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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노동자에게 진 빚
새해 벽두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20㎞ 떨어진 공단지역에선 무장한 군대가 2주째 파업 중인 의류노동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전체 60만여명에 달하는 캄보디아 의류노동자 중 30만명이 이 파업에 참가해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최저임금을 두배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캄보디아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최소 5명의 노동자들이 죽었고, 수백여명이 다쳤다.한데 며칠 뒤 경악스러울 만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졌다. 약진통상 등 한국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캄보디아의류생산자협회가 이 의류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면서 임금이 인상될 경우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협박을 해왔으며, 그것이 이번 무력진압의 큰 원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미 언론 ‘글로벌포스트’는 “캄보디아 군대의 시위 진압에 한국이 배후조종했다”는 제목으로 캄보디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나선 이유를 심층보도하기도 했다.... -
자기계발의 세계에 ‘우리’는 없다
최근에 어디서 본 인터넷 명언 중에 이런 게 있다.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이 말은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오랜 시간 학교에서 함께 부대끼며 생각해 온 오찬호씨가 고민을 엮어 내놓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아직 내가 이십대였던 때,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왔다. 또래 친구들과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한참 이야기할 때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책 제목에 일단 불쾌감을 표시하느라 우리가 장차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는 고민에 대한 동참도 거절했다. 그들의 말은 이랬다. 나는 88만원 받지 않을 거야! 물론 나는 네가 88만원보다 더 버는 문제와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나는 그렇게 안 살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살게 될 애들은 어떡하느냐고 묻는 것도 무안했다. 어떤 사회현상에도 무조건 “나는…”이라는 ... -
북한은 누구의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모처럼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이미 우리는 그의 기자회견뿐 아니라 질의응답까지 모두 대본대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가 내놓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국정 방향 및 현 정권의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고.통일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반도의 통일은 경제적 재도약의 기회라고,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친히 ‘대박’이라는 서민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우리에게 강렬한 지침을 선사하신 것이다. 대통령 가사라대, 통일은 대박이다.이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난관에 부딪힌 것은 값싼 노동력이나 천연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경제란 어떤 단위 내에서 벌어지는 생산과 소비의 총합이다. 한국은 현재 생산력에 비해 내수시장의 소비력이 부족한 나라다. 값싼 노동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도... -
세금과 메밀묵
2014년 새해가 밝았다. 직장인에게 1월은 연봉협상과 연말정산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매년 이때쯤 연말정산을 준비할 때마다 ‘국세청은 이 모든 정보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개인들에게 다시 서류를 내놓으라고 하는 걸까’ 궁금해지곤 한다. 국세청에서 제공하는 간소화서비스로 카드명세서, 현금영수증, 기부금영수증, 의료비명세서, 보험내역서 등을 열심히 출력하고, 내역서를 적어 내려가다보면 멈칫, 하는 순간이 종종 생긴다. 고작(?) 더 낸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나의 1년 지출 내역을 정부에 이렇게 시시콜콜 알려줘도 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물론 요 며칠 사이 세금이 쓰이는 용도를 보면, 이런 절차를 거쳐서라도 내가 낸 돈을 모두 돌려받고 싶은 심정이긴 하다.파업을 한 노동자들을 잡겠다고 언론사 건물의 문을 뜯고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개인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내역을 압수수색해 들여다보는 공권력의 행태는 점입가경이다. “그런 데 쓰라고 세금 낸 거 아니다”... -
공공철도는 줄 수 없다
12월22일 아침 나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1층 로비에 있었다. 박근혜 정권은 5500여명에 달하는 경찰 병력을 동원해 경향신문사 사옥 일대를 포위한 채 사상 초유의 탄압을 저질렀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을 침탈한 것이다. 침탈 당시 체포 대상자인 철도노조 지도부 9명이 건물 안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다는 경찰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경향신문사 건물 정문 유리문과 각종 시설물은 무자비하게 부서졌다. 뿐만 아니라 건물 내에 있던 많은 시민과 철도 노동자들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연행되었고, 심지어 커피믹스 등 비품까지 훔치려 했다. 상식과 도를 넘어선 것이다.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이 체포영장 집행이 정당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곧바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상태에서 체포영장만으로 이런 무자비한 짓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이런 엉뚱한 변명을 믿을 바보는 아무도 없다. 이날 경찰의 폭력적... -
‘학대하는 어머니’ 박근혜·최연혜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진보 진영은 국가를 너그러운 부모에, 보수 진영은 엄격한 아버지에 비유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약자에게 너그러운 복지 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후자는 엄격한 법 집행과 질서에 방점을 둔다는 것이다. 과연 이 이론이 맞는 것인지, 무려 7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직위해제시켜 놓은 후,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은 파업 노동자들을 두고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위해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철도파업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곰곰이 짚어보면, 박근혜 정부와 국토교통부, 최연혜 사장의 태도는 ‘엄격한 아버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엄격한 아버지가 엄격한 것은 자식을 사랑하고 더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 국토부의 입김하에 철도공사가 수행하는 법인 분리는 철도공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만성 적자를 더욱 증가하게 만들 뿐이다. 철도파업에 대응하는 정부는 눈물을 머금고 회초리를 든 엄격한 어... -
귀차니즘과 ‘운동맹’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육상 계주선수로 뛰었고, 크게 애쓰지 않아도 체력장 등급이 꽤 높게 나왔으며, 3단 뜀틀이나 몸을 뒤틀어 넘는 높이뛰기도 제법 했다. 손목으로 배구공을 서브하는 스킬도 곧잘 익혀 따라하는 편이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몸을 움직여 어떤 목표를 뛰어넘었을 때의 그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으며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든 내가 운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다시 그때처럼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그런데 땡, 전혀 아니었다. 착각이 깨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회사 체육대회 날 이어달리기 순서였다. ‘보란 듯이 빨리 들어오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자신있게 뛰기 시작했는데 어라?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젖 먹은 힘까지 짜내어 뛰어도 내가 앞서나가고 있지 않았다. 여자들끼리 뛰는 중이었는데도 생각과 달리 격차는 전혀 ... -
소비자는 어떻게 ‘봉’이 되었나
최근 삼성전자 등 대형 가전업체들이 미국발 ‘블랙 프라이데이’ 역풍을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 최대 쇼핑시즌이 개막되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해외직구족’(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직접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품목이 TV 등 대형 가전제품으로 확대되면서, 이들 제품의 국내 판매가격에 ‘폭리’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통해 삼성전자 TV를 해외에서 구입하면 국내보다 최대 100만원가량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내 소비자가 봉이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시장 규모와 유통구조의 차이” 때문이라며 애써 국내 소비자 차별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유통업체가 가격결정을 하는 시스템이라 해도, 지금 같은 가격 차는 과도하다.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알기 때문에 국내에서만 이런 비싼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걷히지 않는 이유다.한데 블랙 프라이데이가 아니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몇 년 ... -
군대 이야기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전해들었다. 입대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던, 논산훈련소를 거쳐 의정부에 있는 KTA(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훈련받고 있던 때의 일이었다. 몇십 미터 앞에 축소 표적지를 깔아두고 M16A를 쏘아대고 있을 무렵, 훈련소의 교관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DMB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꺼냈고, TV를 틀었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속보를 나와 다른 훈련병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했다고. 우리도 당장 역습을 해야지, ‘의도 파악’은 대체 왜 하고 있느냐고. 그는 중사 계급의 직업 군인이었다.당시 교육받은 바에 따르면, 만약 그대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훈련소의 병력은 일단 전부 어딘가로 옮기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긴긴 기간을 무조건 현역병으로 군에 복무를 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끔찍한 결과를 바라지 않았기에, 하염없이 북한의 ‘의도 파악’을 하며 즉각 보... -
다른 게 뭐 어때서
여기 하나의 테스트(?)가 있다. 일단 종이 한 장을 준비해 펜을 든다. 그리고 자기 인생에서 소중하게 만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 열 명의 이름을 써본다. 열 명을 다 썼다면 자신이 쓴 이름들을 살펴보고 다음 질문에 몇 개나 대답할 수 있는지 체크해보자. 당신이 이름을 쓴 사람들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당신과 다른 수준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있는지?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은? 성(性)적 지향성이 다른 사람은? 국적이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인권활동가 류은숙의 책 <사람인 까닭에>에 나오는 테스트인데, 내가 동그라미 칠 수 있는 이름은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1개를 넘지 않았다.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거나 꾸준히 만나는 사람 중에 소수자는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해 새로운 일을 맡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기도 했다. 통계상으로는 분명 내가 사는 도시에도 꽤 많은 수의 이주자들이 살고 있다는데, 정작 나는 전혀 아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