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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으로 살 것인가?
옛 선인들 중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호(號)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처한 지역의 이름이나 자연의 이름으로 호를 지었다. 한명회는 그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에서 호를 따왔고, 퇴계 이황은 그가 살던 토계에서 퇴계(退溪)를 따왔다. 율곡 이이는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밤골 마을에서 그 호를 따서 율곡(栗谷)이라 지었으며, 서경덕은 서재가 있던 화담(花潭)에서 호를 따왔다. 허균은 그가 태어난 강릉시 사천면의 교산(蛟山)에서 따서 용이 못된 이무기라는 호를 지었다. 연암(燕巖) 박지원은 가난하게 살았던 황해도 금천현에 있는 연암협에서 따서 호를 지었으며 다산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보낸 다산(茶山)을 호로 택했다.그러한 예를 오늘에도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인 후광리(後廣里)에서 ‘후광’을 따왔다. ‘후광(後廣)’의 뜻 때문이었는지 그는 후에야 널리 알려져 대통령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해 호를 지... -
길이 곧 도서관이다
소크라테스가 길을 걸어가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고, “세상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워즈위스를 찾아온 방문객이 하녀에게 주인의 서재를 보여 달라고 하자 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가 주인님의 책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인님의 서재는 야외입니다.”나 역시 그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무실이 어디인지요” 하고 물으면 “온 나라가 다 사무실이고 도서관이고 일터지요”라고 답한다. 그렇다. 내겐 길이 사무실이고 응접실이고 서재다. 나는 어디를 가건 쉴 때마다 마치 안방에 앉는 것처럼 길에 퍼질러 앉는다. 나와 오랜 시간 우리땅을 함께 걸어온 도반 중에 어떤 이는 쉬어도 서서 쉬기를 원한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 몸이 더 후들거리므로 그냥 서서 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앉아 쉬면서 생각을 정리한다.걸어오면서 귀담아듣지 못한 것, 보았으나 길가 어느 곳에선가 흘려보낸 것, 나는 책장을 넘기듯 그... -
흐르는 강물처럼
어린 시절을 섬진강 발원지 부근 시냇가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내게는 유년 시절부터 강에 대한 그리움이 싹텄다. 그 그리움이 자라서 후에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처음엔 금강을, 그리고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발원지에서 시작해 하구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강의 발원지인 샘에 도착해서 머릿속으로 강을 그려보면 강이 한 그루 우뚝 선 나무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바다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가 여러 갈래의 줄기와 가지를 늘어뜨린다. 그 중, 가장 긴 가지의 끝이 강의 발원지다.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샘을 이룬다. 그 물이 흘러넘쳐 내려가면서 수없이 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인다. 아무리 오염된 지류라도, 아무리 작은 지류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뒤 끌어안고 가며 스스로 정화해 가는 것이 강이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말과 같이 강물은 낮은 곳으로... -
집의 크기보다 생각의 크기를
요즘 TV를 보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집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고대광실이라고도 하고, 초호화주택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 집들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하지만 걱정스레 보일 때도 많다. 많이 살아야 두세 명 사는 집을 저렇게 넓고 크게, 호화롭게 꾸며 놓으면 당장은 살기에 좋을지 몰라도, 그 집이 어느 순간 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음이다. 떠나고 싶어도 그 집이 너무 아까워 집에 매여 사는 것은 아닐까?연산군 시절, 세상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서울 남산에 9만9999칸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주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그 집을 구경하고자 남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그 집을 발견하고선 실망이 컸다. 왜냐하면 그 집이 판서를 지낸 홍귀달의 집인데, 허백당(虛白堂)이란 당호가 붙은 단칸 초막이었기 때문이다. 홍귀달은 그 단칸방에서 9만9999칸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을 다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생각이 사람들의 입... -
이미 물든 종이는…
남원시내 뒤편에 우뚝한 산이 하나 있다. 남원의 진산 교룡산이다. 고즈넉한 산을 천천히 올라가면 선국사라는 절이 있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고향인 경주 일대에서 유학자들이 핍박하자 피신해 8개월여 머문 곳이 이 절의 은적암이다. 동학의 주요 저서를 지은 곳이기도 하다.어느 날 노스님 한 분이 수운이 거처하는 은적암을 찾았다. 스님의 이름은 송월당(松月堂)이었다. 수운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서, 그와 담론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송월당 스님은 수운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선생은 불도(佛道)를 연구하십니까?” 수운이 답하기를, “예, 나는 불도를 좋아합니다”라고 했다.“그러면 어찌하여 중이 되시지 않았소?” “중이 아니고서도 불도를 깨닫는 것이 좋지 않소?” “그러면 유도(儒道)를 좋아하십니까?” “나는 유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유생(儒生)은 아닙니다.” “그러면 선도(仙道)를 좋아합니까?” “선도를... -
세상에 대한 도의
인사청문회만 열린다고 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열어놓고 보면 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위장전입, 자식 군대 안 보내기, 다운계약서는 기본이다. 관청 돈을 자기 돈으로 여기며, 땅투기에 아파트 몇 채 역시 필수이다 보니 청빈함과 능력을 두루 갖춘 이를 나라의 동량으로 세우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다.그래서 조선 중종 때 판서를 지낸 김정국의 삶이 눈길을 끈다. 김정국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 나게 재물을 모으고 있다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속에 청빈하게 살았던 그의 집과 내면 풍경이 오롯하다.“내가 20년을 빈곤하게 사는 동안,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이 각기 두 벌 있었으나 눕고서도 남은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옷이 있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은 밥이 있었소, 이 세 가지 남은 것을 가지고 한세상 편하게 지냈던 것이오. 비록 넓은 집 천 칸과 옥 같은 곡식 만 섬과 비단옷 백 벌을 보아도 썩은 쥐와 같이... -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다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상도덕이 어긋나도 보통 어긋난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부자는 자꾸 부자가 되는데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예전에는 골목에서 작은 슈퍼마켓과 같은 가게만 해도 근근이 살아갔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만든 편의점과 대형마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다보니 문을 닫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대기업들이 빵집을 열어 중소도시 전통 빵집들의 문을 닫게 하지를 않나, 커피 전문점을 차리지 않나, 점입가경이다.어디 그뿐인가. 중소기업이 작은 자본이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세상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서 유통시키면 대기업들이 금세 그 기술을 가로채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일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고, 역사 속에서도 많았다.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과감하게 바로잡았던 사람의 일화가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순리열전’에 실려 있다.노나라에 공의휴라는 박사가 있었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노나라 재... -
내가 소유한 곳만 집이겠는가
길을 걷고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인지라, 나는 여러 사람들과 이틀이나 사흘, 길게는 보름 정도 집을 떠나 있을 때가 잦다. 그때마다 동행자들로부터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선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을 듣곤 한다. 집을 내가 소유하고 내가 사는 곳으로만 여기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하지만 집이 어디 꼭 한정된 울타리로 된, 내가 소유한 곳만 집이던가. 광활한 우주가 다 나의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잠시 거처하거나 머무는 모든 곳이 다 집이 된다.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돈에 의해 만들어진 내 집만이 아니라, 내가 잠시 빌린 남의 집도 내가 거처할 때까지는 내 집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잠깐 머무는 모텔, 내가 하루이틀 묵어가는 리조트나 펜션, 짧은 기간 몸을 누이는 콘도나 별장들이 다 내 집이다.“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는 우리의 정신을 처음 몇 주일 동안은 고통스럽게 한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 -
삼남대로 옆에 웬 ‘신 삼남길’
전남 해남에서 서울 숭례문에 이르는 삼남대로 천리 길을 혼자서 걸었던 때가 2004년 봄이다. 조선시대의 9대 간선로 중 제7로인 삼남대로는 말 그대로 역사의 길이었다. 주요 노정을 서울에서부터 살펴보면 동작나루, 남태령, 과천, 인덕원, 청호역(수원), 진위, 성환역, 천안, 차령고개, 공주, 노성, 은진, 여산을 거쳐 삼례에 닿았다. 삼례에서 전주, 남원,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제6로가 나뉜다. 다시 금구를 지나 태인, 정읍, 갈재, 장성, 나주, 영암 그리고 강진의 성전을 거쳐 해남 이진항이나 관두량에서 제주로 가는 길이었다.삼남대로는 역사 속의 수많은 유배객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이다. 기묘사화의 주역, 김정과 동계 정온, 광해군이 이 길을 거쳐 제주로 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세가 우암 송시열은 그 길목의 정읍에서 최후를 맞았고 추사 김정희도 이 길을 따라 제주로 갔다.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유배를 가다가 나주의 율정점에서... -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배우는 것도 어렵지만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요즘 더욱 그렇다. 매 정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다보니 고래 등쌀에 새우등 터진다고 온통 국민들만 죽을 맛이다.독일의 건축 역사가인 코네리우스 그루티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생각한 것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에 대한 글에서’를 통해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교육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은 뒤에 남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권력과 부귀를 얻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좋은 학교를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우선순위가 되다보니 세상이 난리다. 옛사람들의 교육관과 딴판이다.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진항이 백어를 만나 물어보았다. “자네는 혹시 아버님으로부터 색다른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진항은 공자가 자신의 아들에게만 특별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호기심에서 물었던 것이다. 그 말에 백어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아무것도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