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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수능 위주 입시 단순화를
어떤 제도든 애초의 설립 취지를 무색케 하는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사회학 개념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R Merton)이 만든 용어인 ‘잠재적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이 그 개념의 확실한 예가 될 수 있다. ‘사배자’ 전형은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에게도 국제중·외고·자사고 등에서 이른바 수월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2009년에 도입됐다. 그런데 이 제도가 애초의 목적과는 전혀 달리 작동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사배자’ 전형이 안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 전형으로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저소득층 자녀들이 정작 이 제도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탁 터놓고 이야기해서, 저소득층 자녀들 입에서 “그런 학교에 들어가면 뭐하겠나”란 탄식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유층 자녀들과의 확연한 차이로 ... -
친노와 민주당의 운명
안철수가 돌아오니 민주당이 예민해졌다. ‘넘버스리’로 전락할 판이다. 민주당은 안철수의 신당 창당에 대해 ‘악마의 유혹’ ‘구태’, 심지어는 ‘변절’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충고인지 경고인지 헷갈리는데 협박 같기도 하다. 오만하다.민주당은 뭘 믿고 그렇게 오만한가. 민주당의 오만은 그 지지기반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호남, 그리고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한 사람들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기간 수도권 민심은 안철수로 왕창 기울었고 호남도 안철수 쪽에서 툭 건드리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질 상황이었다.그래서 민주당은 안철수에게 자꾸 들어오라고 한다. 그러나 쇄신 없는 민주당에 안철수가 들어갈 리 만무하다. 사실 민주당의 쇄신은 안철수뿐 아니라 국민들도 원하는 것이었다. 따지고보면 안철수현상도 지리멸렬한 민주당 때문이 아니었나. 그러나 대선 이후 석 달이 다 되도록 쇄신은커녕 반성도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민주당은 전당대회 룰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피터... -
유럽판 쌍용차 사태
유럽 자동차산업이 심상치 않다. 곳곳에서 정리해고와 공장폐쇄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우선 포드가 영국 사우샘프턴과 벨기에 젠크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7000명의 일자리가 날아간다. 벨기에는 GM이 앤트워프의 공장을 폐쇄한 지 2년 만에 또 날벼락을 맞았다.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피아트는 시칠리아 공장에 이어 트럭 자회사 5개 공장을 폐쇄한다.지난달 28일, 독일 금속노조와 지루한 협상 끝에 GM은 독일의 보쿰 공장 폐쇄를 공식화했다. 3300여명이 일하는 이 공장이 폐쇄되면 납품하는 부품사 4만명의 일자리도 위험해진다. 독일에서 완성차공장이 폐쇄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니, 이 사건이 주는 정신적 충격은 헤아리기 힘들다.독일과 함께 유럽 경제를 이끄는 프랑스 역시 쑥대밭이다. 푸조-시트로앵이 파리 인근의 오네-수부아 공장을 폐쇄하고 프랑스 전역에서 80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15% 지분을 갖고 있는 르노자동차 역시 7500명을 감원... -
청와대·야당의 소탐대실
소탐대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이 말부터 떠오른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비타협적 태도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전제로 하는 것이 정치다. 그렇다면 정치는 타협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원안을 고수하는 건 원칙과 소신이 아니라 타협에 대한 거부, 정치에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다.주지하듯이 대통령제는 대통령(행정부)과 의회(입법부)가 모두 국민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이중적 정통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양 기관 간의 경쟁과 견제는 불가피하다. 역대 대통령은 이 경쟁과 견제 문제를 대개 다수 여당을 거수기로 만들어 의회를 무력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지금 박 대통령도 이런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킹 마인드’ 때문에 여당이 길들여지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 리더십을 보인다면 새누리당이 야당과 타협할 공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
부적격한 장관의 전력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전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필자는 그가 범인(凡人)들은 이룰 수 없는 대단한 성취를 미국에서 이뤘다는 점에서 분명코 입지전적 인물이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음의 이유들 때문에 대한민국의 장관에 적격한 인물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첫째, 아무리 미국 국적 포기를 택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 절차가 남아있고, 현재 형식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중국적인 자를 대한민국의 주요 중앙부처 수장으로 기용한다는 것은 문제다. 우리는 2년 전, 공무원법을 개정해 외국인도 별정직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대통령령 제24124호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보안·기밀에 관한 분야와 대통령 및 국무총리 등 국가 중요 인사의 국정 수행과 보좌에 관한 분야에는 이중국적자의 임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박근혜 정부가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장 존재감 있는 부처다. 그만큼 국가... -
민주당, 이제 누가 믿나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평론가인 이브 미쇼는 타락한 현대미술을 개탄하며 이런 말을 했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절명케 해야 한다’고. 민주당이 요즘 동네북이 됐다. 오징어마냥 자근자근 씹히기도 하고 누구 표현대로 민주당 욕하는 게 국민오락이 됐다고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요즘 일만은 아니다. 얼마나 됐을까. 열린우리당부터 시작해 적어도 5년은 됐다. 지난 세월 우리가 민주당에 실망하면서도 표를 준 이유는 간단하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무능한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기들끼리 싸웠다. 밥그릇 가지고 말이다. 탄식과 절망을 삼키며 꾸짖은 지 5년이면 이제 결론을 내야 한다.흔히들 ‘죽어야 산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제 민주당은 죽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의 상태는 고쳐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민주당이 죽기를 거부한다면 국민이 죽여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쇄신이나 혁신을 떠들어대지... -
‘초라한’ 소망
누군가 일을 그르쳤을 때,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 잘못을 감싸주느라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그래서, 열심이라서 그런 만큼 일을 더 심각하게 그르칠 수도 있다. 가만히나 있으면 어쩐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면 성과주의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앞에 엄청난 증거가 있다. 그 ‘열심’ 덕분에 4대강은 만신창이가 됐다. 허공으로 날려버린 수많은 공약들처럼, 4대강에 대해서도 마냥 게으름을 피워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을 그야말로 ‘열심’히도 파헤쳐 놓았다.그리고 그 강줄기 옆으로 나란히 자전거길까지 닦았다. 강물은 썩어가고 강의 생명들도 죽어가는데, 그런 풍광을 감상하며 달리라고 길까지 닦아놓은 것이다. 죽을 만큼 패놓고 어여쁘게 꽃단장시켜준다는 할리우드 영화급 변태남의 행각을 닮았다. 그런 길이 이제 곧 삼천리가 되게 생겼다. 아라, 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 자전거길을 합한 이른바 국토 종주 자전거길만 ... -
사람 사이에, 사람으로 묻기 위하여
사람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사람일 수 있다. 산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죽은’ 사람도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억될 때에만 비로소 ‘사람’이 된다. 사람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 놓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문은 만남을 통해 죽은 이의 부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며, 또한 그를 산 사람들 사이에 되살리는 일이다. 애도는 죽은 이(亡者)가 망자(忘者)가 될 때까지, 즉 잊힌 이가 될 때까지 그를 기억하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이다. 그를 기억하는 살아남은 자들이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망자를 그들 사이에 묻는 것이다.그런데 지금 여기, 기억되기를 거부당한 망자가 있다. 한진중공업 최강서씨의 시신이다. 그는 2011년 한진중공업의 해고 노동자였다. 309일간의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국회 청문회를 통해 가까스로 해고 노동자들은 2012년 11월 일터로 돌아왔다. 하지만 복직과 동시에 그들을 기다리... -
‘박근혜 정부’가 정신차려야 하는 까닭
생각보다 빨리 박근혜 정부가 위기를 자초했다. 아직 대통령에 정식으로 취임도 안 했기에 박근혜 정부라 이름 부르기에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이미 활동하고 있다. 인수위를 두고 이런 평가를 하는 게 아니다. 다음 정부의 골간을 구성할 국무총리 등 주요 자리에 대한 인선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박근혜 정부가 첫 스텝부터 꼬이고 분위기가 흐트러져 걱정이다.왜 이럴까?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른바 ‘박근혜 스타일’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박근혜 당선인은 보안을 중시하고 소통을 멀리한다. 박 당선인에게 인사란 임명권자가 배타적 재량권을 갖고 누군가를 어떤 자리에 임명하는 권한 행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인사는 누군가의 권한이기 이전에 국민을 대표하는 자가 국민 여론에 반응하고 책임지는 공적 행위다. 대통령이 그 주권자인 국민에게 책임지는 기제가 바로 인사와 정책인데, 그 인사를 대통령의 배타적 재량행위로 보는 인식은 민주주의에... -
쫓겨나는 가난한 노동자들
“모두 해고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앨 모양입니다.” 연말연시가 되자 계약해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한 공공부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보건복지’ 분야에서 곡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서 보건복지 분야 정보시스템을 통합 운영하는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최근 계약직 상담원 42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기간 만료가 이유일 뿐이다. 일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또다시 1~2년짜리 계약직을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칠곡의 경북대병원에서는 노사합의로 상시 업무인 진료보조를 맡는 사람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정원 확보 과정을 거쳐 정규직화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병원 측은 2년이 도래하는 비정규직 6명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신규 채용된 비정규직으로 대체했다. 해고자들은 천막농성을 시작했다.취약계층을 방문해 상담과 진료를 하는 방문건강관리사. 2007년 제도 시행 후 전국에서 2700명이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