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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
“새해가 두렵다.” 지난번 이 면에 썼던 칼럼의 제목이다. 연말을 장식한 정윤회 파동, 땅콩 회항,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의 청탁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라는 네 가지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정치로부터 재벌, 제1야당과 한국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각각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만 진짜 문제는 새해에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라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정윤회 파동에 대한 대응을 볼 때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바뀔 것 같지 않고 새정치연합은 더더욱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글이 나간 뒤 진행된 현실은 이 우려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새정치연합과 한국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는 2월 전당대회가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간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전후 좌파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안토니오 그람시는 일찍이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 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한국정치가 ... -
새해가 두렵다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일 년 전, 2013년을 돌아보며 정치학자로서 박근혜 정부의 원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화장발’이라고 쓴 바 있다. 즉 경제민주화로 상징되는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개혁적 보수주의자의 모습은 화장발에 불과하고 화장을 지운 박 대통령의 ‘생얼’은 너무도 퇴행적이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자니 지나온 나날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 어느 것보다도 아득하고 가슴에 저며오는 것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다. 꽃 같은 어린 생명들을 수백명이나 잃은 이 비극은 인간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윤만 추구하는 왜곡된 가치관으로부터 무사안일과 유착에 의해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불행히도 변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통령의 불통과 야당의 무능이 자리 잡고 있다. 박 대통령의 불통은 그 무엇보다도 연이은 인사 실패로 박 대통령이 약속한 ... -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대한민국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 나는 해방 60주년에 <해방 60년의 한국정치>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문에서 한국현대사를 이처럼 요약한 바 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란 이 땅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유엔인권조약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이다. 80년대 ‘제3의 물결’이라는 범지구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정리한 세계정치학계의 권위 있는 집단연구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그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압살해 왔다. 그 결과 한국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라는 ‘자유민주주의의 비극’... -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님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님, 우리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치권에 난리가 났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인구가 3.5배까지 차이가 나는 현 선거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인구격차를 2 대 1 이내로 줄이라는 결정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결정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과거의 전국구제도를 위헌이라고 판결하여 현재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만든 것에 이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은 보통평등선거입니다. 사실 근대민주주의가 시작된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투표권은 남자 유산자들에게만 주어졌고 보통평등선거가 실현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자유주의자들이 “인구의 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통선거권을 도입할 경우 이들이 다수결로 사유재산제를 폐지시켜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걱... -
10월은 아직도 잔인한 달인가
“4월은 잔인한 달.” 잘 알려져 있듯이,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도입부이다. 만물이 살아나는 4월을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4월이 아니라 5월과 6월이 잔인한 달이다. 5월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5·16쿠데타와 비극적인 1980년 광주학살이, 6월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월도 잔인한 달에 추가할 만하다. 전후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던 유신이 선포된 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의 잔인한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분개하면서 검찰이 인터넷 업체들과 협조해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대대적인 사이버 망명이 일어나는가 하면 ‘신유신’, ‘사이버 유신’에 대한 우려가 야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유신’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에 쓴소리를 토해낸다. 이들은 “진보를 표방하는 야당이 좀처럼 앞으... -
명량의 길, 선조의 길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영화 <명량>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하자 감옥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해군을 없애라는 선조의 명령에 대해 명량대첩을 준비하며 올린 답변이다. 불굴의 의지로 무장하고 배수진을 친 장수의 심정을 잘 보여준 말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과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써 임진왜란을 끝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풍전등화에 놓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가 첫 외부행사로 현충원을 방문했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방명록에 바로 이 문구를 한자로 남겼다고 한다. 새정치연합의 사활을 결정할 비대위원장을 맡은 문 위원장의 비장한 각오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적절한 구절이다. 그러나 실제 새정치연합이 현재 취하고 있는 길이 과연 이순신이 걸어갔던 ‘명량의 길’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아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명량의 길’이 아니라 ‘선조의 길’, ‘원균의 길’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
새정치연합은 어디로
‘비상함 없는 비상대책위.’ 재·보궐선거 참패 후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를 보면서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점이다. 패배에 익숙해져 습관적인 비대위를 꾸려나가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에 박영선 원내대표가 겸임하고 있는 비대위원장에 외부인사를 영입해 당 해체 차원의 발본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세월호 협상 과정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박영선 위원장이 외부인사 영입에 나섰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입 대상자들은 고사를 하고 대안으로 채택한 안경환, 이상돈이라는 ‘진보·보수 투톱 공동위원장 체제’가 당내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박 위원장은 리더십에 또 한 차례 상처를 입었고 당은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이상돈 카드가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나쁜 카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을 어떻게 당의 얼굴로 모셔올 수 있느냐고 반발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 ... -
‘비상함’ 없는 비대위
세월호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고려할 때 질 수 없는 선거를 새정치민주연합은 또다시 죽을 쑤고 말았다. 지난 칼럼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7월21일자)에서 지적했듯이 당 지도부가 현 정부의 인사 이상으로 한심한 공천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 칼럼에서 비판했듯이 거물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지역구와 전혀 연고도 없는 손학규, 김두관을 공천했다가 지역일꾼론을 내세운 새누리당의 토박이 신인들에게 전패한 것은 지도부가 얼마나 민심을 모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언론이 지적했듯이 이 모두가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특정 정치인을 배제하려는 정략에서 시작했다니 한심하다. 전혀 연고도 없는 지역에 손학규, 김두관을 공천하면서 비슷한 중진인 정동영, 천정배에게는 왜 공천을 주지 않았는가? 주목할 것은 새누리당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당 대표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과 다르게 정파주의를 넘어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김무성 당 대표 등 ... -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
“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잘못된 사람만 고르기도 어려운 선택.”지난 칼럼에서 나는 국민들에게 절망감만 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행태가 정부와 다르지 않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인사’는 공천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7·30 재·보궐선거의 공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 큰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야 현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쳐주자. 문제는 현 정부의 인사를 비판해왔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봐야 별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국회의원 공천도 이 모양인데, 집권한다고 갑자기 인사를 잘하게 될 것인가?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번 공천으로 선거의 지역구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경기지사를 지낸 사람을 연고도... -
‘틀린 답’만 골라 찍는 대통령
한국정치를 연구하는 한국정치연구자로서 안타까운 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주 좋은 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뛰어난 소통능력 등 어느 대통령도 가지지 못한 탁월한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 등으로 불필요한 정쟁만 불러일으킨 측면이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공사와 중앙차선제 도입이 보여주듯이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끊임없이 만나 설득하여 엄청난 잡음이 일어날 문제를 별 잡음 없이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이 같은 ‘소통의 정치인’ 이명박은 사라지고 불도저식 현대건설 사장 이명박만 나타나고 말았다.박근혜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이 가진 많은 장점 중의 하나는 품격이다. 어려서부터 대통령의 딸로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박 대통령은 한국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