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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비서 반대…출근 사흘째부터 이 총리에 잔소리 쏟아냈죠”
흙 묻은 발로 귀인 침실 습격한 기분…40년 피운 담배도 끊어그분이 ‘길동무’라고 한 건 친근감의 표현일 것책임 총리 맞아…아니면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겠나차기 대권 1위 좋은 거 아니라 하니 본인도 당혹스럽다고 해정운현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59)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딸깍발이’라고 부른다. 도끼를 옆에 놓고 광화문 앞에 꿇어 엎드려 대원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면암 최익현 같은 사람. 말이 좋아 꼬장꼬장한 선비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판에 박힌 공직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새 일을 즐거워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언론재단에서 쫓겨난 지 만 10년을 백수로 지내며 새벽녘까지 글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180도 달라진 생활을 하고 있다.오전 5시20분에 기상, 6시30분에 집을 나서면 7시 반에 광화문 청사에 도착한다. 고3 때부터 만 40년간 피워오던 담배도 거짓말처럼 끊었다. 아직 얼떨떨한 심경을 ... -
유시춘 “내 동생 유시민, 정치 안 하면 좋겠다”
1985년 서울 장훈고에서 해직된 이후 ‘유시춘’ 이름 앞엔 온갖 ‘민’자 돌림 단체의 직함이 붙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결성식 사회를 보고 왔더니 경찰들이 교장 멱살을 잡고 “빨갱이 선생을 데리고 있다”고 소란을 피웠다. 곧바로 해직됐다. 15년 교사, 작가 ‘유시춘’(67)은 그 뒤 민가협 총무,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민화협 공동의장을 거쳤다. 2001년 말부터 2004년 초반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도 맡았다. 어떤 자리든 ‘의분’이 끌고 왔다. 지난 9월 17일 이후 또 하나의 이력이 더해졌다. EBS 신임 이사장. 유 이사장은 “작가, 인권운동가, 교사, 엄마의 이름은 미래세대를 위해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신이었다. 다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노무현재단 설립부터 관여했던 유 이사장은 2016년부터 재단 이사로 활동했다. 최근 ‘10·4 남북공동선언 11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을 다... -
이정미 정의당 대표 “5석 미니정당이 지지율은 15%…실력 다져 이 간극 넘어서겠다”
노, 정의당이라 죽음 택해…당이 타격 극복 어렵다 봤을 것빈소 찾아 울다 간 노동자들, 그들에게 노회찬은 위안이었다당 지지율 상승세, 정치가 좋아져야 한다는 요구 작동한 결과민주당과 개혁 경쟁구도로 가기보다 한국당과 겨루고 싶어정의당 이정미 대표(52)는 휴대전화기에 노회찬 전 원내대표의 유서를 품고 다닌다. ‘노회찬’이라는 이름은 진보정당 원천기술 보유자, 진보를 시민과 정치 곁에 가까이 두었던 대중정치인, 말 그대로 큰 산이었다. 이 대표에겐 전선·노동운동에 집중했던 이정미를 정치인 이정미로 발돋움하게 해준 선배였다. 노선은 달랐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술잔 속에 깊은 이념의 골도 메웠던 관계다. 지난 7월23일 청천벽력 같은 그의 죽음 이후 문득문득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왜 당신이냐, 왜 하필 당신이어야 했냐고 몸서리치게 원망도 했다. 그러나 유서 마지막 ‘당은 당당하게 나아가라’는 글을 보며 송곳 같은 아픔을 거두고... -
“금융계 성차별 채용, 여성행원 승진 발목 잡던 ‘전환고시’의 21세기판”
미투(#MeToo) 운동은 일상화된 차별을 딛고 젠더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새겨들으려면 일상의 권력을 성찰해야 한다. 고용과 노동은 여성이 일상의 권력을 실감하는 현실이다. 그간 여성 노동은 어떤 모습이었나. 경력단절, 일·가정 병행, 저출산, 독박육아 등이 그려진다. 고용갑질의 문턱을 넘어도 불평등한 노동현실과 부딪힌다. 사회적으론 ‘돌봄 노동’이 우선이라는 규범을 요구받고, 직업적으론 일에 몰두하는 노동을 요구받는다. 이처럼 노동과 젠더 사이엔 차별과 평등이라는 양극단이 엄존한다. 미투 운동은 여성 노동과 남성 노동이 평등한 사회로 이끌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할이 크다. 김영주 장관(63)은 여성 최초 노동부 수장이다. 김 장관은 ‘도서관보다 체육관과 가까웠던 농구선수, 고졸 학력의 은행원,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3선 국회의원, 장관’이라고 소개했다.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인생은 덤불투성이다. 여성 은행원, 노... -
이희호 여사 인터뷰 “남과 북, 더 자주 만나야…미투운동, 놀라워”
이희호 여사(96)가 휠체어에 앉아 서울 동교동 자택 접견실로 들어왔다. 봄날의 보라색 블라우스가 단아했다. 고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은 이 여사의 평생과 함께했다. 1976년 3·1구국운동 사건 때도 그랬고, 크고 작은 역사의 현장에 설 때마다 그는 보라색 옷을 자주 입었다.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하셨잖아요. 보라색 스카프도 자주 매셨고요.” 10년 전 그의 자서전(<동행>)을 쓴 유시춘 작가도 동석해 먼저 안부를 물었다. 이 여사는 “네네. 정월 초하룻날에도 입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모두 긴장했었다. 지난 1일 오후 3시, 약속을 잡고 동교동을 찾을 때까지도 다들 말을 아꼈다. 건강이 괜찮을지, 인터뷰가 가능할지…. 걱정했던 맘은 이 여사가 일행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마워요” “반가워요” 인사를 건네면서 풀어졌다. 유 작가는 이 여사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기자의 질문을 이 여사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는... -
이희호 여사 인터뷰 “DJ 특별히 보고 싶진 않아요, 하하하…생일날 가장 많이 생각나”
지난 1일 찾은 서울 동교동 178-1번지 자택 대문에는 ‘김대중·이희호’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붙어 있었다. 1963년 이사한 뒤 ‘동교동 감옥’으로 불릴 때나, ‘대통령의 사저’였을 때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9년이 지난 지금도 문패는 그대로였다. 이 여사 인터뷰에 동석한 유시춘 작가는 “김 전 대통령이 동교동으로 이사한 다음 날, 부부 이름이 나란히 있는 문패를 갖고 왔다. 당시 사회 분위기론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처음엔 당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았지만 달고 나니 동지 의식이 커졌다’며 직접 문패를 달았다”고 전했다. 3남인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굳이 저 문패를 뗄 이유가 있겠나”라며 문패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이 여사는 자택 접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휠체어 옆자리를 돌아봤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입원 전까지 매일 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남편 ... -
“대통령과 브리핑 내용 상의 안 해…난 행복한 대변인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솟아올랐던 지난해 5월, 서울 삼청동 청와대에도 봄날이 스며들었다.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입’으로 임명된 박수현 대변인(54)이 춘추관 단상에 섰다. 일성은 “따뜻한 소통”이었다.8개월이 흘렀다. 박 대변인은 ‘친절한 수현씨’로 통한다. 청와대 2진 출입기자들 전화도 잘 받는다. 당 대변인 때도 출입처를 떠난 기자들에게 밥 한끼라도 챙겼다. 90도 각도로 몸을 숙여 인사하는 습관도 여전하다.청와대 참모는 국정과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이 사랑이라 해도, 그 사랑이 지배와 복종을 뜻하는 게 아니라면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을 좇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참모들이 때로는 한발 앞서, 때로는 뒷걸음을 해서라도 대통령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다. 박 대변인은 8개월 동안 내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장 아파하는 기사만 브리핑했다.박 대변인은 오는 2월2일 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