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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로 산다는 것
프랑스 오통의 생라자르 대성당은 중세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귀중한 보고다. 문맹인이었던 대다수의 신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소박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것이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더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이런 독특한 이미지 중에서도 유달리 시선을 고정시키는 형상이 있다. 전혀 압도적이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지만 은근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천사가 동방박사에게 예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다.동방박사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동쪽에서부터 온 현인 혹은 점성가이다. 이 장면은 동방박사들의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저 별을 따라가라. 왕이 나셨다”고 계시하는 모습이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마치 한 몸처럼 한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삼위일체의 메타포라도 되듯 말이다. 그때 한 천사가 와서 양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세 사람을 깨운다.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져 있고, 한 사람은 천사가 깨워서인지 이제 막 눈을 뜬 품새다.... -
존재에 접속하는 놀라운 시선
‘보데곤(bodegon)’은 스페인의 정물화를 일컫는 말이다. 영어와 프랑스에서는 정물화를 각각 ‘스틸 라이프(still-life)’, 즉 움직이지 않는 생명 혹은 ‘나튀르 모르트(nature morte)’, 즉 죽은 자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선술집을 의미하는 보데가(bodega)에서 비롯된 ‘보데곤’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니까 보데곤은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다. 원래 그것은 술집이나 요릿집을 묘사하거나, 즐비하게 놓인 음식을 배경으로 서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그렇듯이 외면상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종종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장르는 펠리페 3세(재위 1598~1621) 치정하의 세비야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했다. 세비야화파는 17세기 전반기 스페인에서 가장 유력한 화가 집단이었다.세비야의 귀족으로 태어난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는 화가 초년 시절 보데곤의 훌륭한 선례를 남... -
최초의 스토커는 누가 만들었나?
키클롭스(Cyclops)는 외눈박이 거인족이다. 키클롭스는 ‘둥근 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키클롭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대지의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라노스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추한 모습의 거인 아들이 역겨워 오랫동안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다. 뛰어난 대장장이이기도 했던 그들은 훗날 가장 강력한 무기인 번개를 만들어 제우스에게 바치고 풀려난다. 이 키클롭스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Polyphemus)는 오디세이의 모험 중 세이렌과 더불어 시각적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오디세이 일행을 잡아먹고, 결국 오디세이의 지략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 스토리의 주인공 말이다. 그 외눈박이 거인이 어느 날 바다의 님프인 갈라테이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는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 갈라테이아는 이 거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느 날 폴리페모스는 해변에서 갈라테이아가 그의 연인 아키스와... -
깨어나기 어려웠던 여자의 양심
빅토리아왕조시대는 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당대는 여성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순결하고, 모성적, 순종적인 결혼한 여성과 창녀와 더불어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 말이다. 특히 후자는 비정상적인 쾌락으로 가정을 파멸시키고 질병을 퍼뜨리는 존재로 간주됐다. 사회가 비난한 것은 창녀를 찾는 남성들이 아니라 창녀들이었다. 여성에게만 도덕성을 강요하던 왜곡된 성윤리의 사회였던 것이다. 이처럼 빅토리아시대는 겉으로 보면 상당히 경건하고 규범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엽기적이고 난잡한 스캔들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라파엘전파는 빅토리아시대의 이런 정조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집요하게 그림으로 표현했다.윌리엄 홀먼 헌트는 라파엘전파의 어떤 화가보다도 꼼꼼한 세부 묘사와 선명한 색채, 알레고리적인 도상을 잘 묘사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당대는 상류층 지식인 유부남들이 애인을 위해 집을 마련해주고 갖가지 진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게 유행이던 시대였... -
한여름 밤의 악몽
한밤중의 침실, 한 젊은 여성이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상반신은 침대 아래로 크게 젖혀져 있고, 목은 활처럼 굽었으며,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고, 볼은 어렴풋한 홍조를 띠고 있다. 게다가 실루엣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잠옷으로 보태진 몸의 굴곡이 커튼과 휘장 그리고 분홍, 노랑, 붉은색 등의 겹겹이 늘어진 시트와 중첩되면서 우아미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헨리 푸셀리는 스위스 출신 화가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런던의 왕립아카데미 교수로 명성이 높았지만 사후 잊혀졌고, 현대에 와서 재평가되었다. 아직 정신분석학과 같은 무의식과 욕망이라는 개념에 천착한 학문적 연구가 부재한 시절, 푸셀리는 셰익스피어와 밀턴 같은 영국의 대문호에 영감을 받아 ‘꿈과 악몽’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1781년 ‘악몽’을 전시했을 때, 영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작가는 꿈속에서 악마한테 시달리는 여인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지만, 두 기이한 괴물은 성적 쾌락을 탐닉하는 퇴폐적인 장면으로 간주되... -
자극하다
마네가 가장 사랑했던 모델 중 모델은 빅토린 뫼랑이었다. 서양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작품인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의 모델이 바로 그녀다. 마네는 1860년대 쿠튀르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모델을 서던 그녀를 만났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 그녀는 마네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마네는 어떤 여인에게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 여인이 주저하자 “싫으면 관두라지.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으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넘긴 빅토린 뫼랑이 헐렁한 분홍색 실내복을 입고 서 있다. 오른쪽 옆의 앵무새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사치와 퇴폐 혹은 성모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실 이 그림은 인물화인지 정물화인지 모호할 정도로 정물화에서 곧잘 보여주는 오감을 드러낸다. 보랏빛 바이올렛은 후각, 레몬은 미각, 헝겊 목걸이는 촉각, 외눈돋보기는 시각, 앵무새는 청각을 상징한다. 사실 이런 알... -
탐서주의자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1886년 프랑스 파리로 옮긴 이후 꽃병 연작을 그렸다. 1886년부터 1888년까지 꽃 그림은 40점이 넘을 정도다. 아마 모델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으리라. 이후 남프랑스 아를에서 ‘해바라기’보다 더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정물을 그렸다. ‘협죽도가 있는 정물’이다. 남프랑스의 눈부신 햇빛에서 사물이 얼마나 밝고 화사하게 보이는지를 몸소 깨달은 반 고흐는 이 그림에 노란색, 붉은색, 밝은 녹색, 푸른색을 사용해 보색 대비효과를 나타내려 했다. 화면 중앙의 녹색 잎과 주황색 꽃은 서로 색채대비를 이루고, 꽃병의 푸른색은 배경과 탁자의 책에 쓰인 노란색과 상생하며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구도적으로 반 고흐는 테이블과 꽃병을 화면의 오른쪽에 약간 치우치도록 배치했다. 그렇지만 이파리를 왼쪽으로 뻗치게 배치함으로써 균형과 율동감을 동시에 부여했다.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는 구성과 이를 보완하는 긴장과 균형은 아를 시기의 정물화에 주로 나타난다. 아마도 반 ... -
사랑으로 살아남은 막달라 마리아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물이 살아남는 두 가지 조건에 대해 말했다. 사물이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져서 시간의 영향을 견디거나, 누군가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 어느 편이 더 예술작품을 온전히 살아남게 만들겠는가.1966년 르네상스의 보고인 피렌체에서 큰 홍수가 났다. 아르노강이 범람해 도심의 성당과 미술관의 작품들이 진흙 더미로 뒤덮여버렸다. 그중에서도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1457년경)는 구제되어야 할 최상위급 작품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마사초의 회화와 더불어 조각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였던 도나텔로는 한 세례당을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조각한다. 예수의 여제자이자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는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나 예수가 매장되는 장면 등 예수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특이하게도 실물 크기의 독립적인 이 조각상은 이전의 젊고 아름다운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다. 도나텔로는 그를 참회하는 고행자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모... -
비오는 날의 산보
인상파 작품의 컬렉터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부르주아의 독특한 시선으로 파리 풍경과 파리인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 ‘비 오는 날-파리의 거리’는 파리 생라자르 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을 묘사한 것이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성장한 남녀들은 스스로를 볼거리, 즉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가시화하기를 좋아하는 근대의 부르주아들이다. 보들레르는 보는 동시에 보여지는 도시의 이런 구경꾼들을 ‘플라뇌르(Flanuer)’, 즉 산책자라고 명명했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오스망 남작에 의해 도시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세의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3, 4층의 적당히 높고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 한편 좁고 복잡한 중세의 길들이 넓고 반듯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게다가 하수시설이 개선되니 오물로 질척거리는 더러운 거리가 아니어서 비 오는 날도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포장된 도로는 매끈하고 질척거리지 않아서 비오는 날의 산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특별히 사진에 관심... -
살찐 여자의 꿈
“나는 작품이 모델들에게서 비롯되기를 바란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작품이 자신에게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가능한 한 모델들의 느낌과 감정에 동감하기를 바랐다는 말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더불어 영국 구상회화의 독보적인 존재다. 베를린 태생으로 나치하의 오스트리아 유태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33년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런던은 그의 예술적 욕망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후 예민하고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철학적 사유와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프로이트는 주로 인물초상을 그렸다. 누드가 아닌 벌거벗은 몸, 공허한 얼굴, 살찐 여자의 몸, 임신한 몸, 상처가 적나라한 조폭의 얼굴 등 그가 그려낸 얼굴과 몸은 그 누구의 것과도 흡사하지 않으며, 미술사의 그 어떤 초상보다도 존재감 있게 다가온다.프로이트는 어떻게 기묘한 전율을 일으키는 강력하면서도 은밀한 인물들을 그려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