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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보리밥의 진실
건강을 위해 우리 밥상에서 제일 먼저 퇴출해야 할 1순위는 백미와 고기다. 흰밥과 고기는 소화력이 떨어지는 몸 약한 사람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건강한 사람이 계속해서 먹을 음식은 아니다. 부드럽고 달고 기름지고 소화 잘되는 음식을 장복하는 건 당뇨, 고혈압에 좋을 리가 없다. 이런 음식은 산성이라 뼈의 칼슘을 빼내 중화시키기 때문에 골다공증에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미와 고기를 좋아한다. 옛날 임금이나 양반들이 흰쌀밥에 고기를 먹으니 당연히 제일 좋은 음식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임금들이 오래 살지 못한 까닭은 그런 음식을 늘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논에 쌀과 보리를 이모작했던 윤작은 흙을 살리는 훌륭한 농법이었다. 저번 글에서 소개했듯 벼도 토양에 해를 주지 않지만 보리는 토양을 더 좋게 해주는 곡식이다. 게다가 논둑에 심어 먹었던 콩은 밭고기라 할 정도로 단백질도 풍부하고 흙에 거름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곡식이다.나는 꽁보리밥의 의미를 이렇게 논에 심어 먹던... -
통일벼의 이면
박정희 대통령 때 육종한 통일벼는 기적의 쌀이라고 했다. 기존 재래종자에 비해 생산량이 두 배 가까이 되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국민의 굶주림을 해결해주었다고 찬사를 받았다. 그렇지만 이는 일면의 진실일 뿐이다.통일벼는 재래종자에 비해 모내기를 한 달 이상 앞당겨야 한다. 이 점이 많은 문제를 낳았다. 우선 보리와 이모작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보리를 수확한 후 통일벼 모를 내려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가에선 통일벼를 심지 않으려 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일벼 보급은 성공(?)했지만 그 이후 우리 논에선 보리가 사라졌다. 통일벼의 ‘놀라운 생산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통일벼는 300평 논에서 500㎏이 생산된다. 재래 벼는 잘해야 300㎏이 생산된다. 하지만 이모작을 통해 보리를 250㎏ 생산할 수 있으니 통일벼를 기적의 쌀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토양 개량 효과가 뛰어난 보리 재배를 못하게 되니 간접적인 효과까지 고려하면 찬사만 할 일이 아니다... -
밀의 변명
나는 밀농사를 12년째 짓고 있지만 사실 밀의 발견이야말로 인류의 발견 중 매우 불행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전쟁도 제일 잘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을 제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선 밀은 빵을 만들어 먹기가 좋고 맛있다. 밀은 탈곡을 하면 저절로 왕겨가 벗겨져 나온다. 통밀이 그대로 나와 정미할 필요가 없다. 그 통밀을 돌로 갈아 밀가루를 만들면 발효가 되어 절로 빵이 된다. 쌀·보리·귀리 같은 곡식들은 왕겨 껍질을 쓰고 있어 정미기가 없던 고대에는 불에 껍질을 살짝 그을려 가루를 만들었는데 그러면 발효가 되지 않아 빵을 만들 수 없다. 죽이나 끓여 먹을밖에. 빵은 저장성과 이동성이 매우 뛰어난 음식이어서 전투음식으로 최고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밥은 금방 쉬고,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없다. 전투음식으로 최악이다. 밀 농사지역은 농한기가 여름인 데다가 초원지대를 이뤄 전투하기 안성맞춤이다. 반면 벼농사는 겨... -
농사의 끝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눈이 쏟아지는 길을 차 몰고 나섰다가 5분 거리를 빠져나오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겨울엔 돌아다니지 말고 겨울잠이나 자는 게 최상책이라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분명 대설주의보는 인간들에게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자숙하며 지내라는 하늘의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시간 낭비, 기름 낭비, 탄소 배출에 스트레스로 기운만 빠지니 자연을 거스른 대가가 너무 크다. 집에 돌아와 마당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려는데 삽살개가 온갖 귀여움을 떠는 모습에 비로소 첫눈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염화칼슘 뿌린 도로의 칙칙한 눈발은 한숨만 나오게 하지만 흙마당과 소나무 잎에 쌓인 순백의 눈발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김장 배추를 수확하면 대개 다듬은 배추 겉잎들을 아무렇게나 밭에다 버리고 간다. 풀 나지 말라고 깔아놓은 덮개용 비닐도 그냥 방치한다. 이런 것들은 벌레와 병균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하는 이불 역할을 한다. 탄저병 걸린 고춧대도 밭에 그대로 둔다. 이듬해 또 탄저병... -
‘겨울잠 알람’ 소설 추위
소설(小雪)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춥다고 했다. 요즘 추위가 바로 소설 추위다. 소설 전 절기인 입동은 겨울이 일어선 때이지만 대체로 따뜻하다. 이번 입동에도 그 전주까지는 춥다가 입동 당일엔 영락없이 따뜻했다. 한로(10월 초순)에 심은 보리가 입동에 두 갈래로 갈라지면 이듬해 풍년을 예고한다고 한다. 그렇게 잘 자란 어린 보리가 소설 추위를 만나면 성장을 멈추고 겨울잠에 들어간다. 소설 추위는 겨울잠 ‘알람’인 셈이다.그런데 보리만 소설 알람으로 겨울잠에 드는 것은 아니다. 뱀, 개구리, 곰 등 모든 생명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겨울잠에 들어간다. 엄동을 이기기 위한 생명의 지혜로운 전략이다. 사람도 소설 즈음이 되면 겨울나기 준비로 분주하다. 바로 김장 담그는 철이 오는 것이다. 겨울을 날 식량을 준비하는 것인데 김장 담그기가 그 절정이다. 김장 전에는 벼를 수확하고 서리가 오는 상강 전에는 각종 장아찌와 묵나물을 준비한다. 나물들은 서리를 맞으면 끓는 물에 데친 듯 ... -
가을 낙엽의 부활
지난 글에서 밀은 벼와 이모작이 안된다고 썼더니 독자 한 분이 연락을 했다. 우리 밀 농사짓는 분들은 거의 다 벼와 이모작을 한다고 해서 확인해봤더니 사실이었다. 대부분 따뜻한 남쪽에서 이모작을 하지만 중부 지방 일부에서도 최근 성공한 사례들이 있었다. 대단한 일이다. 방법은 늦게 심어도 되는 만생종 벼를 재배하거나 수확량이 줄어들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도시에선 가을 낙엽이 늘 골칫거리다. 단풍이 보기는 좋지만 낙엽이 되면 처치 곤란이다. 이 낙엽들은 대부분 석유로 소각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1t 처리하는 데 드는 돈이 15만원에 육박한다. 서울 자치구마다 2000~3000t 발생한다고 하니 단풍 구경 대가치고는 엄청 비싸다. 사실 낙엽은 다시 자기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여름 내내 잎에 축적된 탄소가 땅에 저장된다. 그러나 땅에 저장되지 못한 낙엽은 석유로 태워지고 탄소는 하늘로 돌아간다. 아무리 녹색이 울창하다 해도 콘크리트 위에선 탄소가 순환하지 못한다. ... -
우리밀 농사의 즐거움
어제서야 밀을 심었다. 게으른 농부답게 열흘은 늦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농사를 말한다면 밀과 콩 농사일 것이다. 얼마나 쉽냐 하면 아무 도구 없이 손만 갖고도 가능한 게 바로 콩과 밀 농사다. 그중에서도 밀농사는 더 쉽다. 심을 때 풀도 매지 않는다. 곧 겨울이 와 풀이 대부분 죽는 데다가, 밀 같은 맥류는 다른 풀 씨가 싹트는 걸 방해하는 타감물질(알레로파시·allelopathy)이라는 화학물질을 강력하게 뿜어내기 때문이다. 거름을 적게 주어도 되고, 오줌만 뿌려줘도 잘된다. 수확할 때까지 풀 한번 매주지 않아도 지장이 없다. 수확은 낫으로 해야 수월하겠지만 없으면 손으로 쑥쑥 뽑아도 된다. 잘 말린 다음 탈곡은 태질이라고 해서 절구통을 누여 그 위에다 밀짚단을 내려치면 된다. 그럼 이삭 알곡이 쉽게 털린다. 적당히 딱딱한 받침만 받쳐 털면 된다. 밀은 탈곡하면 바로 왕겨가 벗겨져 통밀이 튀어나와 먹기가 좋다. 벼나 보리 등 대부분 곡식은 왕겨에 싸여있어 도정을... -
겨울 농사
가을 김장농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곧 겨울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밀, 보리, 마늘, 양파같이 겨울을 나는 작물은 가을 작물이 한창 자랄 때 심는다. 겨울 되기 전에 뭐 하나라도 심어놓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밭엘 나가보게 된다. 자라는 게 없으니 일거리도 없지만 괜히 궁금해서 나가보는 것이다. 엄동에 밭에 가 보면 안다. 봄이 얼마나 그립고 고마운지. 그리고 동장군이 물러나고 봄이 되면 내 밭의 흙이 얼마나 고와지고 뽀송해지는지를 느낀다. 겨울의 맹추위가 흙을 곱게 갈아준 것이다. 물 먹은 돌이나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와진다. 흙이 어머니처럼 뭇 생명을 품는 기운을 알면 농부는 수확물보다 흙이 더 소중함을 몸소 깨닫는다. “생태, 환경 관련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제가 척박하기 그지없던 밭에서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바로 생태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농장의 회원 한 분이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흙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한 말이다. ... -
추석 보름달의 기운
추석은 우리 명절 중 유일한 순수 국산이다. 추석이 되면 영락없이 날이 맑다. 대개 보름달이 뜰 때면 비가 적게 오는데 추석엔 유독 날이 맑다. 추석에 비가 오거나 흐린 것은 흉년의 예고다. 우리 명절은 대개 농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추석은 단오, 백중과 함께 가히 벼농사의 명절이라 할 만하다. 단오가 되면 모내기와 함께 본격적인 농번기에 앞서 기운을 내는 잔치를 벌이고, 백중엔 마지막 논 피사리를 끝내고 노동의 시름을 달래는 잔치를 벌인다. 추석에는 벼의 이삭이 잘 익어 풍작이 되기를 바라는 잔치를 연다.양력 절기로는 추분, 음력 명절로는 추석 즈음이면 가뭄이 온다. 이는 벼 이삭이 익는 데 꼭 필요한 날씨다. 요즘은 온난화 등으로 일기가 불순해져 2차 장마 걱정이 커졌다. 원래 여름 장마, 가을 장마라 하여 장마가 두 번 찾아오는 것은 일본 날씨의 특징이다. 일본 열도에서 더운 북태평양 고기압과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 전선을 이루며 오락가락 힘겨루기를 하기 때... -
병해충과의 싸움은 기다림
김장 농사의 주역은 역시 배추다. 그런데 이 배추가 고추만큼 벌레와 병이 많은 작물로 키우기가 꽤 만만치 않다. 청벌레, 잎벌레, 민달팽이 그리고 진딧물이 배추를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습하고 배수가 잘 안되거나 물을 많이 주면 무사마귀병이라는 무서운 병도 찾아온다. 붕소 같은 미량요소가 부족하면 속이 썩는 병도 온다.자급할 정도의 배추를 심는 도시농부라면 직접 손으로 벌레를 잡는 게 제일 확실한 생태적인 방제법이다. 그 외 현미식초를 물로 10배 희석해 뿌려준다든가, 목초액을 200배 희석해 뿌려주는 방법도 있다. 우유, 요쿠르트, 마요네즈 등도 희석해 뿌려주면 농약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벌레 꼴이 보기 싫다고 남몰래 화학살충제를 뿌리면 다음해에 벌레가 더 꼬인다. 살충제가 익충마저 죽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먹을 게 줄더라도 보시한다 여기고 참고 기다리면 이듬해엔 확실히 익충들이 찾아와 해충을 막아준다.생태적인 방제법은 물론 원천적 예방법이다. 화학적인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