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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길’은 끊겼다
뭘 움켜쥐고 재고 궁리하는 것일까. 열흘 사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보며 두 번 다 고개를 저었다. 떠오른 단어는 ‘찔끔찔끔’이다. 10·25 담화는 최순실을 알고,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의 의견을 묻고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전날 밤 대외비 국정 문건들이 최순실에게 유출돼 결재받듯이 첨삭된 사실이 보도된 것까지만 시인한 녹화방송이었다. 11·4 담화는 한뼘 더 나갔다. 최순실과 왕래가 있었고,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미르·K스포츠 재단을 만들었고, 검찰 조사나 특검도 받아 드러난 잘못은 책임지겠다고 했다. 대통령도 기업도 선의로 했고, ‘특정 개인’의 위법행위가 문제였다고 했다. 기업과 검찰엔 참작하라는 ‘뼈’가 보인다.대통령의 말은 하루도 안돼 허언이 됐다. 청와대 부속실까지 도운 비선의 국정농단은 양파 껍질처럼 계속 까지고, 기업들의 팔과 목을 비튼 증언이 이어졌다. 첫 사과 후 광화문에 켜진 2만개의 촛불은 두 번째 사과 후 20만개로 불어났다. ‘... -
최순실의 나라와 ‘아미죽’
지금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범죄의 몸통이고,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사상 초유의 ‘박근혜 게이트’로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최순실이 검찰에 출석하면서 “국민 여러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뻔뻔함에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최순실은 하야하라!”는 시위 구호가 ‘신정통치’의 장막을 걷어내라는 ‘정언명령’처럼 들리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그런 ‘최순실의 나라’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숨을 거둔 백남기 농민은 영정 속에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는 ‘물대포 살인’을 저지른 경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한 달간 온갖 ‘패륜 행위’를 일삼다 시신 부검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했더군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를 광주 5·18 구묘역에 모실 세 남매의 형언할 수 ... -
뻔뻔함에 대하여
“유신 때나 이랬다.” “유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저항하던 시민이 공권력의 개입 혹은 공격에 의해 숨진다. 1973년 최종길 교수가 숨졌고, 2016년 백남기 농민이 숨졌다.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최 교수 사인을 은폐하고, 박근혜 정권은 유감 표명은 없이 부검만 고집하고 있다.비선(秘線)은 공식 계통보다 강했다. 1975년 고 최태민씨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해, 자신은 총재에 취임하고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최씨에 대한 당시 수사자료에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올해 국정조사에서는 최태민씨 딸 순실씨와 외손녀 정유라씨 이름만 도드라졌다. 재벌 팔을 비틀어 며칠 만에 수백억원을 모아 재단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씨, 그와 친하다는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등의 이름이 곳곳에 등장했다. 최씨 ... -
대주주가 말 안 들으면, 기업 목을 치는가
정부는 다양한 이해를 조정해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주장에 함몰되거나 감정적인 접근으로 판을 깨는 일을 해선 안된다. “팔 하나를 자르겠다는 대주주의 결단이 없었다.” 지난주 국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 중단’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조양호 회장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보이지 않아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대주주가 책임을 지지 않는데 국민의 혈세로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말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선 분명히 해두자. 한진해운 사태의 1차 책임은 경영에 실패한 조 회장 일가에 있다. 회사를 수렁에 빠뜨린 조 회장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업체다. 40년간 세계 곳곳에 영업망을 구축했다. 자금지원을 중단하면 국내외에 생길 파장이 ... -
이제 사흘 남았다
어김없이 차례상엔 피자와 치킨이 올라갔다. 추석인 지난 15일 안산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엔 아이들이 좋아하던 먹거리가 놓였다. 3년째다. “이젠 술도 한잔 나눌 때가 됐는데….” 다시 무너져내리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얼굴을 무릎에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더 생각나고 보고파서일 터이다. 그날 오후 4시16분, 광화문광장에도 합동차례상이 차려졌다. 3년째다. 시민들도 음식을 가져왔으나 나누진 않았다. 텐트 안에선 7월부터 ‘세월호특별법 개정과 특별조사위 연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거차도 텐트에도 3년째 세월호 인양 현장을 내려다보는 아버지들이 있었다.목마름은 더해졌다. 정부가 통지한 특조위 ‘강제 종료’ 시점이 30일로 닥쳤다. 지난 6월 공무원·예산 철수를 시작하고, 백서 활동 기간 3개월만 일방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정부는 특별법이 공포된 2015년 1월부터 기산하고, 특조위는 정부 예산이 확정된 8월4일을 출발선으로 삼는다. 국회예... -
부끄럽지 아니한가
역사왜곡 논란이 일긴 했지만 영화 <덕혜옹주>에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동포 여러분, 저는 조선의 옹주 덕혜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다는 제 자신이 무척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가담했거나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픽션이다. 제작진이 영화 상영 전 자막에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조선의 황족을 미화하고, 덕혜옹주를 ‘독립의 아이콘’으로 부각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국권을 지켜내지 못해 망국에 이르게 한 조선의 황녀로서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부끄러워하고, 사죄해야 했다는 뜻에서 연설 장면을 넣었다고 해석하면 지나친 오독(誤讀)일까.박완서의 단편 &l... -
어떤 절벽들
여기 한 정치인이 있다. 외조부와 종조부가 총리였고, 아버지는 장관이었다. 그도 총리다. 인근 국가에서 보면 보편적 세계 질서, 평화와 안녕보다는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못된 정치인이다. 대놓고 그 나라 우익 이익을 대변한다. 영구 집권과 자신의 임기 연장을 꾀하는 정치꾼이다.자신은 그런 특질을 부인하지 않는다. 은근히 부각시킨다.한국민은 그를 싫어한다. 8월 아산정책연구원 외국 정치 지도자 호감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1.84점으로 꼴찌에서 두번째다. 자국에서 인기는 안정적으로 높다. 그럴 수밖에. 현재 유권자는 물론 미래 표심까지 아우르는 정책에 올인해왔기 때문이다.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총리대신이다. 그는 각종 ‘절벽’(꽉 막힌 상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소비 절벽’을 깨는 제일 좋은 방법은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일본은 최저임금액을 평균 25엔(274원·이하 30일 현재) 올려 823엔(9012원)으로 정했다. 이... -
저출산과의 100년 전쟁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을 내놓으면서 통제할 수 없이 늘어나는 인구를 걱정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인류가 기근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만혼’과 ‘산아제한’을 역설했다.200년여가 흐른 지금 우리는 맬서스와는 정반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만혼과 저출산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구감소의 수렁에 빠져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현재와 같은 출산율(합계출산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2100년 남한 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2500년에는 33만명으로 줄어 사실상 ‘민족 소멸’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또 전국 262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80곳은 30년 뒤 아예 인구가 사라질 위험이 크다는 보고서도 나왔다.경제개발 시대 우리는 출산율 감소를 향해 달려왔다. 인구증가는 식량·주택·고용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
독점이 부른 ‘검란’
한 컷의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8월의 첫날, 신임 검사 9명이 검은 법복을 입고 선서하는 임관식이었다. “나는 이 순간…”으로 시작하는 선서에서는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를 다짐했다. 낯설고 목에 걸렸다. 서초동에서 잘나갔던 ‘영감’ 진경준·홍만표·우병우·김대현도 20~30년 전 저 자리에서 오른손을 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193자의 짧은 선서는 사문(死文)이 됐다.수치스러운 ‘검사 1호’ 기록이 줄 잇고 있다. 게임사업 하는 친구를 스폰서 삼고 120억원대 주식을 손에 넣은 현직 검사장(진경준)이 구속·해임됐다. 처가 상속재산과 수임 비리 의혹이 뒤섞인 청와대 민정수석(우병우)은 특별감찰을 받고 있다. 검찰은 1948년, 민정수석실은 1969년 출범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특수통 검사장(홍만표)은 과거 본인이 수없이 기소했을 수임·탈세 비리로 수의를 입었다. 술 먹고 후배 검사에게 운전셔틀을 시키고 예약 식당이 맘에... -
썩고, 순환해야 산다
일본 오카야마현의 시골 마을 가쓰야마에 작은 빵집 ‘다리마루’를 열어 ‘변방의 기적’을 일궈낸 와타나베 이타루는 ‘착한 경영’을 실천하는 빵집 주인이다. 그는 빵을 만들 때 농약과 비료가 들어간 재료는 일절 쓰지 않는다. 밀은 직접 재배하고, 천연효모도 채집한다. 와타나베는 빵집이 문을 닫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이윤만 남긴다. 번 돈은 직원들의 월급을 올리고, 빵의 품질을 높이는 데 쓴다. 그의 경영철학은 “썩어야 산다”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생긴 것은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자연생태계는 썩어야 산다. 균은 생명력이 떨어진 생물들을 부패시켜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함석헌의 “씨알은 깨지고 죽어야 산다. 씨알이 흙 속에 묻혀 썩어야 싹이 나온다”는 씨알사상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썩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는다. 그러니 순환할 수 없고, 균형도 깨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