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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권 사건’과 ‘위안부 소녀상’
1970년 어느 날 35세의 남성 송백권은 자신의 집 마당에 있는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9살 여자 어린이를 방 안으로 유인했다.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성폭행한 송백권은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말하면 너도 죽고 네 부모와 오빠도 다 죽는다”라고 위협했다. 소녀는 아랫배와 온몸이 너무 아프고 충격에 휩싸여 고통스러웠지만, 행여 부모님과 오빠에게 해가 갈까 봐 말없이 꾹 참았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이르러 그날의 치욕과 상처가 되살아났다. 불면증,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각종 증상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디다 못해 경찰을 찾은 소녀는 오히려 더 큰 충격에 빠져야 했다. “이미 고소기한과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가족의 강권으로 선을 보고 결혼했다가 잠자리를 거부한 탓에 이혼을 반복하며 상처는 더 깊어가기만 했다. 결국 가족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가해자 송백권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계속 분노의 절규를 ... -
‘혐오 발언’에 족쇄를 채워라
이틀 전 독일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 세계적인 온라인 소통망 기업들과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최근 시리아 난민사태 및 파리 테러의 여파로 인종차별과 특정 종교 비하, 사회적 소수와 약자 공격 등의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한 특단의 조치다. 합의에 도달한 뒤 독일 법무부 장관은 “온라인이 극우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며 환영했다. 앞으로 독일 온라인상에서 ‘혐오 발언’이 게시될 경우 24시간 이내에 삭제된다. 나치 독일의 인종차별과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인한 국가적, 민족적 죄책감을 받아들이고 ‘영구 속죄’를 천명한 독일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전라도라는 지역, 여성이라는 특정 젠더, 진보라는 정치성향, 야당이라는 특정 정파 및 대통령과 정부정책 등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발언이 온라인에 넘친다. 심지어 지난 대선 기간에... -
라쿠안 맥도널드와 백남기
이틀 전, 미국 시카고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매카시 경찰국장의 사퇴 촉구’가 내용이었다. 1년 여전 거리에서 백인 경찰관 반 다이크가 지시에 불응해 도주하던 흑인 10대 청소년 라쿠안 맥도널드를 총격해 사망케 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경찰국장은 반 다이크를 옹호했고,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기소를 미뤄오던 중이었다. 언론과 시민들은 시카고 외근 경찰관이 착용하고 다니는 소형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고, 거리에선 시위가 계속되었다.하지만 ‘수사기밀인 동영상을 공개할 수 없고, 경찰관의 총격은 정당행위다’라는 매카시 경찰국장을 보호하고 옹호하던 시 검찰과 시장의 연대가 구축한 보호막은 강하고 공고했다. 이 지지와 보호의 연대를 무너트린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라’고 시카고 경찰에 명령하면서 반 다이크 경찰관을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시장은 수족처럼 챙기던 경찰국장을 내팽개쳤다.... -
‘권력의 정당성’이 답이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쇠파이프와 돌이 난무하는 폭력 충돌이 서울 도심을 지배했고, 사경을 헤매는 농민을 포함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입장과 성향에 따라 경찰과 시위대의 책임을 더 크게 보는 주장이 갈린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져 각각의 행동에 대한 타당한 조치가 내려져야 함은 자명하다. 다만, 비난하고 처벌해야 할 범죄인 ‘폭력’과 수용하고 존중해야 할 ‘정당한 물리력’을 가르는 기준과 원칙,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현대 입헌민주국가의 철학적 기반은 ‘정당한 물리력 사용의 국가 독점’이다. 즉, 공공의 안녕과 개인의 생명, 자유 보호를 위한 공식적인 ‘힘과 위력의 사용’은 오직 국가만 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목적’, ‘법과 절차’의 철저한 준수, 대화와 설득 등 다른 평화적인 수단을 다 사용하고 난 뒤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조건을 갖춰야 하며, ‘필요... -
사람 좀 살립시다
한국 사람, 특히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참 힘들고 아프다. 굳이 높은 자살률과 실업률과 지니계수, 그리고 낮은 행복지수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린 모두 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아프고, 군에서 잇따르는 사고 때문에 또 아프다. 일본 극우세력의 망발도 묵은 상처를 헤집고 미국과 중국 양강 사이에 낀 약자의 아픔도 서럽다. 철없는 전체주의 북한은 한쪽으로는 핵과 미사일로 불장난을 벌이고 다른 쪽에선 이산가족의 심장을 헤집는 감정 장사를 벌인다. 그런데 정부는 ‘역사전쟁’을 벌이자며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공격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국민 대통합’ ‘국민 행복’을 내세우며 탄생한 현 정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가치가 획일화되고 무한경쟁 속에 내몰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다섯 가지 중 하나의 적응 행태를 보인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진로를 따르는 ‘동조형’은 엄친아 엘리트들이다. 반면에, ‘성공’이라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지만, 그 수단은 불법 혹은 ... -
창설 70주년, 경찰의 과제
1945년 10월21일,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어닥친 이념대결과 사회분열로 정부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는 혼란의 와중에 ‘국립 경찰’이 창설됐다. 이후 경찰은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호국경찰’, ‘안보경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950년 7월18일, 밀어닥친 북한군에 맞서 온몸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던 충남 강경경찰서 경찰관 83명이 모두 산화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수립 이후엔 ‘국민의 안전지킴이’로 탈바꿈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을 경주했다. 지난 3월, 복통을 호소하는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전남 신안군 가거도를 지나던 해경 소속 4명의 경찰관이 희생된 것도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잃은 경찰관 수만 1만3000여명이 넘는다. 하지만,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 일부에는 ‘싸늘함’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격을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 -
검찰이 만드는 비극
1924년 영국 ‘매카시 사건’ 판례는 “법은 실제로 정의로울 뿐 아니라, 정의롭다고 보여져야 한다”는 법 원칙을 확립했다. 교통사고를 낸 매카시에 대한 형사 재판에 참가한 재판부 서기 중 한 명이 관련 민사 재판에서 매카시의 반대편인 보험회사를 대리한 법무법인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피고 측이 공소기각을 요청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해당 서기가 재판과정에 어떤 의견도 제시한 적이 없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렇지만, 항소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휴워트 항소심 재판장은 ‘정의롭다고 보여지지 않는 재판부는 심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뒤집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다른 사람의 법적 책임과 유무죄를 심판해야 하는 재판부는 ‘실제로 정의로울 뿐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지고 정의롭다는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이 원칙은 이후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재판부뿐 아니라 기소를 담당한 검찰에도 적용되는 철칙이 된다. ... -
제2의 김일곤을 막으려면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여성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마저 훼손한 김일곤. 그의 범행과 살아온 이력은 2010년 8월에 발생한 속칭 ‘양천구 묻지마 살인범’ 윤모씨와 많이 닮았다. 윤씨는 단지 집 밖으로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주말 오후 가정집에 침입해 마구 흉기를 휘둘러 두 아이 앞에서 아빠를 살해하고 엄마를 중태에 빠트렸다.김일곤과 윤씨는 어린 시절 학대에 시달리다 중학교 때 가출해 공장이나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 폭행과 절도, 강도 등 범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이력이 똑같다. 게다가 김일곤은 18년, 윤씨는 14년간 교도소 복역 중에 가족을 포함해 단 한 명도, 단 한 차례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지고 차단된 상태였던 것이다. 교도소 재소 기간에도 이들의 범죄 성향, 분노 등 감정조절 장애, 미흡한 사회성, 부족한 학습능력과 사회 적응능력 등이 교정, 교화, 개선되지 않았다. 교도소 과밀, 교정 예산과... -
치안, 수준 향상이 시급하다
지난달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 ‘분석 화학(Analytical Chemistry)’에 실린 ‘미국 과학기술연구원(NIST)’의 논문이 법과학과 과학수사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종전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던 ‘지문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된 것이다. 지방산 등 지문의 구성성분인 ‘생체 분자’들이 지문 융선에서 얼마나 많이 이동했는지를 측정해 최초에 지문이 남겨진 이후 경과된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제시되었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 소유자가 ‘현장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범행 이전이었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하지만, 범죄수사 현장에서 이 기술이 사용되려면 법과학계의 치열한 검증과 오류율의 확인, 현장과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용화된 장비의 개발까지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설사 미국에서 현장 적용이 가능해진다 해도, 유럽과 일본 등을 거쳐 우리나라에... -
‘국방 과학수사’ 신뢰·전문성 갖춰야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문제가 포격과 확성기 심리전을 촉발하면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로 이어졌다. 가까스로 ‘고위급접촉’을 통해 합의문을 이끌어내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북측의 ‘유감’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는 불씨를 남겼다.핵심은, ‘용의자’인 북한이 ‘범행’을 인정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이 묻히고 책임의 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에 대한 단죄 없이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는 대구 황산테러 태완군 사건,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 대구 여대생 정은희양 피살사건과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국가와 사법체계가 무시하고 외면해 눈물과 한숨, 생계파탄의 절망만 떠안은 반면, ‘피해 국가’인 대한민국은 유무죄 판결 없이도 용의자를 압박해 ‘유감’ 표명을 이끌어냈다는 정도일 것이다.피해자와 용의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