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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게임’ 승률은 얼마일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폭우로 마비된 서울의 교통 상황에 대해 “각 직장에서 좀 일찍 퇴근해야 할 텐데”라고 ‘염려’했단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좀 더 책임있는 ‘염려’를 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 상식이라고, 인지상정이라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 하여 일찍 귀가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먹고산다는 게, 어디 교통 사정이나 날씨를 따질 여유가 있느냐는 말이다. 어디 먹고사는 일만 그러한가. 바야흐로 휴가철, 폭우든 어쨌든 학원가도 예정대로 잠시 휴가에 돌입한다지만 길어야 주말 끼고 일주일이다. 일단 멈춤 신호가 끝나면 아이들은 다시 돌진한다. 멈추면 죽는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듯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키아누 리브스가 상큼한 얼굴로 활약하던 영화 가 떠오른다. 악당이 폭탄을 설치해둔 버스는 시속 50㎞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다. 버스는 멈췄지만 폭발은 없다... -
근로정신대 문제의 상징성
도쿄 최고재판소는 2008년 말 한국의 징용피해자들이 1999년에 일본 후생노동성과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최종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2009년 말 후생노동성은 연금 탈퇴수당으로 근로정신대에 1인당 99엔(1300원) 지급을 결정했다. 그런 과정에서 광주시민을 중심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결성돼 근로정신대 문제해결을 위한 10만 희망릴레이 모금운동을 전개하며 줄기찬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급기야 최근 야당이 힘을 모아 한·일 협정을 구실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각성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6월23일에는 근로정신대의 징용피해자들이 후생노동성을 상대로 재심사를 청구한 건에 대한 공개심리가 일본에서 열렸다.일본 측이 후생연금 지급 논란에 대한 파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더라도 금방 가시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아시아 각국 피해자들도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피해보상을 요구... -
누가 ‘헤픈 여자’인가
20여년 전에 지방의 대형 사찰에서 진행된 수련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여름, 긴팔, 긴바지 법복이 너무 더워서 휴식시간에 절 한쪽으로 흐르는 냇물에 혼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스님에게 주의를 들었다. 여기는 수도하는 도량이니 발목을 너무 많이 보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종아리도 채 안 보이게 바지를 걷고 있었는데 그게 눈에 띄었나 보다.젠장, 내 발목이 무슨 죄기에 이조차 감춰야 한단 말인가. 발목은 남자들의 발목이 그렇듯이 우리 여성들에게도 발을 이어주는 다리의 일부분이고, 서 있고 걸어다니는 데 쓰이는 신체일 뿐이다. 그게 왜 수도하는 스님들의 시선을 자극한단 말인가. 누구 마음대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혈기왕성했던지라 총책임을 맡았던 큰스님께 항의조의 메모를 써서 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같은 맥락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요즘 전 세계 여성들의 ‘슬럿 워크(Slut Walk)’ 열풍이 언론에서 화제다. 슬럿 워... -
특수고용 노동자 울리는 산재보험
“하라는 반값 등록금은 않고, 사업주 반값 보험료만 해주는군요.”고용노동부가 지난 8일 택배·퀵서비스 기사의 산재보험 확대적용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대책이란 것이 택배기사는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노동자가 5 대 5로 분담하는 방식이고, 퀵서비스 기사는 보험료 전액을 노동자가 책임지란다. 본래 보험료 전액을 사업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은 강제가입이 원칙인데, 택배기사는 임의탈퇴가 가능하도록 했고 퀵서비스 기사는 아예 임의가입 형태이다. 애초 노동부는 간병인에게도 적용하는 방식을 검토했으나 이번 발표에선 아예 언급조차 없다.이렇게 변칙적인 산재보험 적용이 되는 근거는 이들이 임금 또는 노동력의 대가를 사업주가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수령하는 이른바 ‘특수고용’ 직군이기 때문이다. 실상을 뜯어보면 이들 역시 사업주에게 종속된 분명한 노동자들인데, 겉으로는 마치 ‘자영업자’인 것처럼 보이도록 사업주들이 포장해 놓아서, 노동기본권과 4대보험에서 배제돼 왔다.그러나 2000년부터 ... -
등록금은 국가의 실패다
세현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꿈같은 새내기 첫 학기를 보내고 고향으로 내려가자마자 아버지는 세현에게 장학금을 받았는지를 먼저 물어보았다. 오랜만에 내려온 자식에게 성적 이야기부터 하는 아버지가 야속해서 벌컥 화를 냈더니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는 장남이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무리를 해서 서울로 보낸 거라며 우리 집 형편에 네 동생들은 서울로 보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니 어떻게 해서든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순간 세현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동생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동생들은 희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세현에게 대학은 죽었다. 다음 학기 서울로 올라와서는 대학생활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공부였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부모님에 대한 죄악이고, 동생들에 대한 범죄행위였다. 현정의 집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크게 망했다. 얼마 전에야 그때 진 빚을 겨우 다 갚... -
학창시절 따돌림
친구 많기로 유명했던 둘째 딸아이가 요즘 친구와의 갈등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밝고 명랑하던 아이가 우울해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한다. 말이 친구와의 갈등이지 사실은 전형적인 왕따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와 함께 전학을 했는데 그때 새로 사귀었던 친구들과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견제, 배제, 그리고 비난과 괴롭힘, 협박의 대상이 되는 수순을 밟고 있는 딸아이와 그 눈물의 하소연을 받아줘야 하는 나는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보다 못한 내가 딸애와 가해학생의 관계에 개입했고, 학교 담임선생님에게도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주시긴 했지만 그 이후 딸은 마더걸, 선생님에게 일러바친 애라고 공격당해야 했다. 매일 아침 딸아이는 오늘 하루는 과연 무사히 넘어갈 것인지, 그나마 남아 있는 친구들이 어느날 자신을 떠나가지는 않을지 마음 졸이며 학교로 향한다.물론 인간에게 닥치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그렇게 해로운 것만... -
‘소심한 시위’의 힘
일 때문에 배우 김여진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모로 언니, 라고 납작 엎드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모조리 얼른 주워 담아 귀에 넣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뿐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소심한 시위’였다.철거민 투쟁을 함께 하다가 기소까지 당했던 진성 운동권 언니였던 만큼 말의 무게가 남달랐다. 굳이 돌 던지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끌려가고 이런 것만이 ‘운동’이 아니라는 거였다. 물론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열의가 있는 사람은 그런 것을 하고, 아직 수줍거나 시간이 안되어 못 나서는 사람은 그 방식대로의 소심한 시위를 하자는 거였다.그 ‘소심시위론’에 감명을 받고 김여진 선배의 그 유명한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과연, 각종 소심한 시위를 한 트위터리안들이 인증샷을 끊임없이 올리고 있었다. 고려대 성추행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 인증샷은 물론이고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배너에 ‘반값 등록금을 지지합니다’라고 박... -
위험한 ‘박정희 담론’
최근 이승만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얼마 전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박정희가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하지만 민주개혁 성향 표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분산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부동의 1위’라는 결론은 다소 성급하다). 이런 현상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내년 대선 출마와 관계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문화적,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장기적인 차원에서 굳히기 위한 보수 엘리트들의 과욕과도 관계 있는 듯 보인다.박정희 담론의 대부분은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지만 ‘경제발전’에 관련된 리더십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그 핵심을 이룬다. 이런 주장은 마치 ‘공정한’ 조망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단순한 이분법에 불과하다. 어떤 지도자든 공과를 동시에 봐야 한다면 히틀러의 공과에 대해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박정희 담론을... -
SNS 세상, 스산한 소통
10여년 전에 어떻게 우리가 소통했는지 생각해 보면 문명의 발전이 놀랍다. 몇 시에 전화 걸 테니까 받으라 하고 전화기 앞에서 마냥 기다리던 순간이나 015, 012 번호 같은 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다. 처음 PC통신이라는 것이 생겨 전혀 모르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의 30, 40대라면 전도연과 한석규가 출연한 영화 의 잔잔한 감흥을 기억할 것이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접속할 수 있다는 그 신비로움은 인터넷을 지나 SNS시대에 도달하면서 너무나 당연한 ‘생활’이 됐다. 10년 후든 20년 후든 시간이 좀 지나면 지금의 젊은, 혹은 어린 세대들은 서로에게 지나치게 큰 상처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에서 이 현대적 도구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요즘 아무도 장난전화를 걸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있어서 적정한 선을 익혀 가고 있고, 그러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와중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상처를 입... -
여성들이여, 걸어보세요
마흔 중반이 다 된 한 친구가 어느 날인가 문득 직장을 그만두더니 걷기 시작했다. 자기 집 동네 산책길에서 시작해 산이고, 들이고 어디라도 가리지 않고, 몇 날 며칠이고 걸어다녔다. 가끔 용건이 있어 전화라도 할라치면 그녀는 북한산, 지리산, 강화도, 울릉도, 제주도 그 어디쯤에 서 있다고 전했다. 혼자 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내던 친구가 인도네시아 발리라든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혼자여행을 감행했다.그러더니 결국 그녀는 여행안내자가 됐고, 걷기여행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치유하게 된 경험을 담아 라는 여행에세이도 출간했다. 가족, 직장, 인간관계에서 한꺼번에 문제가 터지고 얽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꼼짝없이 갇혔을 때 그녀는 그렇게 걷기여행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기적처럼 성찰과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것이다. 책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길은,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도량이었다. 스쳐지나가는 풍경과 나무와 바람을 맞으면서, 빗속에, 눈속에서 걷다 보면 채 털어버리지 못하고 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