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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이번엔 좀 바꿔야지 않을까?” 김 노인의 말에 황 노인은 입에 넣으려던 라면을 내려놓았다. “바꾼다니? 대체 뭘 바꾼단 말이야?” 황 노인이 말할 때 라면 조각이 날아가 김 노인의 이마에 튀었지만, 황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저 위쪽에 있는 북한이 안 보이나? 걔네들이 로켓에 핵을 실어 우리나라로 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가겠어?” 김 노인은 이마에 붙은 라면을 떼어냈다. “자네 말도 이해해. 공산화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북한도 북한이지만 우리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지 않아? 곧 겨울이 오는데 정부에서 난방 보조금을 깎았다잖아.”라면 국물을 마시던 황 노인은 젓가락으로 탁자를 찍었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당장 월북이라도 하게. 자네는 공산당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공산당, 공산당. 그 공산당 타령은 이제 지겨워.” 한마디도 안 하던 마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 -
좌변기의 꿈
저 멀리 아프리카엔 가상의 나라 ‘누리공화국’이 있다. 인구 450만명의 조그만 나라인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누리공화국은 돈을 많이 버는 몇몇 기업 덕분에 비교적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한다. 안타까운 점은 국민소득의 절대다수를 몇몇 기업주와 부자들이 가져가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극빈층이라는 것. 부자들은 비데가 설치된 좌변기에서 안락하게 일을 보는 반면, 98%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일을 본다. 하체가 튼튼해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푸세식 변소의 결정적 단점은 기생충을 확산시키는 거였다. 열대국가답게 누리공화국은 강우량이 많은 편인데, 비가 오는 날이면 푸세식 변소에 쌓인 변이 밖으로 나와 거리에 뿌려진다. 그 변 안에는 온갖 종류의 기생충알이 들어 있어, 위생이 안 좋은 그 나라 사람들은 쉽게 기생충에 감염된다. 누리공화국에서 37년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국밥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면 뭐하겠노? 기생충들이 다 먹어치우는데.” 누리공화국... -
삼성과 박근혜
벌써 20일이 지난 얘기지만, 올 시즌 프로야구는 삼성의 우승으로 끝났다. 시즌 전부터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삼성의 우승을 예상했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올 시즌만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가 없을 정도였다. 삼성이 2011년 우승팀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삼성은 어느 팀보다 두꺼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었고, 홈런타자 이승엽이 가세했으며, ‘끝판대장’이란 호칭에 빛나는 철벽 마무리 오승환이 있었다.그렇다고 삼성의 우승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시즌 초반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작년 30개로 홈런왕에 올랐던 최형우가 올 시즌 친 홈런은 고작 14개였고, 10승을 올리며 작년 삼성의 우승에 기여한 차우찬은 방어율 6점대로 6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시즌 개막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삼성의 순위는 8개 팀 중 7위였다. 이 공백을 메워 준 게 바로 두꺼운 선수층이었다. 한 선수가 부진하면 갑자기 나타난 다른... -
중남미 국가들의 은혜
우리나라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땅을 파 내려가면 아르헨티나 근처로 나온단다. 축구를 잘하고 마라도나라는 축구신동을 배출한 탓에 아르헨티나는 대부분 알 것이다. 근처에 있는 브라질은 축구를 더 잘하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우루과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칠레는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라서, 자메이카는 우사인 볼트, 쿠바는 카스트로, 멕시코는 전통의상 때문에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다. 이 나라들을 중남미 국가라고 부르는데, 중남미에는 이들을 포함해 총 33개나 되는 나라가 있지만 위에서 예를 든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가 모르거나 알아도 이름 정도밖에 모르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이 중남미 국가들이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잘 모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남미를 상대로 한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일은 중남미 국가들이 우리나라 재벌들에게 기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준 거였다. 예를 들어 보자... -
007과 박근혜
20년 전만 해도 스파이물 하면 다들 ‘007 시리즈’를 떠올렸다. 1962년 처음 만들어진 후 20편이 제작된 007 시리즈는 어렵고 고독한 직업일 스파이에 대해 그릇된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미끈하게 잘생긴 얼굴에 고급양복을 입고 미녀들을 마음껏 유혹하는 스파이라니, 한번쯤 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황당한 설정이 반복되자 팬들은 점점 식상감을 느꼈다. 게다가 강력한 적이던 소련이 해체된 탓에 007이 왜 필요한지조차 의문시됐고, 이런 회의감은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007 영화에 관객이 발길을 끊는 것으로 이어졌다.그 틈을 비집고 등장한 게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다. 세계 제일의 미남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이 시리즈는 몸을 사리지 않는 주인공의 연기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1편에서 주인공이 줄 하나에 매달려 CIA에 침투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작년 말 개봉한 4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828m짜리 빌딩에 대... -
국토부의 무릎반사
의자에 앉은 사람의 무릎을 망치로 때리면 어떻게 될까? ‘아프다’라고 할 분이 계시겠지만, 원하는 정답은 발이 위로 올라간다, 즉 ‘무릎이 펴진다’다.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무릎반사로,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며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해서 ‘무조건반사’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조건반사는 특정 조건을 경험한 사람만이 보이는 반응으로,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외삼촌이 집에 올 때마다 조카에게 용돈을 준다면, ‘외삼촌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조카는 가슴이 뛰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며, 그 돈으로 뭘 살 것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그런데 조건이냐 무조건이냐가 실제 세계에선 잘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대통령 각하의 숙원사업인 4대강 공사가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기관은 4대강 사업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법조계를 보자. 5000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니만큼 땅을 파면 문화재가 묻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우... -
권력은 고래도 숙이게 만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생활 내내 군부독재와 싸워온 투사였다. 1979년 그는 뉴욕타임스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는데, 그게 빌미가 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 사건은 부산과 마산의 대규모 시위, 즉 부마항쟁의 계기가 됐다. 유신정권은 그로부터 한 달을 못 넘기고 막을 내린다. 그 뒤 이어진 전두환·노태우 정권과도 대립각을 세우던 YS는 난데없이 3당 합당을 통해 군사독재 세력과 뜻을 같이하게 되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대통령을 꼭 해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커피 한잔 하는 것도 싫었을 사람들과 한방을 쓰게 만드는 것, 권력욕이란 이런 걸 가능하게 해준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거짓말을 잘한다는 비난에 시달려 왔다. 다른 정치인보다 DJ가 거짓말을 특별히 자주 한 건 아니었겠지만, 군사독재 세력이 그에게 빨갱이와 더불어 거짓말쟁이의 이미지를 덧씌웠기에 그렇게 믿는 이들이 많았다... -
평강의 후예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를 하기 전에도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었다. 현대건설에 다니는 동안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재산을 모았으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여생을 보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아주 가끔씩 재산의 0.1%도 안될 몇 천만원 정도를 좋은 일에 기부하면 “훌륭한 분”으로 칭송도 받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치판에 뛰어드는 바람에, 그리고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그는 절반이 넘는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는 중이다. 수상한 점이 있긴 하지만 300억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헌납했음에도 시선이 싸늘한 건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그분은 정치 같은 것을 해서 스스로 피곤한 삶을 사는 걸까?하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보통 사람의 한계다. 보통 사람이야 수백억원의 재산에 만족하며 살 수 있지만, 그 정도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야심가라 부른다. 보통 사람은 10억원을 은행에 넣어두고 매달 300만원의 이자를 받으려 하는 반... -
디스토시드와 의사 처방
사례 1. 한 남자가 대변을 보다가 5㎝쯤 되는 조각들이 변기물 위에서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기생충이라고 생각한 그는 회충약을 복용했지만, 그 조각들은 두 달 후 또다시 기어나와 그를 좌절시켰다. 병원에 입원해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 봤지만 그 조각들로부터 벗어나는 데 실패한 그는 결국 우리 과에 연락을 했다. 진단 결과 그가 걸려 있던 기생충은 아시아조충으로, 그가 베트남에서 돼지 간을 먹을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됐다.사례 2. 또 다른 남자가 대변을 볼 때 느낌이 이상해 변기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50㎝쯤 되는 기다란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생충임을 직감한 그는 회충약을 먹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기다란 물체는 시시때때로 대변을 통해 기어나와 그를 아연하게 했다. 결국 그는 내과 외래를 통해 우리 과로 왔고, 3m가 넘는 벌레가 그의 몸 안에 들어앉아 몸의 일부를 내보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기생충의 이름은 광절열두조충이었고, 이 벌레가 나오기 몇 ... -
‘떡’에 관한 추억
곡식의 가루를 찌거나 익힌 뒤 모양을 빚어 먹는 음식을 떡이라고 한다. 곡식이 주원료니 주식이 쌀인 동아시아에서 발달했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대표적인 떡의 나라다. 낙랑의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데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떡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건 원시농경시대로 추정된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안 먹는다고 생각했고, 추석 땐 온 가족이 송편을 빚었다. 지금도 떡은 아이들 돌잔치를 비롯해 회갑연 등 각종 기념일에 없어선 안되는 음식이다.그래서 그런지 떡은 대부분 좋은 의미, 즉 원하는 것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다음 말들을 보면 우리가 떡을 얼마나 숭상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림의 떡/ 남의 손의 떡은 커 보인다/ 양손의 떡/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주는 떡도 못 받아먹냐.이러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