅의 가슴팍’은 실감이 전혀 다르네요.고은=이와 반대쪽에 한국 삼한사온의 겨울 복판의 허공에 영하 혹한으로 맛보는 그 건(乾) 추위가 있지. 쨍그랑하고 깨질 듯한 벽공이 영하 20도 가까운 지상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아무런 습기나 수분의 여지를 허용치 않은 그 투명한 침묵의 비정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