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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리랑카 공동체 운동 이끄는 아리야라트네 박사
지난 1월1일부터 시작한 세계 지성과의 대화가 오늘로 끝을 맺는다.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첫 인터뷰 대상자가 정해지기 이전부터 마지막 인터뷰이는 스리랑카의 아리야라트네 박사라고 마음에 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목련이 흐드러지던 봄날,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의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현대를 진단하는 콘퍼런스에서였다. 그곳에서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모든 사람의 깨달음) 운동이 50여년 동안 그 나라 마을 3분의 1이 참여하는 공동체 운동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서구에서 20여년 전부터 주목받은 이 운동의 실천 덕목은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라고 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그 고전적인 방식이 21세기 자본주의 대안운동으로 버티고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내로라하는 아시아·유럽·미주 지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발표를 마친 아리 박사를 쫓아갔다. 정말 팔정도로 초국가 자본들에 대항하며 소농의 경제 자립과 질적 ... -
(10) 세계화 대안 제시하는 원톄쥔 중국 런민대 교수
‘문명, 그 길을 묻다’가 종반으로 달려간다. 그동안 서구 학자 9명과 대담했다. 서구 지성들과 이 시대의 문제, 그 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 한반도의 의제 등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하나로 수렴되어 가는 지점을 살갗이 벗겨지듯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계의 수많은 양심들이 외치는 “반세계화 저항”의 엄중함이다. 세계화의 물결이 얼마나 깊게 일부의 이익을 옹호하는지, 얼마나 은밀하게 다수의 희생을 만들어 왔는지 물밑의 거센 흐름이 다가왔다. 1990년대 우리 국민의 의식을 자극했던 공익광고가 하나 있다. 주부는 자기 경쟁 상대가 싱가포르 주부라고 했고, 노동자는 자신의 경쟁 상대가 일본 노동자임을 환하게 주장하였다. 그때는 시장의 규제를 풀어주는 작은 정부, 세계화,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메시지를 무한 반복해 재생하였다. 그 환상적 메시지의 속뜻은 20년이 지난 뒤에야 드러났다. 자본이 값싼 시간제 임금을 찾아 국경 없이 흘러가는 세계화 시대는 자긍심 높은 한국 ... -
(9) 미국 1세대 환경운동가 웬델 베리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국민이다. 국민을 피폐해지도록 버려둔다면 아무리 큰 돈도 그 나라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 작가이자 산업화된 현대 농업의 부작용을 바로잡는 데 생을 바쳐온 환경운동가 웬델 베리의 호소다. 통치의 목적은 국민이 안전하게 매일 생활해갈 수 있는 기본을 제공하는 것이며, 그 결과 대다수의 국민이 건강할 때 그 정부의 통치는 성공적이었다고 기록될 것이다. 그 안전의 출발선에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식량권이다. 지금 우리의 식량 안전도는 어느 정도일까? 가족들이 한 해 먹을 양식과 매끼 밥상에 올릴 채소를 키우고 과일과 약재를 마련하던 농사는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 지 50년도 안되어 시장에 팔아 돈을 만드는 상품이 되었다. 생명을 키운다는 농부의 숭고한 자부심은 숱한 농산물 가격 파동으로 구겨졌고, 국민의 건강권과 연결되는 농정을 책임지는 국가의 규제는 시장의 흐름, 돈의 압력으로 헐거워졌다. 식량 자급률도 23%로 떨어졌다.미국... -
(8)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쓰는 단어 가운데 ‘재난사회’란 것이 있다. 이는 ‘너무 늦은’ 상태를 말한다. ‘위험사회’는 조종간만 잘 작동하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재난사회는 몰락의 공포가 구성원을 사로잡는 경우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위험사회’ 속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 기획을 통해 짚어 온 우리 문명의 상태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진단이 그러했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을 바라보며 우리 집단의 정서는 어쩌면 재난사회 속으로 들어와 버렸는지 모른다. 사고 이후 드러나는 다수 선원의 비정규직화, 친기업적 규제 완화, 작동되지 않는 감시·감독 행정,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의 비효율성…. 이 사건은 전 지구적으로 작동되는 위험의 증거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 속에서 대중은 살아있는 자의 슬픔과 자책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구조와 그 지경까지 밀려오도록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회한 때문이다. 오늘 &l... -
(7)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제3세계 사회학연구소 소장
인도의 벽돌 공장에서는 여남은 살 안팎의 사내아이들이 무릎이 갈리도록 온종일 벽돌을 나른다. 말라위의 담배농장에서도 대여섯살 여자아이까지 맨손으로 담뱃잎과 씨름하고 있다. 그 아이들의 몸엔 먼지와 화학약품이 배어들고 미처 자라기도 전에 관절이 녹아내리며 뼈와 면역 체계마저 무너진다. 듣기조차 버거운 아동 노동 실태이다. 1억6800만의 어린이들이 노동에 시달린다. 해마다 630만명의 어린아이들은 5살이 되기 전에 굶어 죽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착취당할 기회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일부 경제학자들마저 공식적으로 동의한다.이 아이들을 죽음 아니면 착취 상황으로 떠민 것은 부패한 정권, 무능한 정권이다. 그들의 부패와 무능은 초국적 거대기업과 손을 잡고 있다. 부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국가 경제의 근간인 토지와 자원 그리고 국민마저 내주고 끌어들인 해외기업의 투자와 외채 때문이다. 거대기업이 가져가는 이... -
(6) 지그문트 바우만 영국 리즈대 명예교수
아이들을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돌리면서도 부모들은 불안하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있는 그 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에 직장도, 대출 신청한 장사 밑천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 돼 버렸다. 그러니 자식들이 살아갈 시대는 더 안갯속이고 오로지 매달릴 곳은 스펙 쌓기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 모두 경주마가 되어 각자의 트랙에서 최선을 다해 달린다. 21세기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또래와 경쟁하면서 앞세대, 뒷세대와도 또 경쟁을 해야 하는 결승점 없는 레이스.경제 규모가 커졌고 과학이 발달했고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부자는 부자대로 현상유지에 대한 두려움, 가난한 이는 가난한 이대로 냉랭한 복지 정책에 마음 둘 곳이 없다. 그래서 밤낮 없이 공부하고 일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생활전선에서 문명의 파국에 대한 위기감이 느껴진다. 우리들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과 탈출 방법을 듣기 위해 지그문트 바우만 영국 리즈대 명... -
(3)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
한국 사회에서 입시 경쟁이 세대가 바뀌어도 느슨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한 반면 분배가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력별 소득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학벌에 따라 기회가 제한되는 관행들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존엄을 갖출 만큼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복지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취업 때문에 불안은 커지고 경쟁은 점점 과열된다. 어른의 불안과 불만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쏟아지면서 우울한 어린이를 양산하고 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나마 아직 열려 있는 보험 같은 문이라는 명문대 입시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 길에는 돈과 희생이 쌓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덫이 하나 있다. 공정하다는 평가시험 자체가 인간 능력에 대한 차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갖춘 여러 능력 가운데 수리능력과 언어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제도가 짜여졌다. 논리적 추론이 정교하고 셈이 빠르며 잘 외우는 능력만을 우대해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 -
(2) 제러미 리프킨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거래와 공유에 대해 일찌감치 예언했던 제러미 리프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통찰이 현실에 부합하는 걸 확인하면서 더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이미 거대자본 중심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시장이 변할 수밖에 없음을 예언했다. 그 바탕에는 지구적 재앙으로 다가온 환경위기와 함께 인류 문명이 더욱 넓혀놓은 사람들의 공감 능력 확대가 있다.인터넷을 통한 개인과 개인의 소통은 시장을 바꿔놓았다. 아프리카 수단 할머니의 좌판에 놓인 대바구니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와 묶여 스웨덴, 뉴질랜드로 팔려가는 시대이다. 이처럼 네트워크가 강화된 세상은 산업의 동력인 에너지 생산 체계마저 바꿀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두 개의 트랙으로 갈라지고 있다. 한 트랙은 현재의 대량소비사회를 유지하며 자본주의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새로운 화석연료 개발을 추진한다. 다른 한 트랙은 재생 가능 에너지망을 설치해 환경재앙을 막고, 무엇보다 개인 대 개인이 연결되는 새로운... -
(1) ‘총균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2014년이 밝았다. 갑오년인 올해는 한반도가 역사적 격랑에 휩싸였던 120년 전의 갑오년에 비유되곤 한다.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 일본의 보수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수와 진보의 반목이 더욱 심해지며 ‘유신’과 ‘종북’을 불러 싸움을 시킨다.사람들 사이에 놓인 선은 집단끼리 경계를 만들며 이젠 벽이 된 듯하다. 월드컵 붉은 티셔츠를 나눠 입던 우리들은 서로에게 보수와 진보라는 딱지를 붙였다. ‘민주화’라는 단어도 두 개의 뜻으로 달리 해석한다. 좋아하는 영화에 따라 편이 갈리고 밥상에도 함께 앉기 불편해졌다. 그 속에서 미래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은 우리 손을 떠나고 있다. 세계는 문명의 위기를 논하며 산업적 전환을 꾀하고 생태환경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며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길게 멀리 보려 하지 않기에 걸린 덫이다. 역사에서 반복된 패턴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