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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감 후]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대회를 열어 ‘법외노조’로 출범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89년 6월15일. ‘우리’가 다니던 대학에서 예정에 없던 전교조 서울시지부 결성대회가 기습적으로 열렸다. 당초 다른 학교로 예정됐던 대회 장소가 경찰의 원천봉쇄 때문에 급하게 우리 학교로 바뀌었다. 오전부터 모여든 선생님들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 1000여명에 달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수천명의 전경을 투입해 학교를 겹겹이 둘러쌌다. 우리들은 경찰의 교내 진입을 막기 위해 대치에 들어갔다. 학교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수백명의 선생님들은 교문 밖에서 농성을 하다 경찰에 강제해산되고 수십명이 연행됐다. 그날 저녁 서울시지부 결성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문제는 선생님들의 귀가였다. 선생님들은 다음날 경찰에 자진출두할 테니 길을 터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서울시지부 간부들의 연행방침을 고수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협상은 결렬됐고 당시만 해도 대학가에서는 너무나 흔했던 화염병과 짱돌, 최루탄과 곤봉이...

    2014.07.03 21:14

  • [마감 후]‘전교조 교육감’과 총리 지명자
    ‘전교조 교육감’과 총리 지명자

    전교조가 하는 일이 모두 옳지는 않을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모두 훌륭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단하다. 17개 시·도 교육감 중 8곳을 전교조 출신이 차지했다고 한다. 2012년 10월 기준 회원수가 5만4808명으로 전체 교원의 11.9%에 불과한 전교조 출신이 교육감의 절반 가까이를 맡게 된 것이다. 여기에 힘입어 전국 교육감 가운데 13곳을 진보 진영이 가져갔다. 한 보수 신문은 6·4 지방선거 결과를 알리면서 1면 톱 제목을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라고 달았다.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보수 신문을 다시 뒤져봤다. 회원수가 전교조의 3~4배에 이른다는 한국교총의 안양옥 회장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선거에 나오는 보수 후보들은 대부분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심하게 말하면 자신 위주로만 생각하고 자신밖에 볼 줄 모른다.” “진보진영은 조직 간의 정서적 연대감이 있다. 큰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할 줄도 안다.”개인적인 경...

    2014.06.12 21:02

  • [마감 후]민주주의를 알 때까지 자라라
    민주주의를 알 때까지 자라라

    선거가 끝난 아침 출근길 전철역 앞. 몇주 동안 봐왔던 풍경이 사라졌다. 출근 때마다 전철역 입구 양쪽에 도열해 일제히 인사하는 선거운동원들 사이를 통과해야 했다. 그건 흡사 ‘꽃터널’이다. 빨간색, 파란색에 하얀색까지 옷을 맞춰 입은 운동원들은 양쪽으로 빼곡하게 늘어서 출근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기호 ○번 XXX입니다”라고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꽃터널을 지날 때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민망했다. 꽃터널을 장식한 누군가는 당선되고, 누군가는 낙선했을 텐데, 오늘 아침에는 빨간꽃도 파란꽃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전날 밤 한바탕 돌풍이 몰아쳤으니 꽃이 져 흔적없이 날아가버리는 것도 당연하겠다.꽃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었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저러는 것일까. 저렇게 하는 것이 과연 선거에서 도움이 될까. 과도한 공손함은 예가 아니라는데 왜 저렇게 과한 예의를 차려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주민들의 ‘종’이 돼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 아닌가, ...

    2014.06.05 20:37

  • [마감 후]부자
    부자

    부자는 행복할까. 적어도 헨리 엥겔하트는 그런 것 같다.56세인 그는 영국 자동차 보험사 ‘애드미럴’ 최고경영자다. 이 회사에는 사장실이 없다. 사장과 중역용 회사 차도 없다. 직원과 임원 출장비는 똑같고, 숙박에도 차별이 없다.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는 ‘오락부’다. 이 부서는 직원을 즐겁게 할 행사를 궁리한다. 생일 잔치, 사무실 간이 축구, 동화 주인공 옷 입고 출근하기, 점심시간 컴퓨터게임 대회 등을 열고 있다.작은 회사니까 가능할까. 아니다. 이 회사 자산은 40억파운드(약 6조8468억원), 직원은 7000명이다. 런던증시 FTSE100에서 10년 연속 고수익, 고배당을 한 2개 기업 중 하나이다.미국인인 엥겔하트는 당초 시카고 상품 거래소에서 일했지만 즐겁지 않았다. 영국으로 간 그는 1993년 애드미럴을 차렸다. 2004년 주식 상장으로 3000만파운드(510억원)를 벌었다. 이듬해 주주총회가 열렸는데 일사천리였다. 직원 1인...

    2014.05.29 20:25

  • [마감 후]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의 봄은 꽃이 아닌 슬픔으로 열린다. 묵은 계절이 가고 생명을 움틔우는 자연과 달리 한국의 봄엔 생명들을 떠나보낸 아픔이 흐른다. 4월 유채꽃 핀 남도(南島)에서부터 5월 광주까지 꽃길을 따라 슬픈 바람이 분다. 그렇게 한국의 봄날 마디마디엔 한(恨)들이 아롱아롱 맺혀 있다. 올봄은 많은 어린 꽃들을 잃은 슬픔이 더해져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라 전체가 무채색 공기에 갇힌 듯 침울하다.‘국가란 무엇인가.’ 이 잔인한 봄날을 지나는 우리 가슴을 납덩이처럼 누르는 화두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는 질타처럼 ‘국가의 배반’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힌 탓이다.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짐이 곧 국가”(루이 14세)라던 절대왕정이 아닌 지금 국가는 곧 ‘국민’이다. 하지만 국민은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헌법...

    2014.05.22 21:37

  • [마감 후]이타적인 사람의 죽음
    이타적인 사람의 죽음

    사회가 공정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타적인 사람은 남에게 혜택을 주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이타적인 사람은 불안정하다.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에게 음식을 건네느라 배를 주리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대를 잇지 못하거나 자녀 양육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단적인 예다. 그에 비하면 이기적인 사람은 진화론적으로 안정적이다.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고 명(命)도 길다. 자기 몫은 당연히 챙기고, 이타적인 사람 몫까지 가져오기 때문에 평균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득세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고, 성공은 무조건 미화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둥, 이기심은 생명체가 갖고 있는 본능이라는 둥,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둥, 이기심...

    2014.05.15 21:05

  • [마감 후]한국의 ‘전양저’는 누구일까
    한국의 ‘전양저’는 누구일까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말이 안 나오는 현실 앞에서 글은 참 무력하더군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서민 교수가 며칠 전 경향신문 홈페이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말미에 쓴 말이다. 요사이 내가 읽은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이다.한동안 말도 하기 싫었다. 무력감만 느껴졌다. 스스로 힘을 낼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책을 꺼내들었다. <열국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몇 해 전 읽을 만하다며 추천했다는 책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영웅들의 얘기를 읽으면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펼쳐든 대목의 주인공은 제나라의 전양저였다. 소설 속 그는 원칙에 철저했다. 서자 출신인 전양저는 정승 안영의 천거를 받아 제나라 대장으로 임명된다. 진나라와 연나라가 쳐들어오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낮은 신분으로 갑자기 대장이 된 전양저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임금인 제경공에게 “총애하시는 신하 하나를 ...

    2014.05.08 20:44

  • [마감 후]검찰이 자초한 ‘물타기 의심’
    검찰이 자초한 ‘물타기 의심’

    검찰의 ‘SK 비자금’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3년 10월. 수사 상황이 보도되는 경위를 찾겠다며 검찰이 일부 출입기자의 휴대전화 통신내역을 무단 조회한 사실이 한 언론을 통해 폭로됐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범죄 수사상 필요시’로만 엄격히 제한돼 있는 통신내역 조회를 검찰이 임의로 한 것이다. 사실상 민간인 불법 사찰에 해당되는 중대 사안이다. 기자단은 발칵 뒤집혔고, 당일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까지 보냈다. 검찰로서는 무척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파문이 이어지던 다음날 검찰은 전격적으로 SK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이상수 당시 통합신당 의원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돈웅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조만간 소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자금을 총괄한 선거대책본부 총무본부장과 노 전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해온 최측근,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을 총괄한 한나라당 재정위원장 등이 검찰에 불려온다는 것이다. 일개 기업의...

    2014.05.01 21:31

  • [마감 후]피에타
    피에타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 말로 비탄(悲歎)이란 뜻이다. 또 기독교 예술 주제 중 하나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시신을 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14세기 독일에서 처음 나타나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비장미, 성(聖)과 속(俗)의 일치, 극한의 모성 등이 현현하기 때문이다.가장 유명한 피에타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보관돼 있는 조각상일 것이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다. 성모 마리아의 어찌보면 담담해 보이는 얼굴은 아들 잃은 어미의 참척(慘慽)을 역설(逆說)하고 있다. 그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이미 숨진 것이다.그런 ‘피에타’를 실제 본 적이 있다. 사회부 사건기자 때이던 1995년 6월29일, 출입처인 서울 동부경찰서에서 취재를 마치고 귀사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긴급 뉴스가 나왔다.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엔 화재라고 했다가 가스폭발, 테러로 보이는 폭발이라는 소식이 전...

    2014.04.24 21:09

  • [마감 후]뉴스를 못 보겠다
    뉴스를 못 보겠다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보겠다’고 합니다. 부끄럽고 비겁한 어른들의 마지막 양심은 그렇게 작동하나 봅니다. 평온하던 수요일 아침은 그렇게 벽력처럼 날아든 세월호 침몰 소식에 악몽이 됐습니다. 사고 소식은 시시각각 전파를 탑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다시 해가 뜬 오늘도 어떤 간절함들이 담긴 뉴스들이 화면에 가득합니다. 그곳에 ‘기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들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분들이 ‘뉴스를 못 보겠다’고 고통스러워들 하십니다.태양의 시절을 지나야 할 어린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겪었을 고통이, 그 고통에 대한 죄책감이 바늘처럼 심장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참 견디기 힘듭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뉴스를 지켜봐야 하지만, 힘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뉴스 아래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지옥입니다. 저 또한 딸과 아들을 둔 아비인 때문입니다. 눈시울에 물기가 차 부옇게 흐려질 때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봅니다. 맥없는 걸음을 옮기며 애꿎은 담배만 허공으로 태워 봅니...

    2014.04.1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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