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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의 악순환, 영양에서 끊자
경북 영양군으로 가는 길은 멀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이 걸린다. 그나마 하루에 5번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양군을 ‘오지’라고 부른다. 서울의 1.4배 면적에 1만8000여명의 인구가 사는 곳이다. 그리고 영양읍내에서 다시 차를 타고 20분을 더 가면 수비면이 나온다. 그곳에 장파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산골짜기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런데 이 조용한 골짜기의 평화가 깨졌다. 장파천을 막아 높이 76미터, 길이 480미터의 거대한 댐을 짓겠다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영양댐’ 사업이다.아마 누군가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영양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작은 지역에서는 ‘제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영양군수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거리가 필요한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은 아마 ‘이 시골에서 감히 누가 우리 일에 반대... -
고령화시대 진보의 연금정치
몇 년간 잠잠했던 연금 논란이 다시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될 듯하다. 지금까지는 ‘급여’가 핵심 논점이었다면 이젠 ‘재정’이다. 노인이 많아지면 기초연금 재원도 늘어야 하고, 국민연금기금 소진도 이전보다는 절박한 주제가 될 것이다. 현재 가입자들이 지닌 국민연금 불신도 급여 수준보다는 미래 지급가능성에서 비롯된다. 국민연금이 보험료에 비해 후한 급여를 주는 제도임을 알아가고 있지만 문제는 재정 불안이다. 기금이 소진될 수 있다는데, 나중에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다. 국민연금기금 사용에 가입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다.누가 이 연금재정 정치를 주도할까? 난 진보쪽을 우려한다. 진보는 두터운 급여를 강조하지만 재정 방안이나 후세대 부담에 대해선 대체로 무심하다. 이번 기초연금 논란에서도 진보진영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이 국민연금기금 사용에 동조하고 나섰다. 현재 많은 노인이 빈곤한데 대규모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는 게 이치에 맞지 않으며, 후세대 부담... -
힘 없는 이들의 연대, 최소한의 희망
지난 2월6일 아침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의 풍경은 참혹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겨울비를 맞으며 밤을 지샌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비에 젖은 상복을 입은 사람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었다.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하던 와중에 경찰이 깔개와 비닐, 침낭조차 빼앗아간 것이다. 그래서 추위 속에서 날밤을 샜던 것이다.지난 4년을 절망 속에 거리를 헤매온 노동자들은 그렇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24명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고, 15만4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 올라가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인수위를 찾아온 노동자들의 가슴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쌍용자동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며칠 전 들른 국회 앞에서는 8년 전 해고당한 공무원 노동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만나보면 모두들 동네 호프집에서 만날 법한 사람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고,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난 대선 이후에 세상을 떠난 ... -
엄벌주의의 속내
교과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전수조사한 초·중·고생들의 정신건강 결과가 8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됐다. 668만명 중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학생이 105만명, 자살충동 등 고위험군이 9만7000명에 달했다. 암담한 현실이다. 교과부가 학생 정신건강 전수조사를 실시한 것은 학교폭력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위해서였다. 학생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길이 궁극적으로 학교폭력의 근본적 대책이라는 생각으로 실태조사를 하게 된 거다. 전수조사의 방법과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지만, 적어도 학교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정신건강 개선으로 전제한 것은 올바른 방향 설정으로 봐야 할 것 같다.그런데 같은 날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로 2012년 학교폭력으로 구속된 학생수가 2011년의 3배라는 사실이 보도됐다. 교과부가 학생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사이, 경찰은 부지런히 폭력 학생들을 구속한 게다.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학교폭력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조가 계도와 정신건강 개... -
기초노령연금 공약, 국민은 속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두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한 탓이다. 기초노령연금은 노후복지의 핵심이지만 대상자가 많고 앞으로 늘어날 예정이어서 필요 재정 규모가 막대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20만원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은 이유도 재원을 마련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어떤가? 박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으로 진두지휘한 지난 총선에서 기초노령연금 인상은 새누리당 공약집에 없었다. 야권의 복지 공약을 재정을 감안하지 않은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던 때라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방안을 내걸 수 없었다.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겠다는 원칙이 적용된 셈이다.대선은 달랐다. 대통령 선거 한달을 앞두고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당선인의 입에서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이 나왔다. 야권 단일화 움직임으로 절박해진 상황에서 600만 노인표에 주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하는 공약이었다. 올해부터 바로 ... -
국민의 행복을 바란다면
법정 스님이 살아계실 때 ‘행복’을 주제로 한 말씀이 있다. 법정 스님은 법문을 하면서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프랑스의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어느 날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의 비결을 찾아 여행한다는 것이 내용이다.법정 스님은 이 책에 나오는 행복비결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채소를 키우고 흙을 가까이 하면서 사는 것. 다른 사람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 아주 소박한 얘기이지만, 행복의 본질을 꿰뚫는 얘기이기도 하다.그리고 법정 스님은 마지막으로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의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임을 강조한다. 행복은 자식들 키워 결혼시킨 후, 시골에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한 다음에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하며,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
성매매 논쟁 2라운드
자발적 성매매에 대한 형사처벌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서울북부지법이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한 여성의 성매매특별법 21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받아들인 게 발단이다. 이 조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여성은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인 간 성행위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이 수용한 부분도 여기까지다. 포주의 알선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성매매의 전반적 금지는 논외이다. 하지만 자발적 성매매에 대한 인정은 다른 조항에 논리적 문제를 야기해 불법화 자체의 법적 근간을 뒤흔들 소지도 있다.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어떻든 폭넓은 사회적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성매매는 철학적 관점과 정치적 입장, 윤리적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판단이 가능한 사안이다. 한 순간의 법적 결정으로 사회적 통념을 바꿔놓기도, 법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성매... -
박근혜 시대 복지국가 운동 제안
새해가 밝았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부풀기보다는 허전함이 맴돈다. 총선, 대선을 거치면 올해부터 복지국가 길이 열리리라 기대했던 탓이다. 주위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인 듯하다. 어쩌랴. 이제 몇 해 더 치열하게 준비하자 마음을 다듬고 있다. 작년에 무엇을 놓쳤고, 앞으로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복지운동의 눈으로 보면 총선과 대선은 부끄러운 선거였다. 시민들의 복지 열망은 넘쳤으나 정작 복지는 쟁점이 되지 못했다. 복지민심을 열매로 영글게 할 복지정치가 빈약했다. 우선 핵심 의제가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보편복지·선별복지처럼 복지철학과 정책 차이를 보여줄 쟁점이 드러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는 박근혜 후보의 차별화 해소전략은 효과를 발휘한 반면 복지 원조격인 민주, 진보진영의 의제 기획은 무기력했다.복지 재정방안도 불명확했다. 야권은 강한 복지 공약을 주창하면서도 그에 따른 재정방안을 제대로... -
대선 멘붕 탈출법
대선 결과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들은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와 농성장에 있던 분들입니다. 우선 신고리 원전에서 출발하는 초고압 송전탑으로 인해 몇 년째 고통을 받고 있는 밀양과 청도의 어르신들이 생각났습니다. 마을과 땅, 삶을 지키기 위해 겨울에 산을 오르내리며 공사를 막고, 칠십 평생에 처음으로 집회와 농성이라는 것을 해야 했던 어르신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실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제주 강정마을 주민들도 생각났습니다. 마을 주민의 10분의 1도 안되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모여 유치 신청을 한 이후, 5년8개월 동안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매달려왔던 분들입니다.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그 때문에 생업도 포기하고 반대운동에 매달려 왔습니다. 벌금폭탄에 연행과 구속으로 평화롭던 삶이 파탄났습니다. 이 분들의 심정은 또 어떨지….그리고 계속... -
투표 대 로또
18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판세는 누가 이기든 초박빙이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 선거보다 정파의 결집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의 투표율은 63%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63점이면 D학점, 70점 이상이면 C학점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이보단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70%를 넘어설진 미지수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민들의 참여지수는 C와 D를 오락가락하고 있다.이번 대선은 일찌감치 투표율이 관건이란 전망이 나왔고,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면서 20대의 투표율이 태풍의 눈이 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젊은층의 투표율은 낮다. 17대 대선의 경우 50대의 투표율이 70.6%인데 20대 후반은 42.9%에 불과했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보다 자기 지분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권리주장이 약하다는 얘기다. 부자보다 서민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떻게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