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2월2일 “날치기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국회의장에게 누가 충고하고 항의한다는 말이냐. 국회의장이 여당 눈치만 살피는 것 그 자체가 개혁돼야 한다. 여야 모두 군사문화시대의 생각을 버려라.”1993년 7월 초 이만섭 국회의장이 의사진행 절차를 따지러 온 집권당(민자당) 원내총무에게 뱉은 말이다. 당시 여당은 대정부 질문 때 김영삼 대통령을 비난하는 야당(민주당) 의원의 신상 발언을 왜 허용했느냐며 이 의장을 비겁자,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이 의장은 취임 초부터 “내가 입법부 수장으로 있는 한 날치기는 절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날치기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국회는 결코 여나 야만의 국회가 아닌 국민 모두의 국회”라고 강조했다.(1993년 12월2일자) 이 의장은 실제로 새해 예산안을 강행처리해 달라는 YS의 요구를 거부했다. 역대 국회의장은 제헌의회 이승만부터 19대 정의화까지 모두 27명이다. 국가 권력서열 2위이자 국회 최고 지도자인 의장의 리더십은 정권 속성에 따라 각... -
1987년 12월1일 ‘개그맨 코믹 캐럴송 인기’
언제부턴가 길거리에서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그 많던 캐럴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징글벨’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물론 캐럴 음반을 내는 가수나 연예인들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1980년대 중반은 캐럴의 황금기였다. 음반시장에서는 다양한 캐럴 음반이 발매됐다. 국내외 가수, 합창단은 물론 코미디언들도 캐럴 음반을 냈다. 조용필·조영남·혜은이·이용·김도향 등 국내 정상급 가수, 마이클 잭슨·앤디 윌리엄스·호세 펠리치아노 등 외국 가수, 빈 소년합창단과 같은 합창단도 가세했다. 당시 두드러진 특징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캐럴 음반의 붐이다. <똑순이 크리스마스 캐럴> <KBS합창단 어린이 크리스마스 캐럴> <간난이와 영구 캐럴> 등 어린이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음반이 쏟아져 나왔다. 어린이용 캐럴 음반 붐의 주인공은 심형래였다. 심형래가 만든 음반은 이른바 ‘코믹 캐럴’이라 불릴 수 있는 ‘전통파괴형’ 캐럴이었다. 좋게 ... -
1996년 12월17일 ‘술 없인 안됩니까’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면 한해의 끝이 느껴진다. 경향신문은 1996년 직장인이 맞는 세밑 풍경을 ‘매거진X’에 소개했다.“입사 2년차인 곽용선씨(28)는 아침마다 수첩을 뒤적인다. 12월의 스케줄 표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모두 10개. 직장·동문·친구들의 망년회가 이틀 걸러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 회식과 노래방, 단란주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답습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망년회 몇 개를 추가하면 매일 술에 절어야 할 판이다. 술이 없으면 허전한 세대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한, 구세대식 망년회는 계속될 것 같다. 권위적인 술판에서 자유롭고 싶다. 신·구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망년회는 없는가.”(12월17일자)20년 가까이 흐른 2015년 직장인들의 송년 맞이 풍경은 달라졌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장인들의 삶이 훨씬 팍팍해졌고,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가 커졌다는 것이다.노태우·김영삼·김대중·... -
1992년 6월3일 리우 환경회담 개막과 캐나다 12살 소녀의 외침
1992년 6월 전 세계 100여개국 정상을 비롯해 185개국 대표들이 ‘환경정상 회담’을 갖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였다.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라는 공식 명칭을 쓴 이 회담은 이산화탄소 방출 규제를 통한 지구온난화 방지 및 동식물·천연자원 보호 등 두 가지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가 ‘하나뿐인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고하는 회의였다면, 리우 환경회담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경향신문은 그해 6월3일자 1면에 ‘리우 환경정상회담 개막’ 소식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은 지구 환경보전을 위해 시급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쉽사리 의견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방안 마련과 비용문제에 대해서는 각국의 이해가 크게 엇갈려 환경보전 협약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리우... -
1988년 11월10일 정주영 회장 5공 청문회 증언
“세상에 올 때 내 마음대로 온 것은 아니지만/ 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 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뒤 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애창했다는 ‘별셋’ 트리오의 ‘보통인생’ 가사 일부다(경향신문 1990년 12월28일자). 마치 정 명예회장의 인생역정을 노래하는 듯하다.정 명예회장의 일생은 뒤 돌아볼 새 없이 뛴 ‘특별한 인생’이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드는” 불굴의 정신으로 숱한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그가 세운 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뼈대를 이뤘고,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왕회장’에 등극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신념은 죽는 날까지 뒷방 늙은이로 남기를 거부했다. 엊그제는 그가 탄생한 지 100년 되는 날이었다. 곳곳에서 그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모든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고, 공이 있으면 과가 있다. 하여 한 생애는 영욕의 양면을 조명할 때 비로소 온전히 보인다... -
1999년 10월25일 ‘서갑숙 수기 파문’
시대는 금서를 만들었다. 금서목록에 올리는 것도, 삭제한 것도 시대요, 세상이다. 1970, 1980년대 세상이 군홧발 아래에 있을 때 권력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저작물에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여 유통을 막았다. 금서는 인화성 강한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자본론> <해방 전후사의 인식> <페다고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과 같은 책들은 ‘의식화를 위한 이념서적’이라는 이유로 압수 대상이 됐다.억압의 시대가 끝나자 1990년대 권력은 새로운 먹잇감에 ‘외설’ ‘퇴폐’라는 표딱지를 붙였다.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당시 연세대 교수)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인 장정일이 음란문서 제조·반포 혐의로 구속됐다. 정점은 탤런트 서갑숙이 찍었다. 서갑숙은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집을 내 외설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
1981년 11월13일 ‘전 대통령에 전 각료 복무선서’
# 장면 1 : 복무선서군사정권이 들어선 1981년의 일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3일 남덕우 국무총리 등 각 부처로부터 새 시대의 공무원 복무자세를 다짐하는 5개항의 복무선서를 받았다. 60만 전 공무원으로부터 선서를 받게 된다. 정부는 선서문 2부를 작성한 뒤 1부는 임명권자에게 제출하고 1부는 본인이 소지하도록 했다.” 국가나 국민이 아닌 전두환 개인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던 시절, 경향신문 1981년 11월13일자 1면에 실린 기사이다.# 장면 1-1 : 6월항쟁“6·10 국민규탄대회에는 전국 18개 도시에서 오후 6시부터 가두시위가 계속됐다. 서울 도심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 시민들은 도로변에서 손뼉을 치기도 했다. 또 점심시간에 나온 회사원들은 경찰의 최루탄에 항의해 ‘독재타도·호헌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학생들 시위에 호응하기도 했다.” 독재정권에 분노한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섰던 경향신문 1987년 6월10일자 기사... -
1995년 11월11일 민주노총 공식 출범
한국은 노동조합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기업 경영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노조와 기업의 입장은 줄곧 평행선을 그려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업보다 노조가 역대 정권의 탄압을 받고, 불법단체로 낙인찍혀 왔다는 점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만 봐도 노조 결성은 노동자들이 “목을 내놓을(해고당할) 각오로 해야 하는” 일이다.해방 이후 두 개의 노조가 설립됐다. 좌파계열의 노동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1945년 11월 결성됐고, 우파계열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1946년 3월 출범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전평은 불법단체로 간주돼 1950년 강제해산됐다.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보다는 친정부 활동에 주력하던 대한노총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해산됐으나 그해 8월31일 산업별 노조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으로 재조직됐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은 노동운동에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1985년... -
1977년 9월15일 대기업들 ‘대졸자 초임 담합’
4년제 대학졸업자 초임이 일본보다 높던 시절 이야기다. 1977년 9월 중순 삼성물산, 대우실업, 국제상사, 효성물산, 한일합섬, 반도상사, 삼화, 쌍용, 선경, 금호실업, 고려무역 등 국내 대표적인 종합무역상사 대표들이 무역회관에 모였다. 상공부 차관도 배석했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종합무역상사협의회가 결정한 한도 안에서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이른바 ‘임금카르텔’이다.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향신문은 이 사실을 9월15일자에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그동안 경쟁적으로 임금상승을 주도한 일류 기업들이 종합무역상사를 중심으로 임금상한선제를 결의함으로써 앞으로 임금인상은 이들 기업 이외에도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합상사의 대졸자 초임이 얼마나 높았기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이런 수선을 피운 걸까. 기업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월 15만원 선이었다. 당시 환율로 300달러가 넘는 액수였다. 기업들은 일본 대... -
1999년 7월8일 국보급 미술품 1000여점 위조
“단원, 혜원, 겸재 등 조선시대 고서화부터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등 근대화가의 동양화까지 닥치는 대로 위조했다. 적발된 위조품 1000여점을 진품 시가로 환산하면 1000억원대에 이른다.”경향신문은 1999년 7월8일자 23면에 국보급 포함 1000여점을 위조하고 판매한 일당 15명을 검거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들은 위조한 미술품과 문화재 가운데 50여점을 판매해 21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검찰은 밝혔다.고미술협회 간부 출신들로 대형 화랑을 경영하고 있는 이들은 100만~200만원을 주고 위조한 작품을 진품이라고 감정한 뒤 전문지식이 부족한 돈 많은 ‘호갱’들에게 수천만원에 팔아넘겼다. 이들은 고미술협회에서 발행한 감정서를 보여주면서 진품으로 믿게 했다. 이 가운데는 TV 프로그램의 감정위원으로 출연하는 등 문화재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내세워 위작을 진품으로 거짓 소개한 사람도 있었다.위조범들이 사용한 위조수법도 다양했다.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진...